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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의 부활'이 '진짜'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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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의 부활'이 '진짜' 한강의 기적

[현장을 가다] 밤섬은 지금도 계속 성장하는 중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 치고 한강만한 규모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그 규모에 우선 놀라고 시민의 접근성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든가 수운(水運)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등의 문제를 알고는 다시 한번 놀란다. 그런데 한강과 함께 살아온 서울 사람들도 놀랄만한 일이 바로 이 한강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다.

바로 '밤섬의 부활'이다. 1968년 송두리째 폭파돼 제 돌과 흙을 인근 여의도의 윤중제 공사에 내주었던 밤섬이 38년 남짓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적토사가 쌓이면서 원래의 섬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태풍이 한반도를 스치고 지나가던 날 한강시민공원사업소의 도움을 받아 밤섬 부활의 현장을 둘러봤다.

서강대교 남단에 위치한 여의도 선착장에서 한강시민공원사업소 환경과 장원준 주임을 만나 함께 보트에 올랐다. 보트는 우선 아랫 밤섬의 하류쪽 꼬리를 향했다. 그동안 마포대교와 서강대교를 건너며, 또는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무심코 지나치던 이 밤섬에 다가가자 뭍에서는 전혀 마주하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 마포대교와 당산철교 사이에 위치한 밤섬. 서강대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상류(오른쪽) 쪽이 '윗밤섬', 하류(왼쪽) 쪽이 '아랫밤섬'이다. 이 위성사진의 위쪽은 마포 지역이다. ⓒGoogle earth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아랫 밤섬 서쪽 끝자락에 길게 형성된 뻘이었다. 퇴적현상으로 밤섬이 '넓어지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뻘 위에는 갈매기, 왜가리, 가마우지 등 20여 마리의 새들이 자기 집인 양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보트가 다가가자 가마우지들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뻘은 제법 넓어 보였다. 장 주임은 "서해안 만조의 영향을 받는 한강 수위에 따라 시시각각 뻘의 넓이가 달라 보이긴 하지만, 지난 7월 홍수 이후 확실히 뻘이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밤섬은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두 번이나 물에 잠겼고, 그 때마다 쌓인 토사로 면적을 계속 넓혀 왔다는 얘기다. 당시 상류에서 떠내려 온 각종 쓰레기도 함께 밤섬에 쌓이는 바람에 얼마 전 특전사 장병들이 수고해 이를 말끔히 청소하기도 했다.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췄던 밤섬은 이런 방식으로 1970대의 어느날부터인가 다시 자취를 보일듯 말듯 하다가 1985년 5만3600평의 규모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2005년 7만9200평으로 넓어졌다. 매년 평균 1270평씩 늘어난 셈이니 올 여름을 지나면서 8만 평을 돌파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면 폭파에 의해 강제로 깨져나간 원래 밤섬의 해발고도는 회복하지 못했어도 면적만은 옛 수준에 충분히 이르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 아랫밤섬의 하류 부분에 길게 뻗어 있는 뻘. 마포에서 여의도 방향을 바라본 앵글이다. ⓒ프레시안

보트는 아랫 밤섬의 서쪽 끝을 돌아 마포 쪽 물길에 접어들었고, 서강대교 아래에 배를 대고 잠시 섬에 올랐다. 신발 밑창을 통해 전해져오는 흙의 질감이 부드럽다. 강의 퇴적물이 쌓이다보니 고운 모래가 섬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낯선 풍경과 느낌을 즐기는 순간 인기척을 느낀 꿩 한마리가 파닥 거리며 날아올랐다. 지난 홍수 때 높은 나뭇가지나 서강대교 구조물 사이에 올라 홍수를 피했던 모양이다. 간혹 쥐구멍이 발견되긴 했지만 물에 종종 잠기다 보니 포유류가 서식할만한 환경은 못 된다고 한다. 알을 훔쳐 먹는 천적이 없는 덕분에 밤섬은 '새들의 천국'이 됐다.
▲ 퇴적된 흙에 20cm 가량이 묻힌 표지석.ⓒ프레시안

장 주임은 기자를 한 표지석으로 안내했다. 대리석에 '밤섬주민 옛 생활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당초 밤섬에는 60여 가구 500여 명이 살고 있었으나 1968년 섬이 파괴되면서 마포로 강제이주됐다. 당시만 해도 밤섬은 한강의 '해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이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고, 한강에 물이 적을 때는 여의도와 백사장으로 연결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표지석이 1/3쯤 흙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홍수를 겪으면서 흙이 20cm 정도 쌓인 것이다. 밤섬이 자기 면적을 넓혀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로도 높아가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다. 관측결과에 따르면 홍수가 나지 않은 해에도 숲이 발달하면서 1년에 6cm가량씩 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복원력이었다.

