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등 혐의로 구속된 재미교포 장민호(44·미국명 마이클 장) 씨를 체포할 당시 압수한 이른바 '장민호 리스트'에 시민단체 간부, 전 국회의원 보좌관 등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연루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진보정당에 대한 탄압", "노무현판 공안사건"이라면고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최근 북핵 국면과 맞물려 관련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두고 지나친 강경 대응은 자제하기로 내부 기조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행여나 당내 민족해방(NL) 계열 출신 인사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특히 전날 중국 등에서 북한 대남 공작원과 만난 혐의로 체포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41)이 전대협 사무국장 출신으로 여당 인사들과도 상당히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우상호 대변인을 통해 "내부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여권386과는 관계 없다"고 서둘러 연계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반면 한나라당은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와 이번 사건을 연루시켜 여권을 공격하는 데 십분 활용할 태세다.
최기영 사무부총장 등도 27일 구속될 듯 국정원과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신병이 확보된 인물은 모두 5명. 이 가운데 장민호 씨, 전 민노당 중앙위원인 이정훈(43) 씨, 운동권 출신 사업가 손정목(42) 씨 등 3명은 이미 구속 수감됐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미국시민권자인 장 씨는 1989년, 1998년 , 1999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당국의 허가 없이 북한을 드나들면서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장 씨는 10여 년간 국내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이 전 중앙위원과 손 씨는 장 씨에게 포섭돼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세 사람을 조선노동당 입당 등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체포돼 수사 중인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운동권 출신 재야인사 이 모 씨(42)에 대해서도 27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현재 국정원은 장 씨를 체포하면서 압수한 정치인과 재야인사 등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알려진 수첩과 USB 메모리 등 분석 작업에 주력하고 있어 또 다른 연루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민노당 "계파별 '온도차' 없어…단호하고 일치된 태도로 대처할 것"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27일 "국정원이 중심이 돼 진행하고 있는 당에 대한 음해와 여론몰이의 최종 목적이 어디 있는지 예의 주시하겠다"며 "민노당은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고 정치적 배경도 주목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공당의 사무부총장 연행해 가면서 명확한 증거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명확한 의도를 갖고 민노당을 겨냥하고 있다"고 이번 사건이 민노당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국정원이 유포하고 있고 일부 언론이 이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 대변인은 이번 일이 자칫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최근 북핵 사태 당시 불거졌던 NL계열과 PD(민중민주) 계열 사이의 노선 갈등에 이번 일이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과 관련해 "민노당 지도부는 단호하고 일치된 태도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이해삼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책기구를 구성해 진상파악과 함께 법적대응 등을 강구하기로 했다. 또 국정원 최고 책임자를 국회로 불러 이번사건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처럼 겉으로는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이지만 내부 기류는 사뭇 다르다. 관련자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고, 또 추가 연루자가 나올 경우 당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때 대응방침으로 얘기됐던 국정원 앞 농성 등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지도부는 국정원 앞 농성 같은 방법 보다는 정당다운 대응방법으로 사태에 대처하자는 결정을 했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민노당과 우리당은 살아 온 길이 크게 다르다"
'여당 386 인사 연루설' 등으로 열린우리당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팔짱 끼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은 "신 공안정국 조성 음모"라는 민노당의 비난과 "여당이나 청와대 인사도 연루된 게 아니냐"는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를 모두 막아 내느라 분주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이 사건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의 신 공안정국 조성 음모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비판"이라면서 "노 대통령 자신이 공안정국의 희생자였다"고 주장했다.
우 대변인은 "국정원이 과거처럼 아무 근거없이 조작사건을 만들거나 공작적 수사할 수 없다"며 "증거에 근거해 엄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민노당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권386 연계설'에 대해 그는 "내부적으로 확인해 봤는데 여권386과는 관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우리당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 연루자들과) 과거 학생운동을 할 때 오며가며 만났을 수는 있지만 그 후 살아 온 길 크게 달랐다"고 덧붙였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임종석 의원은 "단순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안인지 조선노동당 가입 등이 있었는지 조속히 밝혀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여당 386 인사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북핵으로 놀란 가슴 다시 한번 쓸어내려야 할 지경"
한편 한나라당은 민노당과 우리당 모두를 겨냥할 수 있는 이번 사건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정 대학 출신의 청와대 라인이 이번 사건 관련자들과 교분이 두터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 연루자들이) 진보적 시민단체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했다고 한다"며 "이런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일"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들이 정부와 정치권 내 친분을 이용해 국가적 고급정보를 북한에 넘겼을 수도 있어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며 "북한 핵실험으로 놀란 가슴을 다시 한 번 쓸어내려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구속된 이정훈 씨와 최기영 씨가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돼 보상을 받은 사실과 관련해 "간첩을 잡아서 안보를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간첩을 육성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간첩 활동에 쓰인 공작금을 정부가 대준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국정원과 검찰은 사명감을 갖고 북핵사태 이후 국가안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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