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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당론', '구상' 넘어 '추진' 단계로?

<분석> 정계개편ㆍ개헌 등 얽힌 '용트림' 시작

'설'이나 '가상 시나리오'로 떠돌던 신당론이 차츰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내정자가 강도 높은 동교동계 비판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26일엔 '신주류'의 좌장격인 김원기 고문도 '신당'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수 사무총장은 '개헌론'까지 덧붙였다.

아직까지는 중구난방, 구체적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신당론의 진원지나 중심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구상'을 넘어 '검토' 단계로 접어든 것은 명백해 보인다. 내년 총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권 용트림이 시작되고 있다.

***안희정, 이강철의 호남동교동계 직격타**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일반국민에게는 무한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만 호남의 지역민심을 부추기는 정치인에게는 부채의식이 없다. 특검법을 수용했다는 이유로 노 대통령이 DJ를 배신했다고 선동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지금 DJ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반발하고 있는 그들은 과거 DJ가 일부 보수언론과 외롭게 싸울 때 방관하며 타협하자고 했던 사람들로 아주 파렴치하다. 그들은 지역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기득권자일 뿐이다. 국민경선을 통해 합법적으로 뽑힌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던 사람들이 지금 총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대의에는 반대하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나온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발언이다. 호남 동교동계 의원들에 대한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비판이다.

"호남 사람도 대통령이 일부러 호남을 무시하거나 하면 달라지겠지만, 현재 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선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다. 동교동계가 없다고 해서 내년 총선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동교동계가 빨리 좀 나가 줬으면 좋겠다."

최근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내정자의 발언이라고 알려진 내용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 내정자는 해명에 나섰다.

"개혁에 반대하는 일부를 지칭한 것이지 동교동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동교동계 의원들 중에는 우리와 생각이 같은 의원들도 많다. 다만 영남지역에선 민주당이 DJ당, 호남당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환골탈태해서 전국정당이 돼야 영남민심이 돌아설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언론에 신당설이 나오는데 아직 인사도 못 끝냈는데 신당이 가능한 얘기냐?"

'신당설'을 부인했지만 '환골탈태해서 전국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호남은 호감 갖고 있으니, 영남민심을 잡으려면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려 있다. '아직 인사도 못 끝냈는데'라는 표현은 '때가 되면 한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26일 김원기 고문 발언, 신주류 방향결정?**

이처럼 노 대통령 측근들의 '동교동계 비판', '신당' 관련 발언이 잇따르자 당내에선 즉각 반발이 터져나왔다.

민주당 실·국장 10여명은 21일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겨냥해 "정치경험이 일천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적인 견해를 남발해 당의 민주적 공론과정을 훼손하고 당의 분열을 부추겼다. 경거망동을 삼가라"며 공식 성명까지 발표하며 비난했다. 또 동교동계 핵심 의원들도 "새 판을 짜기 위해서라면 자기들이 떠나면 될 것"이라며 반박했다.

이러한 당내 분란에 대해 신주류 좌장격인 김원기 고문, 정대철 대표 등은 "함께 가야 한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6일 상황이 바뀌었다.

김원기 고문은 26일 '신당설'과 관련 "언제든지 가능성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면서도 "당 개혁이 불가능하면 신당논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 개혁안 통과와 신당 창당을 직접 연계시킨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이 김 고문이 이날 오전 여의도 모 호텔에서 이해찬, 김경재, 이호웅 의원과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내정자 등 신주류 핵심 인사 5명과 조찬회동을 가진 뒤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주류 내부에서 "당 개혁 안될 경우 신당 추진 쪽으로 의견통일을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당'이 단순한 '설'이 아닌 '구체 추진'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상수 사무총장의 '개헌론'까지 덧붙여져**

여기에 하나의 파장, '개헌론'이 덧붙여졌다. 그 주역은 이상수 사무총장이다.

이 총장은 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특별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 신당 논의는 적절치 않다"고 일단 '신당설'을 견제했다. 또한 "신당 창당보다는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개혁정당이니 당내에 외부 개혁인사와 전문가를 영입, 당을 변모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굳이 이름을 바꾸는 신당이 아니라 당명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신당이 아닌 재창당 형태의 확대개편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날 이 총장의 특별강연에서 '이원집정제나 내각제 개헌' 발언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 총장은 강연에서 그간 민주당이 거론해 온 중대선거구제 대신 '정당명부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정당명부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후보와 정당 두 군데에 투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다 권역별로 의석수를 정해놓고 정당득표를 권역별로 집계,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방식"이며 "현재 3대1 정도인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1대1로 조정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구체안이다.

