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파병' 여론조사 하나 못하는 나라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파병' 여론조사 하나 못하는 나라인가?

<데스크칼럼> 정부ㆍ언론의 '어물쩍 넘어가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한국의 지지표명에 대해, 비전투병 파병에 대해 왜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없을까? 여론조사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해 놓고도 발표를 안 하는 것일까?

미국은 물론이고, 공격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 심지어 엄격한 통제사회인 중국마저 이번 미국의 공격에 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연일 그 결과가 발표된다. 하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공식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거의 없었다. 국익을 명분으로 비전투병 파병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차 국민여론을 전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나 발표된 지난 20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그 의도적 편향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본지 20일자 ‘한국갤럽 파병 동의 유도성 여론조사 논란’ 참조).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 네티즌 폴을 실시했지만, 그건 과학적 조사라 할 수 없다.

도대체 왜 이럴까? 궁금증을 풀어 보려 몇 통화 전화를 걸었다.

***“불가항력적 문제, 조사하기 곤란하다”**

먼저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책임자를 찾았다.

“우리 회사는 조사한 적 없고, 내가 아는 바로는 메이저급 회사의 경우 다른 곳도 조사한 곳이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정부 일도 조금 하고 있는데, 아직 그런 의뢰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우리와 제휴된 언론사에서 이라크 관련 항목을 의뢰한다면 모를까 자체적으로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아마 언론사에서도 의뢰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한 일간신문의 여론조사 담당자를 찾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대답이 나왔다.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선택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사하기가 곤란하다. 위에서 조사하라고 해도 나 스스로 설문문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매우 고민될 것 같다”는 것이다.

곧이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놨다.

“여론은 반대가 많을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우리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지지했고, 또 파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지 않으냐. 이 경우 이라크 전쟁의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찬반 의견을 묻는 식으로 설문문항을 만들어야만 그나마 엇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럼 편파시비가 붙을 것이고, 그래서 조사하기가 매우 부담스럽다.”

2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가 왜 의도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정부 당국자를 찾았다.

“본격 조사는 아니고 엇비슷한 조사만 해 봤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찬반은 아니고 파병에 대한 것이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아직 일반 국민들 사이에 이 문제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나쁜 짓 하는데 왜 우리가 동참하느냐’는 정도의 반발 수준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등 이모저모를 따져보는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 같다.”

“보수언론들도 파병하자는 주장인데 아마 여론조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방송사들도 쉽지 않을 것이고. 민간에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였다.

“이라크에 파병하는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찬성이 많을 것으로 보는가? 한나라당 지지자 쪽이다. 그래서 여론조사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수준이 이 정도인가?**

몇 군데 전화통화후 한국이 처한 현실이 너무도 슬퍼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모두 인정했듯이 굳이 여론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정도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다. UN과 전 세계가 반대하는 일방적 공격, 거기 찬성하는 불과 30개 나라 가운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한마디로 한국민 다수는 미국의 공격에 반대하고, 한국의 지지 표명에 반대한다. 특히 노 대통령의 당선과 새 정부 출범을 지지한 사람들의 반대 강도가 더 높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지지의사를 천명했고, 1개 대대 규모의 공병대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모여 대통령이 ‘국방당’, ‘안보당’이라 통칭할 정도로 일치단결된 파병 의지를 보여준다. 주요 언론들 역시 우리 정부의 지지와 파병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이유는 ‘국익(國益) 때문’ 단 하나다. 한미관계, 북핵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불가항력의 구조 위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불가항력적 구조 위에 있는 것인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우리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인지 논쟁의 대상이다. 충분한 국민적 토론과 공론화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여론이 실제 어떤지 과학적으로 조사해서 드러내는 일이 마땅히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도 언론사도 공공기관들도 여론조사 하기를 꺼린다. 어물쩍 넘어가자는 것이다.

아무리 여론조사 해봐야, 아무리 논쟁을 벌여 봐야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어쩔 수 없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인가? 백보를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해도 여론은 그와 다르다는 객관적 조사보도 하나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우리사회의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얘긴가?

이대로라면 전 세계 핵심이슈인 미국의 이라크 공격, 그에 대한 한국의 지지 표명 및 파병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정말 어느 정도인지 단 한차례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말지 모르겠다. 이라크 전황의 변화에 따라 여론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서로 자기 ‘감’만 믿고 억지주장으로만 맞서라는 얘긴가?

반전평화운동단체가 수천만원 비용을 조달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그런 조사를 의뢰하지도 실시하지도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