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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부숴도 우리 마음은 못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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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부숴도 우리 마음은 못 부순다"

대추리 '빈집 강제철거'…주민들 '담담'

13일 전격 실시된 국방부의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대한 '빈집 철거' 작전에 혹시라도 주민들에게 공포감과 좌절감을 안기려 했던 의도가 있었다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아 보인다. 주민들은 경찰과 용역 직원들을 향해 "죽어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결의를 나타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철거작업은 경찰이 철거대상 집을 둘러싸고 용역직원들이 가재도구를 끌어내면 굴착기가 지붕과 담벼락을 몇 번 툭툭 쳐서 무너뜨렸다. 한 채를 철거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붕점거해 15채 지켰다"

그렇게 거침없이 진행되던 철거작업이 멈춘 것은 지붕 위에서 '결사항전'을 벌이던 '평택 지킴이'들과 마을 주민들 때문이었다.
가옥 철거를 막기 위해 지붕에 올라 농성 중인 '평택 지킴이'들.▲ ⓒ프레시안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하며 1~2년 전부터 아예 대추리에 살림을 차리고 '농부'가 된 평택 지킴이들은 '강제철거, 인권침해', '철거하려면 죽이고서 해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지붕과 옥상에 올라가 몸을 밧줄에 묶은 채 농성을 벌였다. 이들이 올라간 집은 총 15채.

미군기지 철조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오면 대추분교 정문 앞에 있는 '빈집'의 지붕에 오른 두 명의 인권활동가는 "강제철거는 주민들에 대한 협박이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을 재검토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주변 집들부터 철거하던 용역들은 이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올라갔다.

그러나 이들이 "용역에 의한 강제연행은 불법"이라며 강하게 맞섰고, 용역 직원들은 이들을 끌어내리지 못하고 주변의 지붕 슬레이트만 걷어냈다. 이들이 끌어내리지 못하자 경찰이 나섰다. 현장 지휘관은 "여러분은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다"며 2차례에 걸쳐 경고방송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고 구호 소리만 높아졌다.

이에 주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70대 할머니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야, 이놈들아. 니들이 뭘 해준게 있다고 여기서 지랄들이냐"며 주변의 경찰과 용역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일제 때부터 쫓겨나오고 미군 들어와 쫓겨나올 때도 나라는 밥 숟가락 하나 해준 거 없고, 이 땅 일구는 것도 다 우리 손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어 철조망에 갇혀 지금은 방치돼 있는 논을 가리키며 "이 옥토를 두고 나더러 어디로 가라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날 끌어내려면 죽여서 끌어내라"며 절규하고 있는 마을 주민.▲ ⓒ프레시안

"우리 착한 이장은 잡아가고, 돈 쳐먹는 위정자들은 놔두고"

김지태 이장 구속도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닫게 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착하고 성실한 이장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 잡아 가뒀냐"면서 "맨난 돈 쳐먹으면서 호가호위하는 놈들은 안 잡아가고 우리 이장 잡아가둔 것들을 내가 어떻게 믿느냐"고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날 끌어내려면 죽여서 끌어내라"고 절규했고, 할머니의 안전을 걱정하던 기자들의 권유에 의해 지붕을 내려왔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집의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는 "너희들이 땅을 빼앗고, 집을 부숴도 우리 마음을 빼앗고 우리 정신을 부술 수는 없다"며 "굴착기에 깔려 죽는 날까지 이 땅, 이 집에 머물며 싸우겠다"고 외쳤다.

지난 5월 대추분교가 철거되고 논에 철조망이 설치되던 때에 비해 이날 주민들의 모습은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너지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주민들은 "○○이네 집은 어떻게 됐대? ○○이네 집에 가봐야겠네"라며 삼삼오오 마을을 둘러보는 등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2시 20분경 용역 직원들이 지붕이 점거된 15채의 가옥에 대한 철거를 중단한 채 철수하자 어떤 주민은 "우리가 이긴 거네"라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한 주민은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은 지난 2년 동안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봐서 이제 더 볼 험한 꼴도 없다"며 "여기서 손 들고 나갈 거였으면 벌써 나갔지"라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 등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국방부 90채 철거 대상 중 74채 철거

국방부는 이날 철거 용역 400여 명과 굴착기 10대 등 중장비를 투입해 대추리·도두리 일대의 빈집 철거 작업을 실시했고, 경찰은 용역의 철거작업을 돕기 위해 1만7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경비작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의 집 한 채와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평택 지킴이'의 집 한 채에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경찰이 먼저 집을 살펴본 뒤 "여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용역 직원들에게 알렸으나, 용역들이 이를 무시하고 가재도구를 들어낸 뒤 가옥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또한 집주인이 뒤늦게 달려와 말리며 항의하자 용역 직원들이 "내가 알게 뭐냐. 국방부에 가서 물어보세요"라고 이죽거리며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철거 과정에서 전깃줄 등이 끊어지는 등 마을 기반시설이 파괴돼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주민들은 "일부러 전기를 끊으려는 것이냐. 철거공사의 안전수칙이나 알고 공사하는 것이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국방부는 이날 90채의 철거대상 가옥(대추리 43, 도두리 38, 내리 9) 중 '지붕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옥을 제외한 74채 가량을 철거했다. 이주가 완료된 가옥은 130채이지만 40여 채는 '평택 지킴이'가 거주하고 있거나 이주민들이 철거를 반대하고 있어 이번 철거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가옥 한 채를 파괴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프레시안

완전 파괴된 가옥. "이 땅을 끝까지 지킨다."▲ ⓒ프레시안

문인들이 대추리의 담벼락마다 시를 적었지만, 이날 철거로 파괴됐다.▲ ⓒ프레시안

철거한 가옥 부지에 세워진 푯말. 뒷편에 지붕 농성을 벌이고 있는 '평택 지킴이'들이 보인다.▲ ⓒ프레시안

한 마을 주민이 지붕 농성을 볼이고 있는 마을 주민과 평택 지킴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

지붕 농성을 벌이고 있던 도중 용역 직원들이 올라가 주변의 지붕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있다.▲ ⓒ프레시안

대추리에는 주민들 법률자문을 하기 위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집도 있었으나 이날 철거됐다. 길 밖에 끌어내져 있는 집기들.▲ ⓒ프레시안

지난 5월 농지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이뤄져 논으로 가는 길이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뒷편에 군의 초소가 보인다. 주민들이 '옥토'라고 자랑하던 황새울 들이 완전 억새밭이 됐다.▲ ⓒ프레시안

텃밭에서 가꾼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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