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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노랗고 '속'은 흰 바나나를 닮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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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노랗고 '속'은 흰 바나나를 닮은 사람들"

2006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난 '아시아의 현재'

지난 8일 2006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바나나를 쌓아놓은 탁자 앞에서 한 여성이 전단지와 함께 'Banana Power'라고 스티커가 붙은 바나나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공짜 음식'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아예 송이째 집어가기도 했다. "뭐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 여성은 대답 대신 웃으며 전단지를 읽어보라는 신호를 줬다.

행사장 앞에서 흔히 펼쳐지는 홍보 행사처럼 보이는 이 이벤트. 그러나 바나나를 건네받고서는 그 앞에서 전단지를 읽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고, 종종걸음으로 전시관에서 되돌아나와 "수고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이 여성은 자신이 UFOlab(유에프오 랩)이라는 이번 비엔날레 참가팀의 팀원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똑같은 행사를 지난 7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도 진행했다고 한다. UFOlab은 한국계 입양인 예술가 그룹이며, 바나나는 '겉'은 노란 피부의 동양인이지만 '속'은 흰 피부의 서양인을 닮은 입양인을 상징하는 과일이었다.

바나나와 한국 입양인들은 같다?
▲ ⓒ프레시안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지난 7월 4일 코펜하겐에서 2006광주비엔날레에 초청받은 덴마크 예술작가들이 모인 워크숍 자리에서 생각해 냈다. 당시 '아시아, 도시, 공동체' 등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에 대한 진행되던 토론은 이민, 인종차별, 그리고 덴마크와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현재 UFOlab이란 이름으로 결성된 한국계 덴마크 입양인들이 개발한 '바나나 이론(Banana Theory)'이 소개됐다. '바나나 이론'이란 국제 입양이 보편화된 세계에서 '내재된 인종주의' 문제를 말한다. 백인 가정의 아시아계 입양아들은 말 그대로 '백인'으로 자라지만 실제로는 노란 피부의 아시아인이다. 겉은 노랗고 안은 흰 바나나와 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7월 코펜하겐과 이번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생바나나와 바나나 쉐이크, 바나나 구이 등을 나눠주며 그들의 '바나나 이론'을 선보였다.

"더이상 '가난해서' 입양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 ⓒ프레시안

이들이 '바나나 이론'을 통해 비엔날레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혜진 씨 또한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됐으며 현재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UFOlab 일원 중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한 유일한 팀원이었다.

정 씨는 "바나나 이론은 해외 입양인들이 겪어야 하는 인종차별, 심리적 괴리감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도중 그에게 한국인 관람객들이 한국 말로 물을 때마다 "한국말을 못한다"고 영어로 답하는 그의 난처한 표정은 입양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정혜진 씨는 "한국은 한때 '가난하고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외 입양을 촉진했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진 지금 더이상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한 참가자는 "입양인들은 본인이 1970년과 1980년 사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 '수출품'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정 씨는 전했다.

정 씨는 "실제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해외 입양은 더이상 '가난한 부모나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입양 단체들의 '사업'이 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해외 입양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7일과 8일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진행된 UFOlab의 프로젝트는 앞으로 남은 전시기간동안 제5전시관에서 비디오 작품을 통해 계속 만날 수 있다.

"이주 노동, 입양, 인종 차별…아시아의 현 주소"
▲ ⓒ프레시안

'아시아'를 주제로 한 2006 광주비엔날레에는 '바나나 파워' 이외에도 이주 노동, 입양, 인종 차별, 민족 배타주의 등 국제 이주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들이 설치됐다.

덴마크의 예술작가 그룹 슈퍼플렉스(Superflex)와 한국의 예술작가 그룹 믹스라이스(Mixrice)가 각각 전시한 포스터는 서로 연계돼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슈퍼플렉스는 '외국인들이여, 덴마크인들과 함께 있도록 우리만 남겨두지 말아요(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라는 작품을, 믹스라이스는 이 작품을 응용해 '외국인들이여, 한국인들과 있도록 우리만 남겨두지 말아요(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Koreans)'라는 작품을 각각 복도 양 끝에 설치해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해외 입양아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도 믹스라이스의 '리턴(Return)'은 한국에서 10년동안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방글라데시인과 네팔인들을 직접 찾아간 여정을 만화로 그린 작품이며 한국의 김홍석 작가의 '처제의 방'은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 및 문화간 소통의 어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또 프랑스 작가 센 유엔(Shen Yuan)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고정관념과 이주로 인해 나타나는 문화적 오해를 표현한 '공룡알', 네덜란드 작가 줄리카 루델리우스(Julika Rudelious)가 네덜란드의 성공한 사업가 및 이주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동영상 작품 '이코노믹 레프트(Economic Left) 등도 해외 이주가 낳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 믹스라이스의 '리턴' 중 일부(좌) 김홍석의 '처제의 방' 중 일부. 당나귀 모형 앞에는 "당나귀 인형옷을 입고 연기하시는 분은 멕시코 출신의 노동자인 시에라 씨입니다. 이분은 불법 체류자이시며 이러한 연기를 대행해주는 조건으로 시간당 5000원, 하루 8시간을 일하게 됩니다. 이번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잠시 고용된 이 외국인 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우)ⓒ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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