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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로드맵 둘러싼 '기묘'한 파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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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로드맵 둘러싼 '기묘'한 파워게임

노사 각각 '다른 목소리'로 진통…입법예고 속 논란 지속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둘러싼 노·사·정의 움직임이 기묘한 '파워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간 로드맵의 주요한 쟁점이 돼 왔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 각 주체별로 다른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면서 로드맵 입법에 혼선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경영계는 일단 두 쟁점 사안을 5년 유예하기로 이미 지난 2일 합의했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계 일각에서 이 합의에 대해 '야합'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 경영계에서도 강한 노조를 가진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 합의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

이같은 혼란 속에 "노사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던 정부는 '5년 유예안'을 거부하고 정부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의 합의는 밀실야합"…비정규·특수고용 노동자 반발
▲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좌),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우). ⓒ연합뉴스

우선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총연출한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의 간의 '5년 유예' 전격합의 '반전드라마' 내용이 알려지자 노동계와 경영계 내부에서 각각 나름의 불만의 쏟아져 나왔다.

노동계는 "한국노총이 경영계와 밀실야합을 벌였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불만의 목소리는 복수노조 금지가 그간 노조의 활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노총이 지난 1997년부터 5년씩 두 차례에 걸쳐 이미 복수노조 허용의 유예를 합의해 왔던 '전례'는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 등 현행법으로 노조 설립의 자유가 가로막혀 있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한국노총에 대한 불신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이에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금속연맹,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자 일동 등은 잇따라 성명을 통해 "긴 말 할 것도 없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국제노사정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에서조차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아 매년 한국 정부에 이를 폐지할 것을 권고해 온 사항이며 1500만 노동자의 단결권을 원천봉쇄해 온 악법 중 악법"이라며 이를 또 유예하자는 합의안을 비판했다.

또 이들은 "한국노총 집행부가 밀실합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지키보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노동귀족'의 권리일 뿐"이라며 "한국노총은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전임자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5년 유예'를 구걸해서라도 노조 상층 기득권자의 권리만을 지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대표들은 (주)한화개발이 운영하는 서울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충남지부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등이 모두 '복수노조 금지'라는 조항에 묶여 사측과 임단협 협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례도 지적했다.

노동계의 이같은 반발 속에 민주노총은 2일 회의에서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혔으나 5일 성명을 통해 이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복수노조는 즉각 시행돼야 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경영계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삼성·포스코 vs 현대·대우·기아

이 합의안에 대한 복잡한 이해득실은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복수노조 시대의 개막을 두려워 하고 있는 삼성과 포스코 등은 이번 합의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 기업들에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보다는 복수노조 허용 여부가 더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경총이 한국노총과 이같은 합의를 한 데에는 삼성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론까지 나왔다.

역설적인 것은 현대, 대우차 등 노조의 힘이 강한 기업들의 경우 복수노조 시대를 통해 노사관계가 새로운 모양새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온건한 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또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부담마저 동시에 덜 수 있다는 점도 로드맵 시행에 이들 기업들이 희망을 거는 부분 중 하나다. 이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의의 합의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고까지 말했다. 경영계 내부에서도 미묘한 전선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또 5년 유예한다는 것은 폐기하자는 얘기"

전문가들도 양측의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미 10년이나 유예된 것을 또 미룬다는 것은 로드맵 입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또 5년을 유예하는 것은 사실상 폐기하자는 것"이라며 "전임자 문제와 기본권 문제인 복수노조는 맞바꿀 사안이 아니다"라고 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배 본부장은 또 한국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조직의 사활적 문제로 보고 있지만 "노조 전임자가 너무 많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비정규센터 소장도 "복수노조 허용은 당장 현실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돌파해나갈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규식 본부장은 "정부가 이 합의안을 받아들여 로드맵의 핵심 사안인 두 가지를 또 유예하게 되면 노무현 정부가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 뭘 했냐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노사합의 거부 시사…노사정 대립 국회서 재연?

정부의 어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합의를 받아들이자니 이같은 노사 각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판과 전문가들의 지적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거부하기에는 '사회적 대화 존중'을 강조해 온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부는 지난 2일 대표자회의 직전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표자회의 참석을 설득하면서 "노사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한국노총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5년 유예안'이 합의된 후 노동부는 "내부 검토를 통해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6일 돌연 노사 합의를 거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노사 합의안을 거부하고 이 두 사안의 시행을 입법예고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최종 논의 중인 것으로 보이나 일단 5년 유예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7일 유예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날 "정부가 노사의 5년 유예 합의안을 전면 거부하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지만 유예기간을 3~4년 정도 줄이는 방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사정의 단순한 구도를 넘어 각 주체별로 내부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절충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막판까지 조율을 거쳐 8일 오전 중 정부안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배 본부장은 "정부안의 단독입법 예고뒤 국회에서 어떤 것을 수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사정의 합의 없이 정부안이 입법예고되면 국회의 통과 절차 기간 노사정의 정치적 대립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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