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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게이의 사랑을 알아?!

[뉴스메이커] 퀴어멜로 <후회하지 않아>를 만든 게이 감독 이송희일

이송희일 감독은 요즘 한창 예민해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새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시사 이후, 그에게는 어느덧 '대한민국 최초 게이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갖가지 선정적인 질문의 표적이 돼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性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고 용감한 사람인가는 바로 그의 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아>는 '퀴어멜로'다. 말 그대로 두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 두 남자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우리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보여줬던 관계다. 하지만 이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그보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송희일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후회하지 않아>는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통속성과 신파적 설정을 적극 차용하고 있다는 데에 다른 영화와는 역설적이면서도, 확실한 선을 긋고 가는 영화다. 동성애를 모티프로 그는 '호스트 바'의 세계를 그렸다. 성의 얘기를 통해 사회의 그늘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낡은 얘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그이 영화가 신파멜로의 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을 만났다.
<후회하지 않아>는 어떤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독립영화계에서 여러 편의 퀴어영화를 만들어 온 이송희일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사회적 계급 차이로 갈등하는 게이 커플의 얘기를 그렸지만 특이하게도 영화내내 애절한 분위기가 펼쳐지는 이른바 퀴어멜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에서 나온 수민(이영훈)은 서울에 올라와 공장 일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어느 날 대리운전을 나갔다가 재민(이한)을 만나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수민은 곧 공장에서 해고되면서 호스트 바로 흘러 들어간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결혼을 준비하던 재민은 밤마다 호스트 바를 돌며 수민을 찾아 나선다. 사회적 강요에 못 이겨 이성과 결혼하고 마는 재민과 그의 숨겨진 게이 연인 수민. 그 둘과 재민의 약혼녀와의 삼각구도는 <후회하지 않아>의 중요한 테마다. 퀴어와 이성애자들을 아우르는 관계의 소통과 이를 둘러싼 사회구조의 문제에 시선의 무게를 뒀다.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이송희일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후회하지 않아>가 충무로 자본으로 찍은 첫 영화이자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물론 충무로 자본을 받아 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아>를 상업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연출의 기본적인 태도에 있어서는 독립영화를 만들 때나 <후회하지 않아>를 감독할 때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물론 안정적인 제작체계나 프로듀서, 제작부 시스템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 독립영화 때는 딱히 개봉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게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개봉은 하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장편영화의 호흡을 경험했다는 게 더 큰 것 같다. 그 부분에서 단편영화와의 차이를 많이 느꼈고 강약 조절이나 호흡 분배에 관해 많이 배웠다. 앞으로 다시 단편을 찍으면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장편은 아직 더 배워야 할 것 같지만." -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건 섹스 장면만 봐도 알겠더라. 표현수위가 만만치 않다. "실은 더 세게 가고 싶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영화에 섹스 장면이 총 2번 나오는 데 그게 다 20분씩 찍은 거다. 원래 에로틱한 장면을 너무 뽀얗게 미화하는 거 혐오한다. - 영화 제목이 원래 '야만의 밤'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원래 생각했던 영화의 이미지는 비발디의 '4계' 중 '여름'이 어울릴 법한 태풍의 모습이었다. 태풍에 잠긴 서울의 이미지를 담고 싶었고 비바람이 부는 산(山)에 올라가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 가운데 태풍의 눈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생각했던 제목이 '야만의 밤'이었는데 예산이 적다 보니 의도했던 만큼 찍지를 못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촬영할 때 태풍 하나 안 올라오더라.(웃음) 강풍기 하나 가지고는 흉내도 못 내겠던 걸.(웃음) 그래서 결국 산 장면도 맨 뒤로 밀리게 됐다. 지금도 마지막에 산 장면이 20분 가량 들어가 있는데 아쉬운 게 많다. 지금의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은 편집과정에서 제작사로부터 추천 받은 제목이다. '야만의 밤'이 너무 독립영화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얘기도 있었고, 편집하면서 삭막한 느낌을 많이 덜어내고 멜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압축시켰기 때문에 지금의 제목이 더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다." -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설정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 게 오히려 새롭다. "고등학교 때 전주에서 하숙을 했는데 학교 가는 길이 꽤 멀었다. 그 때 학교 가는 길에 담벼락에 붙어 있던 포스터들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다. 근데 그 영화들이 거의가 <영자의 전성시대>(1975)와 같은 호스티스 영화들이었다. 그러다 <서울무지개>(1989)를 봤다. 호스티스 영화의 설정 아래 사회 권력이 한 인간을 처절하게 나락으로 내모는 과정을 총천연색으로 그리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나도 한번 호스티스 영화의 장르에 과감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고 스스로도 게이 주인공들과 호스티스 영화가 합쳐지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측면이 있었다."
