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유수한 법과대학에 재직중인 한 교수는 최근 학교 내부 통신망을 통해 로스쿨 도입에 대한 자신의 반대 의견을 동료 교수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취재하려는 기자의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 이유인즉 지금 로스쿨로 가는 것이 대세인 것 같은데 자신의 반대 의견이 알려지면 소속한 학교가 로스쿨 인가를 받는 데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로스쿨 도입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도 대세가 된 현실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들의 속앓이를 드러낸 대목이었다.
"로스쿨 인가권 쥔 교육부 전횡 우려"
법학대학원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 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던 한 법대의 A교수를 어렵게 만났다. 그 역시 자신의 이름과 소속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A교수는 1994년에 로스쿨 도입이 처음 논의된 배경을 "변호사 숫자를 늘리기 위한 충격 요법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사법시험은 매년 300명의 합격자를 내고 있었다. 이 숫자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는 법조인들에게 '그렇다면 로스쿨을 도입해서 숫자를 대폭 늘어나게 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성 정책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로스쿨 법안은 변호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현재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매년 1000명인데 비해 로스쿨 정원은 1200명 선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가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내놓은 안이다.
이처럼 "당초의 목적이던 변호사 숫자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없어진 마당에 로스쿨을 도입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 A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제시되어 있는 정부의 로스쿨 방안에 대해 "교육연한을 줄여가려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고,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법조계가 독점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교육부가 로스쿨 인가권을 매개로 대학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게 되는 등의 문제점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 로스쿨을 도입하느냐 여부가 대학교의 존폐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로스쿨 인가권을 쥔 교육부에 의해 자연히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크게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역시 자신의 이름과 소속학교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모 법과대학의 B교수는 "기존의 대학 법학교육이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고 보았다.
B교수는 지난 10년간 진행된 로스쿨 논의가 내용 면에서는 전혀 진전된 것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로스쿨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사법개혁위원회, 사개추위를 거쳐 정부측 법안으로 상정된 것을 진전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부 정책의 '진행'일 뿐 그와 관련된 논의의 '진전'은 아니다"고 구분했다.
공은 국회로…반대의견 공론화 여부가 관건
한나라당의 주호영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법학 교수들이 로스쿨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만약 주 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도입되는 로스쿨을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곳은 행정부, 그 중에서도 교육부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변호사회나 법원은 로스쿨 도입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애당초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시민단체들이 당초 로스쿨을 지지한 이유는 변호사의 숫자를 늘리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변호사 숫자는 늘리지 않으면서, 저소득 계층 자녀들의 법조계 진출은 어렵게 만드는 로스쿨 도입을 시민단체가 여전히 지지할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로스쿨 도입안은 '교육부에 의한, 교육부를 위한, 교육부의 작품'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얘기가 된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가 제출한 로스쿨 법안이 원래 도입하려던 취지와 일치하는 것인지, 알맹이는 갖다 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것을 제도화하려는 것인지 밝히는 작업은 이제 국회의 몫이 된 것이다.
이제 국회가 자신의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관건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전문가들의 반대의견을 끌어낼 수 있느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그리고 전문가들은 과연 제 몫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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