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주최한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정부를 향해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는 도대체 이라크의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 파병이 북핵위기 해결과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500여 명의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자이툰 부대는 이제 그만 철군하라', '점령군은 이라크를 떠나라', '이란 공격에 반대한다', '한국군 레바논 파병에 반대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한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청소년 평화단체 '전쟁을 반대하는 청소년들' 등 다양한 단체들이 이날 집회에 참가했으며, 집회장 곳곳에서 평화와 반전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연장 동의안도 없이 파병할 군인 모집하는 정부"
발언에 나선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는 국회를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로 만들었다"며 "파병연장 동의도 받지 않고 이미 이라크에 보낼 병사를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참전군인들이 만든 평화단체인 '미국 평화재향군인회'의 대표단 5명은 차례로 자신의 경험과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토머스 케네디는 "미국은 이제 한국을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을 한국으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교민 1.5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존 킴은 "1970년대에 주한미군에서 복무했다"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외쳤다.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은 길거리의 시민들이다" 1985년에 설립된 미국 평화재향군인회는 현재 6500여 명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중 이라크전에 참가했던 이들이 3000명이 넘으며 현재도 참전군인들이 속속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23일 집회에 참가한 래리 커시너(Larry Kerschner) 역시 이 단체의 회원이다. 그는 20살 무렵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후 꾸준히 평화와 반전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은 커시너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나는 20살이었다. 전쟁에 참전하고 난 뒤 제대했을 때 깨달았다. 정말로 끔찍한 사실은 정부와 사회가 사람들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변했다. 프랑스의 점령 이후 또 다시 미국 때문에 전쟁을 치른 베트남이 있고 사담 후세인은 갔지만 미국, 영국, 한국 등에 의해 점령당한 이라크는 어떤 면에서 베트남과 닮은 꼴이다. 나는 한 국가의 시민들이 자기 조국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가 끝나고 난 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국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았는가. 현재 많은 국가들의 미래가 스스로 '세계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대통령과 미국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다행히 미국 시민들이 깨어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전 세계에서 저지른 전쟁, 고문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나는 전쟁을 멈추는 힘은 정부 스스로에서 나올 수 없다고 본다.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과, 집총을 거부하는 군인들이다. 베트남전을 멈추게 한 것도 이 전쟁에 반대한 시민들 덕분이었다. 이라크전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드디어 미국 시민들이 전쟁 반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의회에서도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폭력과 공포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아닌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원인 김우용 씨는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에서 차례로 전쟁을 치른 지난 5년 간은 민중에게는 50년 간의 고통이었다"라고 말했다.
사회진보연대의 공성식 활동가는 "3년 전보다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 역시 폭력과 공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폭력에 무감각해져 가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 발언자로는 청소년단체인 '전쟁을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이슬(17) 양이 나섰다. 그는 "그 수많은 생명이 꺼져가는 그 자리에, 모두가 비난하는 그 자리에 한국 군인들이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버티고 있다"며 "목소리를 합쳐 더욱 큰 목소리로, 전쟁이 일으킨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외쳐달라"라는 내용의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낭독해 참가자들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이슬 양이 낭독한 호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들을 수 있게 크게 평화를 외쳐주세요" (청소년인) 우리는 하루하루를 전쟁 속에서 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입시난, 수능대란, 취업난…. 대한민국은 우리를 끊임없이 전쟁터로 내몰아갑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전쟁의 사전적인 의미는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이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나 상태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내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깎아내려 이기기 위한 전쟁과 경쟁을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적자생존. 누구의 기준인지, 무슨 기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한 사람만이, 경쟁력을 갖춘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대편에선 강한 나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약한 나라 이라크의 너무나도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겐 석유가 이라크인들의 생명보다 중요합니다. 그 수많은 생명이 꺼져가는 그 자리에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기적인 행동을 우리나라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군의 파병과 같은 행위에 대해)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비난하는 그 자리에, 마치 들리지 않는다는 듯 버티고 있습니다. 강대국이 말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지금도 이라크의 작은 마을 한복판엔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아이들이 지뢰를 밟고, 울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란의 아이들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밤잠을 설칠지도 모릅니다. 평택에서는 미국의 전쟁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이 몇십년 동안 그곳에 살던 또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을 내쫓고 있습니다. 더이상은 눈과 귀를 가리고 모르는 척할 수 없습니다. 눈과 귀를 가린 손 사이로 평화를 잃은 사람들의 아픔이, 외침이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택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미 수많은 청소년들도 전쟁 없는 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우리나라가 손해 보는 일만 없으면 된다며 강자가 일으킨 전쟁을 합리화시키는 사회는 이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이젠 더이상 바라지만 말고, 꿈꾸지만 말고, 나와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목소리를 합쳐, 더욱 큰 목소리로 전쟁이 일으킨 그들이 들을 수 있게 외쳐주세요. 평화가 세계에 더욱 빨리 깃들게 하기 위해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평화·반전 메시지 위한 다양한 퍼포먼스 선보여
이날 집회장 주변에는 이라크 전쟁 및 한미 FTA,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에 반대하는 내용의 다채로운 '볼거리'가 진행돼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FTA라고 적힌 흰 가면을 쓴 채 검은색 차도르를 입은 어떤 이는 낚싯대로 한국국민을 낚아채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 10여 명은 '자이툰 철수행 열차'라는 게시판을 들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켠에서는 '평화'와 '평택주민'이라고 쓰여진 사람모형 두 개가 철조망에 감긴 형태의 조형물이 전시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얼굴에 팔레스타인의 국기를 그리거나 '평택에 평화를!' 등의 구호를 써 넣고 집회에 참가했다.
서울역 앞 집회를 마친 뒤에는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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