후회하지 않아 ⓒ프레시안무비
- 70년대 호스티스 영화하면 한 마디로 통속적인 신파다. 보통 그런 영화의 경우 선입견을 갖기 쉽다. "영화사에 처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도 올드하다고 그랬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통속적인 코드에 곧잘 이중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얘기 참 좋아한다. 난 통속적인 이야기라고 해서 무시하고 외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통속적이라고 욕하지만 결국엔 그게 다 현실이다. <후회하지 않아>에 등장하는 '호스트바 선수'(호스트 바에서 접대하는 남성을 일컫는 은어)라는 직업도 실제로 다 존재하는 것들 아닌가. 이 영화의 인물이나 줄거리의 대부분이 취재를 근본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제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고아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단돈 300만 원을 들고 고아원을 나온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서비스 업계를 전전하며 먹고 산다. 인터넷 상의 게이 커뮤니티에만 가봐도 '호스티스 선수들과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 떠돌아 다닌다. 단지 실제 호스트 바에서는 소위 2차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영화에서는 극적 구성을 위해 과장한 면은 있다. 결국 통속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서 더 울어라, 더 신파적이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했다." - 이 영화의 신파에는 사회성이 느껴진다. 게이의 사랑도 돈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에 길을 가다 게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버린 경우가 있다. 그 친구가 가족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나를 보니까 당황해서 그냥 지나쳐 버린 거다. 아직까지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나를 유명인사로 생각하고 나를 아는 척하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날까 두려웠던 거지. 지금 생각해도 참 싫은 기억이다. 그때 생각한 게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걸 포기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게이도 마찬가지다. 그 사건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후회하지 않아>의 재민(이한)의 경우도 가진 게 많으니까 그걸 다 포기하고 나와버리기 힘든 거다. 우리끼리는 농담으로 이 영화는 재민에 대한 교훈극이라고 그런다.(웃음) '그걸 다 가지려 하다니, 너 한번 혼나봐야겠다' 그런 식으로.(웃음)" - 대개의 퀴어영화의 경우, 퀴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루면서 가해자는 이성애자, 피해자는 동성애자의 구도로 그려가는데 <후회하지 않아>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좋다고들 한다. "그래서 게이 커뮤니티에서 내 영화를 안 좋아한다. 첫째가 게이를 단순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으니까 보기 불편해서고, 둘째가 이른바 '강제된 배척'이라고 해서 퀴어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거 자체에 불안을 느끼는 거다. 자신이 게이인 게 탄로날까 해서다. 물론 나도 <퀴어 애즈 포크>(피츠버그를 배경으로 동성애자들의 삶을 그린 미국 인기 드라마)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에만 한정된 얘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는 지금 독립 퀴어영화를 찍는 후배 감독들이 앞으로 많이 할 거다. 난 보다 구조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한테는 게이 이야기가 더 편하고, 하층계급, 무산자들 이야기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장르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한 영화를 찍고 싶다."
이송희일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운동권 출신이라고 들었다.(웃음) "아니 난 그냥 헬스 좀 했다.(웃음)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이 심한 만큼 동성애 사회의 문제 말고도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가부장제에 맞서는 소수자로서 힘을 합쳐야 한다면 동성애자와 여성이 한 편에 서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서울'이라는 공간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느낌이다. "서울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공간이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버스를 타고 강남을 지나는데 갖가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때 그걸 보면서 '여기가 서울이구나' 느꼈다. 그렇게 올라와서 1년 반 정도 영화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약수터로 올라가 뛰어다녔던 적이 있다. 그리고는 홀연히 시골로 내려가서 1년 정도 농사를 지으며 살았었다. 그러다 또 다시 올라왔지만.(웃음) 도시에 대한 욕망과 애증은 태초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 아닌가. 영화 속에서도 갓 서울에 올라온 가람(김동욱)은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수민은 불질러 버리고 싶다고 하고 서울에서는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고 하는 대사가 2번 반복된다. 가람과 수민이 내가 서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감수성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 부산영화제에 상영됐을 때 관객 반응은 어땠나. "작년에 <동백꽃> 가지고 부산 갈 때는 긴장 하나 안 되더니 이번엔 무지하게 떨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20대 젊은 여성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더라. 그 사이에 팬 카페도 생겼다. 처음엔 다들 호스트 바 다니는 여자들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호스트 바 다니는 사람들은 팬 카페에 가입도 안 하더라.(웃음) 지금 팬 카페에 가입한 사람들은 영화 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특이한 게 전에 이명세 감독의 <형사> 좋아했던 사람이 많다. 청년필름 김광수 대표와 함께 <형사>와 <후회하지 않아>의 공통점이 무얼까 골똘히 고민하고 있다.(웃음)" - 2000년에 만든 단편영화 <굿 로맨스>도 다시 장편영화로 만든다고 들었다. "<굿 로맨스>는 배우 캐스팅 때문에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그 전에 신파액션을 한 편 감독할 생각이다. 아직 기획 중이라 내용은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아마 더 센 영화가 될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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