표지석 주변을 둘러봤다. 그다지 눈에 띄는 풍경은 없었다. 오로지 모래와 풀과 나무들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주변의 나무들 대부분이 버드나무라는 점이었다. 풀도 억새만이 군락을 이루며 넓게 펼쳐져 있었다.

장 주임은 "여기 버드나무들은 누가 가져다 심은 것이 아니라 강에 실려 내려온 버드나무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 성장한 나무들"이라고 소개했다. "밤섬의 식생을 다양화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을 심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런 시도도 해봤지만, 홍수 때면 물에 잠기는 섬의 특성상 '물에 강한' 식물만 스스로 살아남아 오늘과 같은 생태계를 이루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버드나무와 억새는 늪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이 대목 역시 자생적인 복원으로 설명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 1968년 폭파와 골재채취로 분리됐던 밤섬이 최근 퇴적화가 이뤄지며 다시 '하나의 섬'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은 밤섬의 분리된 부분으로서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흙이 많이 차올랐다. 뒤편은 아랫밤섬을 가로 지르는 서강대교. ⓒ프레시안

반면 서강대교는 밤섬의 '옥의 티'라고 할만 했다. 서강대교 아래는 그늘이 져서 나무나 풀이 잘 자라지 않고, 자동차들의 소음과 진동이 밤섬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섬에서 나와 다시 보트를 타고 윗밤섬 쪽을 향했다. 아랫밤섬을 지나 윗밤섬으로 가는 동안 두 섬을 구분짓는 물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도 퇴적이 빠르게 진행돼 점차 밤섬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밤섬은 원래 하나였는데, 골재를 채취하며 두 동강이 났었다.

조금 지나 윗밤섬 옆을 지나다 또 다른 '퇴적'의 증거를 발견했다. 윗밤섬에서 마포 쪽으로 10미터 떨어진 지점에 '모래톱'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물밖으로 살짝 정수리를 내밀고 있었다.
▲ 밤섬에서 마포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부분의 모래톱에도 퇴적작용이 계속되며 뭍의 모습이 갖춰져가고 있다.ⓒ프레시안

이는 밤섬의 수면 아래 퇴적 면적이 상당히 넓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밤섬 주변을 도는 동안 보트는 섬과 50m 이상의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뻘이 길게 뻗은 부분에서는 더 멀리 돌았다. 아랫 밤섬의 꼬리부분만큼은 아니지만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윗 밤섬의 동쪽 끝에도 뻘이 뻗어 나와 있었다.

모래톱과 같은 밤섬의 마포 쪽 퇴적현상은 자연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강의 물길은 밤섬을 거의 지날 무렵까지 북서쪽을 향해 흐르다가 밤섬의 꼬리 부분에서 다시 방향을 남서쪽으 바꾼다. 따라서 굽이치는 물길의 바깥쪽인 마포 쪽은 강변이 계속 깎여나가고, 밤섬의 마포쪽에는 계속 토사가 쌓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 과거 한강종합개발 이전만 해도 강북 쪽 마포는 절벽이 많았고, 반대 여의도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제 마포 쪽과 여의도 쪽에는 모두 콘크리트 옹벽이 둘러쳐지는 바람에 과거와 같은 침식과 퇴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한강 한복판의 밤섬에서는 한강이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인 곳에서 자연이 일으키는 조화!

마포대교 쪽에서 바라보니 윗밤섬과 아랫밤섬의 식생의 차이가 문외한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닜다. 홍수 피해를 온 몸으로 떠안은 윗밤섬에는 나무류 보다 억새와 같은 초본이 발달해 있었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아랫밤섬은 버드나무가 무성해 정글처럼 보였다.
▲ 윗 밤섬에 형성돼 있는 억새군락.ⓒ프레시안

밤섬을 돌아 다시 서강대교 쪽으로 향하던 중 새로운 장관을 맞았다. 큰 버드나무 위에 가마우지 100여 마리가 줄 지어 앉아 있었다. 사람에 민감한 가마우지 떼는 보트가 가까이 지나자 일제히 날아올랐다. 멀리 여의도에서는 좀처럼 실감할 수 없는 풍경이 밤섬에서는 펼쳐지고 있었다. 각종 철새들이 몰려오는 겨울에는 더 큰 장관이 연출된다고 한다.
▲ 보트가 접근하자 버드나무가지에서 휴식을 취하던 100여 마리의 가마우지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프레시안

밤섬을 한 바퀴 돌고 여의도로 돌아오는 길에 여의도 쪽을 향하고 있는 부표와 서강대교 교각에 걸린 '한강 밤섬 생태·경관 보전지역'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장 주임은 "밤섬이 이렇게 커지자 간혹 개발을 하자는 소리도 들려 온다"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생태계 보전지역임을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라도 알리기 위해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소개했다.

