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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당의 약속, 3년 만에 풍전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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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당의 약속, 3년 만에 풍전등화

[기자의 눈]또다시 선거용 판짜기인가

정계개편은 그 자체가 작위성을 듬뿍 담은 말이다.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인위적 정계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런 명분론은 양두구육일 뿐이다. 그들은 정파적 필요성만 있으면 '인위적'이든 '작위적'이든 늘 정치구도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에 흔들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민의의 평가인 선거를 통해 배치된 정당 구도를 제멋대로 뒤흔들어 새로운 정파 구도를 만들겠다는 꼼수가 바로 정계개편인 이상 인위적이지 않은 정계개편은 없다.
  
  연말 께로 시기가 적시됐다. 밑그림 차원이긴 하지만 각 세력의 계산법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표가 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정치권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정계개편은 피해갈 도리가 없는 일정이 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집권을 위한 책략이 중심가치로 진행되는 정계개편 논의가 어떤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나오는 신당창당론은 한심하다. 한마디로 이대로는 안 되니 당 간판을 내리자는 얘기다. "100년 가는 정당을 하자"던 창당의 다짐을 3년 만에 부정하는 배신이 참 쉽다. 구구한 현실론을 내세워 이를 감추려 한다. 무엇보다 눈엣 가시인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손쉽게 결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유가 골자다. 아울러 민주당 및 고건 전 총리와 진통 없이 합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논리다.
  
  분당의 배신자들에게 심판을 내리고 지분 확대를 노려볼 수 있는 민주당은 반색했다. 정치권 기반이 없는 고건 전 총리도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탈 수 없는 민주당과 고 전 총리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민주당에선 한민공조론이 나왔다. 고 전 총리는 지난 7월 "(박근혜 전 대표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연대 협력할 수 있다"고 했었다. 어느 것이 '진심'인지는 그때그때의 상황이 결정하는 것 같다. 아니 이들에게 '진심'이란 꼭 한 개일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을 배제한 신당창당론이 공론화되자 열린우리당 주류 세력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문희상 의원은 "못난 부모지만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고 혈연론을 폈다. 하지만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작용한 것 같다.
  
  특히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등 창당 주역이자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직을 얻어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한 주자들은 배를 갈아탈 명분이 없다. 친노세력은 더더욱 '노무현 당'을 깰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고안된 고육지책이 100% 국민경선제 도입과 '민주개혁세력' 혹은 '중도개혁세력' 연합론이다. 한나라당 집권을 마치 재앙의 도래인 양 위협해 반(反)한나라당 전선의 정당성을 갈파하는 한편, 이를 위해 일단 모이고 보자는 것이다. 물론 동전의 이면은 반(反)노무현 전선을 최대한 희석화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위해 당명변경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노무현당'에서 문패를 바꾸고,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여 뒤섞어야만 그나마 집권 전망이 서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선 주자들도 '차별화'를 내걸고 노 대통령을 뒷방으로 몰아넣으려 갖은 애를 쓸 것으로 보인다. 같이 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노무현 딜레마'가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인 셈이다.
  
  결국 범여권에서 거론되는 두 가지 정계개편 논쟁, 즉 신당창당론과 우리당 주도의 통합론은 지난 2003년 민주당 분당 때 '분당론'과 '리모델링론'이 치고받은 갈등을 꼭 닮았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2003년 논쟁이 '노무현당' 만들기를 위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탈(脫) 노무현'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쨌든 또 다시 범여권 정계개편의 '키워드'가 된 노 대통령은 28일 정계개편 논란과 관련해 "승리, 패배에만 매몰돼 당을 만들고 깨고 하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선거용 정당은 적절치 않다"며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탈당은 않겠다"고 했던 최근 발언과 결부시켜보면 현재의 열린우리당이 포말하지 않는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대주주의 간절한 심경이 읽힌다.
  
  하지만 따져보면 열린우리당이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기폭제 삼아 급조된 선거용 정당이기에, 같은 역사의 반복은 3년 전 노 대통령이 첫 단추를 끼운 것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그동안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했던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고스란히 반영된 열린우리당의 잡탕성이 자신의 지지기반과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게 된 동인이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갈라서기와 야합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 노 대통령의 원죄가 또다시 한국정치사에 포말정당, 잡탕정당 하나를 추가한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악순환 구조에서 이념과 노선, 정책의 합치점을 준거로 한 정계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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