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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길, 모든 것이 달라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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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길, 모든 것이 달라진 길

[뉴스메이커] 영화 <길>로 다시 만난 배창호 감독

배창호 감독의 새 영화 <길>이 개봉됐다. 제작된 지 3년만이다. 비상업영화 전문극장인 '스폰지 하우스'에서 상영 중이다. 개봉 첫 날 배창호 감독은 '스폰지 하우스'에 들렀다가 극장 관계자로부터 스폰지 영화 가운데 최고의 개봉 성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공에 '허허'하는 그의 특유의 웃음이 터졌다. 극장 관계자도 같이 웃었다. 그건 결코 허탈한 웃음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아쉽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 모자라지만 그래도 아직도 뭔가가 남아 있다는 것 같은 웃음이었을 것이다. 맞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전국 단 4개 스크린에서만 개봉됐다 한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배창호라는 작가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때 흥행전설이었다고 위세 떨지 않고 늘 겸손하게 관객 옆에 앉으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것 자체가 중요할 터이다. 이런 작가는 늘 인터뷰하기에 앞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한다. 그건 일종의, 존경의 표시 같은 것이다.
배창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개봉을 포기하려 했을 듯 싶다. "그랬다. 한 1년 반쯤 지났을 때, 아 이 영화는 개봉이 도저히 어렵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거의 포기했었다. 이번 개봉은 제작자 강충구씨가 열심히 뛴 덕이다. 영화사 스폰지가 고맙기도 하고. 개봉을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길>한테 제일 미안했다." - 그 기다림의 3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그렇다. 시간이란 게 후딱 간다. 재작년에 광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이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고, CJ CGV 인디영화제 개막작으로도 걸렸고..등등 해서 은근히 바빴다. 개봉은 못 했었지만 여기저기서 영화를 찾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영화란,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기다리고 만들고 나서도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건 시간 그리고….물론 돈이다. 얻은 거? 얻은 건 물론 <길>이다." -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과 같다. 그 만큼 영향을 끼쳤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다만 내가 다섯 살 땐가 펠리니의 영화를 봤는데 그게 오랜 동안 마음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길. 길의 이미지를 내가 워낙 좋아 한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다. 사실은 그 시를 생각하면서 영화 제목을 지었다." 프루스트의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이렇게 끝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읍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길 ⓒ프레시안무비
실제로 배창호의 <길>에는 주인공 태석이 걸어가는 길이 무수하게 많이 나온다. 시에서처럼 그게 딱 두갈래 길로 형상화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이 끊임 없이 두 갈래 길의 교차점에서 헤매고 머뭇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결국 한 길을 택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프루스트가 한숨을 쉰 것처럼 그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배창호의 <길>은 프루스트의 시, 딱 그대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애태워 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다. - 그러니까 결국 이 영화는 '길(road)'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다른 '길(way)'에 대한 영화인 셈이다. "흠..그렇게 얘기해 주면 영화를 깊이 봐준 거고. 맞다. 길을 가다 보면 길을 만나는 법이다. 이 영화는 그냥 길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당신 말마따나 또 다른 길을 얘기하는 영화다. 좋다. 그 표현 마음에 든다." -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건 결국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 대장장이 마냥, 배 감독도 수십년 동안 한가지 일에 천착해 왔다. "(웃음) 그렇다고 자전적인 영화 아니냐고 묻지는 마라. 물론 그렇게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영화란,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재화하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이는 법이니까. 한 인간이 한 가지 일에 열정과 사랑을 불태우는 건, 어느 곳에서나 많이 만날 수 있는 경우다. 그것만은 맞다.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배창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영화 속에서 태석이 가까운 친구 득수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서 배 감독이 지금의 영화계에 느끼는 감정이 저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배 감독도 먼 길을 떠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웃음)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다만, 사람은 살면서 늘 상처를 받고 산다. 그리고 그 상처란 건, 가까운 사람한테서 얻는 것이다. 관계가 먼 사람들은 아예 인연을 맺지 않으니 상처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대답이 됐나?" - 줄거리는 참 단순하다. 인생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한 줄로 얘기한다고 들었다. "장 르느와르가 그러더라. 나는 단순한 이야기가 좋다고. 맞다. 이야기는 단순해야 옳다. 문제는 그걸 영화 속에서 어떻게 집어 넣느냐가 더 중요하다. 단순해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와 영화가 다른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영화의 매력이 바로 그 점이기도 하고. 다만, 살면서 단순한 이야기 속에 사실은 더 깊은 얘기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다." - 이 영화는 로케이션의 승리이기도 하다. "(웃음) 많이 다녔다. 김제의 만경평야, 부안의 곰소 바닷가, 구례와 삼척, 임계, 정선, 왜관 그리고 가천의 장터들..어딘지 잘 모르겠지?" - 이미지조차 안 떠오른다. 제작 여건 때문에 헌팅을 다니는 것만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그랬다. 제작비 5억 원이라는 돈도 한꺼번에 마련된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중간에 제작이 중단된 적도 있었다. 늘 제작자와 스탭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촬영지 로케는 그동안 여러 영화를 찍으면서 숱하게 쏘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때 그때마다 마음에 찍어둔 곳이었으니까." 바라건대, 한폭의 동양화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걸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영화 <길>을 꼭 보기를 원한다. 롱테이크와 미장센의 장인답게 배창호 감독은 이번 영화 <길>에서 '길의 미학'을 유감 없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태석이 한참을 헉헉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쳐다 보는 장면에서, 스크린 가득 굽이굽이 보이는 그 길의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마디로 가슴을 친다. 우리가 평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길일지 모르지만 작가의 눈으로 그것을 프레임에 담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절대로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 날의 날씨, 그 날의 햇빛, 심지어 바람까지 한올한올 모든 것을 촘촘히 계산한 후 한 커트 한 커트 찍어냈을 것이다. 그 장인의 숨결이 쉽게 무시되서는 안될 터이다.
배창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러브 스토리>에서 <정> 그리고 이번 <길>에 이르는 배 감독의 영화 여정에서 중간에 있었던 <흑수선>은 오히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왜?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사람이 깊이만 가져가려 하면 스케일에 대한 욕심이 나는 법이다. 스케일만 생각하면 깊은 우물 맛이 그립고. 돌이켜 보면 난 10년만에 한편씩은 큰 상업영화를 해왔다. 옛날에 <황진이>나 <꿈>을 만들다가 <젊은 남자>를 만들기도 했으니까. <흑수선>은 그런 사이클의 영화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그러면 언젠가는 <흑수선>같은 상업영화를 또 다시 시도한다? "물론." - 말이 나온 김에 다음 작품은? "생각하는 작품은 많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공수표가 된 얘기가 많으니까. 그냥 내 마음, 내 머릿 속에 담아 두고 있겠다." - 건국대 영화과 교수시다. 학생들이 <길>은 봤나? "아 이 작품은 봤다. 좋다고들 하더만 허허. 근데 학생들에게 내 작품은 되도록이면 안 보여 준다. 되도록이면이 아니라 거의 안 보여준다. 왜냐고? 글쎄?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 안 되니까. 다른, 많은 작품을 보는 게 그 때는 중요하니까. 세상에는 좋은 작품이 내 영화 말고도 많으니까. 대답이 됐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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