동시에 이 총장은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뒤 5년간 지켜봤는데 정말 낭비적 정치를 했다고 자인할 수밖에 없다. 모든 관심이 차기 대선에 집중돼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무력화, 흠집내기에 치중하게 된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국가권력 구조를 분권화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총장은 "우리는 국민의 35% 지지를 받았고,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은 반대했지만 모든 권력을 장악했는데 이런 것은 정말 문제"라며 "수직적으로도 분권화해 지방에 많은 권력을 이양하고 정치의 기능도 시민사회 등 민간에 넘겨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선 35% 지지, 그것도 세금 적게 낸 사람들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원집정제나 내각제 등 권력분산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적극적 주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얼핏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이 아닌가 혼란스러울 정도다.

***'밑으로부터의 신당론'에 권력 핵심 고민중**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 민주당 신주류 측이 완벽한 의견통일을 이루고 있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급진파 몇몇 개인의 단순한 '구상' 단계는 넘어서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최소한 구체적인 '검토' 단계에는 분명 진입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추진' 단계로 들어선 게 아니냐는 성급한 해석마저 힘을 얻기 시작하는 형국이다.

현재 민주당 주변에서 신당론을 가장 강력하게 추동하는 세력은 내년 총선 출마를 목표로 하는 신규 진입세력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필두로 386세대 40여명이 이미 회합, 결의를 다지고 있다는 설도 떠돌고 있다. 안 부소장은 이미 내년 총선전략 마련에 착수했고, 상당한 자금과 인원이 몰리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도 떠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당내에선 이렇다할 기반이 없다. 각자 노리는 지역구가 있지만 현역 지구당 위원장을 제치고 출마하기엔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그래서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를 당 개혁안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최소한 공정 경쟁만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당을 깨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자연스레 전환하는 추세다.

여기에 몇몇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신당론이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유시민씨 등의 개혁당 세력은 외부에서 신당창당을 강력하게 추동하는 분명한 실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김원기 고문, 정대철 대표 등 신주류 중진그룹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한 단계로 풀이된다. 가급적 당을 깨지 않는 '확대 재창당' 형태를 원하고 있지만 구주류와의 갈등으로 이마저 여의치 않아 엉거주춤한 상태로 보인다.

또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직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노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여당과 야당 모두를 아우르는 '대화와 상생의 정치구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행보만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기약할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청와대 곳곳에서 감지된다.

결국 현 단계는 청와대와 당내 핵심인사들은 아직 명확한 방향설정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밑으로부터는 거센 신당창당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상태, 그래서 핵심부에서도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한 단계라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계개편 시기와 방식, 개헌문제 등등 복잡한 계산 시작**

'구상'을 넘은 '검토' 내지 '추진' 단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내년 총선에서의 득실 계산이다. 현 구도를 유지하고 일부 물갈이와 외부 수혈을 통해 총선에 임했을 경우의 의석수, 그리고 개혁신당을 창당해서 총선에 임했을 때의 의석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현 구도를 유지하면서 민주당 대 한나라당의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는 주장, 반면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민노당·개혁신당 등의 다자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여기에는 총선후 재합당 내지 정책연합이라는 구상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 민주당을 쪼개고 신당을 만들어 각자 선거에 임한 이후 결과에 따라서는 다시 민주당과 손잡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법에는 반드시 정치적 주도권 문제, 그리고 개헌문제가 함께 등장한다. 총선 결과 신당의 성적이 변변치 못하고, 한나라당이 여전히 제1당을 차지하게 될 경우 노 대통령과 신당은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한나라당·자민련·민주당의 내각제 연합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당 쪽에서 오히려 선도적으로 이원집정부제 형식의 개헌론을 제기하면서 총선 이후 권력연합적 형태의 정계재편성을 위한 포석을 깔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신당론'은 정계개편, 정치권 이합집산, 개헌문제 등과 직접 연결되는 복잡한 문제다. 또한 신당을 한다 해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효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신당 세력이 개혁적 정계개편을 주장하며 선도적으로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오는 형식인지, 일단 당 개혁안 마무리 이후 당내 경선을 치르고 거기서 승리한 후 구주류를 축출하는 방식인지 등등 경로는 다양하고, 그에 따라 결과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과연 선거에서 효과가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데에는 금년 1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적표, 북핵문제 등 외부변수의 변화, 경제여건 변화 등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다.

이와 같은 다차원 방정식의 해법에 따라 신당론은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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