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회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등 6개 중앙 일간지의 성폭력 보도 386건을 분석해,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바탕으로 보도 가이드라인을 정리했다.
민우회는 "성폭력 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언론보도 방식이 성폭력 생존자(피해자)들에게 성폭력 피해경험을 두렵게 떠오르게 하고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호소도 많았다"며 "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전반적인 반성폭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가해자가 아닌 생존자의 관점으로 언론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론의 성폭력 보도를 분석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유를 밝혔다.
민우회는 또 "가이드라인은 최소한의 보도 수칙"이라면서 향후 언론들이 가이드라인을 보도에 적극 활용할 것을 기대했다.
"성폭력이 '딸' 가진 부모들만의 문제인가"
"신문지상에서는 이제 '발바리'가 연쇄 성폭행범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발바리'가 가해자의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잘 드러내 줄지는 모르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입한 가해자를 지칭하는 말로는 적절치 못하다. 희화화된 속칭을 사용해 가해자의 폭력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우회는 7개월 동안 6개 일간지에 게재된 386건의 성폭력 관련 보도 가운데 110건의 보도가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등 다양한 오류를 보였다고 밝혔다. 반면 '좋은 기사'로 분석된 것은 10건에 그쳤다.
언론이 가장 많이 저지른 잘못은 '발바리', '다람쥐' 등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한 것.
그 다음으로 많은 오류가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범죄로 부각하는 경우. 가해자의 성장환경이나 정신병적 요인을 성폭력의 중요한 원인으로 부각시키는 보도를 흔히 볼 수 있다는 것. 민우회는 "실제 상담 통계에 따르면 접수된 성폭력 상담 사례 중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일상적인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며 "가해자의 정신병리적 진단만이 부각된다면 현실과 다르게 성폭력 자체를 비일상적인 범죄, 정신병적 요인이 있는 범죄로 축소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문제제기했다.
또 성폭력과 관련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하는 보도 유형 중 하나가 성폭력을 '딸 가진 부모의 문제'로 한정짓는 것이다. "딸 아이를 낳은 죄로 그 아이를 평생 위태로운 유리그릇처럼 노심초사하며 키우고 있는 부모"(<경항신문>, 2월24일)의 마음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보도 태도에 대해 민우회는 "성폭력을 여성들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민우회는 "이런 태도는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딸들을 보호하지 못한 슬픔'으로 '더 조심하지 못했음'을 탓하게 만들 뿐, 성폭력을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못하게 한다"며 "정작 논의돼야 할 가해자와 사회의 책임을 생략하고 성폭력을 얘기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선정성 부각해 폭력을 성애화"
"사이버 역술인의 엉큼함 사주풀이" (<조선일보>, 3월31일)
"짐승들! 성폭행 당한 여고생 사후피임약 사러 갔다 약국서 또…채팅남 "위로해줄게" 또…경찰서 가는 길 운전자가 또…"(<동아일보>, 3월3일)
"병원서 잘린 혀 봉합수술 받았다가…성폭행범 꼬리 잡혔다"(<중앙일보>, 5월10일)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선정적인 면을 부각해 폭력을 성애화하는 것도 언론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중 하나다. 피해자에게는 폭력인 사건을 연애, 성적인 관계로 바라보는 보도,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로 다루는 보도, 피해 내용을 자세히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태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 기사에 딸린 삽화도 성폭력을 희화화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민우회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과 고민에서 출발하기보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쓰여진 기사의 사회적 효과는 무엇일까 반문하게 된다"며 "성폭력 관련 기사는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3월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관련 보도에서 나타났던 성폭력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도 지양해야할 보도 태도라고 민우회는 지적했다.
더 나아가 지난 3월 있었던 남성 정규직 교사에 의한 기간제 여교사 성폭력 사건에서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은 이 사건을 전교조를 비난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이들 신문은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전교조 조합원이며, 전교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것.
한편 민우회는 오는 31일 오후 프레스센터 레이첼카슨룸에서 이번 모니터링 결과와 관련해 토론회를 가질 계획이다.
다음은 이날 민우회가 발표한 '성폭력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이다. 성폭력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 1.폭력의 성애화 -성폭력은 명백한 폭력이다. 성폭력을 가해자의 변명을 인용해 설명하거나 희화화,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세부항목 가. 피해자에게는 폭력인 사건을 연애, 성적인 관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나.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로 다뤄서는 안 된다. (예.「휴지통」,「색연필」 및 그와 비슷한 위상의 흥미위주 단신보도 꼭지에서 성폭력 사건을 다룸) 다. 불필요한 경우에도 피해의 내용을 자세히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2.잘못된 통념 재생산의 효과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할 수 있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세부항목 가.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범죄로만 부각해서는 안 된다. (예. 가해자를 쉽게 정신이상이나 인면수심, 짐승으로 취급하고 비일상적인 인물로 묘사함.) 나. 단순한 성욕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다. 성폭력 발생 동기를 피해자가 제공한 것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라.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뤄서는 안 된다. 마. 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여성 개인의 예방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바. 성폭력을 여성의 순결함이 훼손된 일, 그러므로 수치스러운 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사. 자신의 가해를 변명하는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키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 아.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해서는 안 된다. (예. 발바리, 부적절한 행동) 3.실효성 없는 대책을 부풀려 보도하는 문제 -언론은 성폭력 문제 대책 보도에 있어 실질적 공공성을 갖추어야 한다. 세부사항 가. 현행 사법체계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부족한 지점들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쟁점들을 구체적, 실질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대책을 단순 나열해서는 안 된다. 나. 초벌 논의 과정 중에 있는 정책을 결정된 사안인 것처럼 표제로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 4.정치적 쟁점의 소재로 성폭력 사건 이용 -언론은 성폭력을 피해자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피해자의 인권을 다른 정치적 쟁점의 소재로 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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