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날을 하루 앞둔 20일 경찰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을 열며 자축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30여 명의 건설노동자들은 서울 시청 옆 국가인권위원회 앞 인도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지난 7월 16일 머리에 부상을 당해 쓰러지고 8월 1일 사망한 하중근 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여전히 실종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집회일을 '경찰의 날'로 택했다. 이들은 "경찰 폭력으로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석 달이 되도록 그 어떠한 반성도 없고 또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경찰당국이나 정부당국이 자초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작년에 농민을 두 명씩이나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처음부터 '넘어져 숨졌다'고 거짓변명을 했던 경찰은 이번에도 진상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자신들이 조사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애초에 경찰 조사결과에는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지만 최근 들어선 국가인권위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경찰의 날' 택한 집회 장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앞'.
이들은 "하중근 씨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는 실망 수준을 넘어 분노마저 일게 한다"며 "작년 농민 사망 사건과 유사한 이번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은지, 경찰의 은폐와 인권위의 지연작전이 교묘하게 어울어져 정치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기관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금 인권위가 조사결과를 방치함으로써 역사에 씻지 못할 죄악을 범하고 있다"며 "인권위는 신속하고 명확하게 판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당초 지난 9월 25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 하중근 씨 사건에 대해 논의하려 했으나, 조영황 전 위원장이 갑자기 사퇴하는 바람에 논의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한 건설노조원은 "중근이 죽음에 아무 얘기가 없는 경찰을 보면 분통이 터지고, 조사를 다 해놓고서 내부 분란 때문에 인권위가 목을 빼고 결과를 기다리는 유가족을 외면하는 것도 환장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인 부부 영아 유기 사건을 아주 잘 해결했다고 자랑하던데, 중근이 목숨은 그 아이들 목숨보다 값어치가 없어서 석 달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냐"며 "이택순 경찰청장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유족들과 건설노조 형제들, 중근이의 원혼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끈 풀린 공권력이여"-인권단체, '경찰의 날' 맞이해 경찰 맹비난 '경찰의 날'에 경찰을 비난하는 곳은 포항건설노조뿐만이 아니었다.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불교인권위원회, 한국교회인권센터 등 전국 38개 인권단체로 이뤄진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0일 "기본권 위에 군림하는 끈 풀리 공권력, 경찰의 '오늘'을 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한 경찰의 대응 태세에 대해 우려와 함께 강도 높은 표현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61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낸 이 성명에서 포항건설노조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농민사망 사건, 하중근 씨 사망사건 등에 대한 경찰의 태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두개골에 충격을 받아 사망한 하중근 씨가 혼자 넘어져 사망한 것이라는 자칭 '인권' 경찰의 태도는 박종철 열사를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파시스트 경찰의 날조된 조사결과를 빼닮았다"고 비난했다. 한편, 경기도 평택시 팽성 미군기지이전 지역 경비 문제, FTA 반대 집회에 등에 대한 경찰의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팽성은 불법적이고 월권적인 경찰력 행사의 전시장이 됐다"며 "폭력적인 행정대집행뿐만 아니라 지금도 대추리와 도두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24시간 경찰이 상주하며 불법 검문과 통행제한으로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경찰은 평화적인 FTA 반대 집회에 금지 통고를 남발하고 있다"며 "경찰은 물리력을 앞세워 파업권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충돌에 따른 책임을 노동자와 시위대에게만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전의경 대원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구타와 가혹행위,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강도를 가진 사실상의 강제 노역 근무,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면서 침해되는 양심의 자유 등 정작 전의경의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당사자는 경찰 조직"이라며 전의경 제도와 경찰기동대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경찰이 수사권 조정 등 조직적 이해관계를 위해 인권을 표방하는 것은 표리부동한 일"이라며 "사람들이 정당한 생존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는 것을 안전하게 보장할 때 스스로 인권 경찰이라 자화자찬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먼저 불러줄 것"이라며 성명을 마무리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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