밤섬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된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의 허가를 받아야만 주변을 둘러보거나 입도(入島)할 수 있고, 그것도 새들의 번식기에는 엄격히 통제된다. 밤섬에 살던 주민들이 가끔 제사를 지내지만, 2~3년에 한 번씩, 그것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적은 달을 골라 허가해준다.
▲ 마포대교에서 바라 본 밤섬의 모습.ⓒ프레시안

인간들이 무자비하게 파헤쳐 없애버렸던 밤섬은 이렇게 스스로 몸피를 키우고 풀과 나무를 기르고 새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20세기 한강의 기적이 섬과 강안을 파헤치고 그곳에 인간들의 입맛대로 콘크리트를 찍어발라 자연의 숨결을 지운 것이었다면, 21세기 한강의 기적은 하찮고 쓸모없어 보이는 밤섬의 복원과 같이 한강이 스스로 인간의 숨결을 뚫고 소리 없이 자기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개발로만 치닫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반역이자 경고로 보이기까지 했다.
'저자도'와 '부리도'를 아십니까?

한강의 서울 지역에는 섬이 몇 개나 있을까? 일단 한강대교가 지나는 노들섬, 철새의 낙원이 된 밤섬, 최고의 데이트 코스가 된 선유도 등 3개의 섬이 먼저 손에 꼽힌다. 거의 육지화가 이뤄진 여의도는 섬이라 부르기 민망하고, 반포지구에 새로 생겨난 6900평의 '인공 미니섬'인 서래섬도 섬이라 부르기에는 좀 빈약하다.

그렇다면 '저자도'(楮子島)와 '부리도'(浮里島)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도는 완전히 사라졌고, 부리도는 여의도처럼 사실상 육지가 됐다.

저자도는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 있던 35만 평의 모래섬이었다. 닥나무가 많아 '닥나무 저'(楮) 자를 썼다는 저자도는 옥수동 앞에 있어 '옥수동 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저자도에서 배를 띄우고 강변에서 군사들이 씨름하는 광경을 보며 즐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50~60년대에는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다.

그러던 저자도는, 밤섬이 여의도에 제 흙을 내주었듯이, 강 건너 압구정동 매립을 위해 파헤쳐졌다. 1969년 강남 개발의 일환으로 압구정지구 4만8000평에 대한 매립허가를 받은 현대건설은 저자도에서 모래를 퍼서 압구정동 지역을 매웠다. 72년 압구정 매립이 끝날 무렵 저자도는 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부리도는 지금의 잠실과 신천을 말한다. 부리도를 중심으로 물길이 남쪽과 북쪽 두 곳이 있었고,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섬이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1970년 4월 부리도의 북쪽 물길을 넓히고 남쪽 물길을 폐쇄해 섬을 육지화하는 대공사가 시작됐다. 100만 평이 넘는 땅이 매립됐고, 주변 구획정리를 통해 340만 평의 땅이 새로 만들어졌다. 폐쇄된 남쪽 물길은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게 됐다. 여기서 섬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위대한 자연의 복원력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밤섬은 송두리째 파괴된 뒤 스스로 되살아나고 있다. 원래 섬이 있던 자리에 다시 섬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도는? 원래 저자도가 있던 자리도 그대로 두면 섬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 한강에만도 동쪽부터 탄천, 중랑천, 반포천, 안양천, 홍제천 등 많은 지류가 유입되고 있다. 지류에서 흙과 모래도 함께 유입되는데 한강과 만나면서 유속이 느려지고 지류의 하구 부근에 계속 퇴적물이 쌓이는 것이다.

실제로 중랑천 하구인 저자도가 있던 자리도 계속 흙과 모래, 자갈이 쌓여 서울시가 매년 준설작업을 통해 걷어내고 있다. 준설작업에만 매년 20억~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에서는 "괜한 돈을 들이지 말고 자연 섭리대로 놔두는 것이 좋다"고 지적하기도 하나, 서울시는 "유속 약화와 이에 따른 홍수 범람 등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준설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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