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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과 냉전의 역사 되풀이하려나"

언론단체, 일부 언론의 '간첩의혹사건' 보도행태 비판

"일부 언론들이 눈엣가시 같았던 시민·사회단체와 386 인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며 공안정국과 냉전을 부추기는 선동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합리적 보수'라는 잣대로 봐도, 이런 보도행태는 극히 퇴행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문화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매비우스 등 14개 언론단체는 3일 서울 안국동 달개비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간첩 의혹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은 공안정국과 냉전을 부추기는 선동적 보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12년이 흘렀지만 한국 언론의 수준은 그대로"

이들은 1994년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발언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쳤던 '광풍'을 언급하면서 "지금 한국 언론들의 수준은 12년 전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1994년 7월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민주화운동 세력은 북한의 조종을 받아 움직인다는 등 근거 없는 발언을 했을 때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 '용기 있는 지식인이 할 일'에서 박홍 전 총장을 '용기 있는 지식인'으로 추어올렸다. 이로 인해 그해 7~8월 두 달 동안 120여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는 분명 비극이었다."

문제는 현재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단체들은 "공안당국은 사업가 장민호 씨 등의 간첩 활동 여부를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의 간첩 혐의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섣부르게 '386 간첩단 사건'이니 뭐니 낙인을 찍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 같은 보도들에 따르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여중생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도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도 북한의 지령?"

이날 민언련은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특히 일부 신문들이 △인권침해 △선정적인 제목달기 △의혹을 부풀리는 추측과 예단보도를 해 온 내용을 공개했다.
▲ ⓒ프레시안

<조선일보>는 10월 31일 "장민호, 386 정치인들과 친분 과시"란 기사를 통해 구속자들의 회사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했다. 또 가족들의 얼굴과 실명도 공개했다. 이처럼 언론들이 구속자와 그 가족들의 인적사항과 과거 피의사실 등을 공개한 것은 아직 간첩 혐의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무분별한 보도라고 민언련은 지적했다.

또 이 보고서는 언론들이 "'간첩'에 돈까지 주는 정부?"(<조선일보> 10월 27일 4면), "나라 흔드는 세력 속에 활개친 '간첩 그림자'"(<동아일보> 10월 30일 사설), "'운동권 출신' 반국가단체 활동 수사 현 정권 386 타격 가능성"(<중앙일보> 10월 27일 10면) 등 선정적인 제목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보고서는 "일부 언론들이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운동 출신 386 인사들의 연루설 및 김승규 국정원장 사임과 관련한 청와대의 압력설, 근거 없는 북한의 남한 개입 의혹 등 추측·예단보도를 일삼았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단체들은 "간첩 의혹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하지만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이용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선동적인 정치공세를 펴는 데 대해서는 단연코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사생활 침해한 언론에 법적 책임 묻겠다"

이에 앞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 가족 및 변호인단은 2일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을 피의 사실 공표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국가와 김 원장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또 이들 구속자 가족들은 "언론에 가족관계와 사진까지 보도되는 바람에 사생활 침해가 심각하다"며 언론사에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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