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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누구나 철 든다

[뉴스메이커] <뚝방전설>의 조범구 감독

'17:1의 전설'을 뛰어넘어 '18:1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청춘 영화가 있다. 조범구 감독의 <뚝방전설>이 바로 그 '18:1의 전설'의 주인공이다. 머릿수로 치자면 <뚝방전설>의 정권(박건형)이 <비트>(1997)의 환규(임창정)를 이기게 되는 셈이다. <뚝방전설>의 화려한 위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먹으로는 정권을 못 당할지 몰라도 거친 입담이라면 경로(MC몽)도 그 누구 못지 않다. 조범구 감독의 전작인 독립영화 <양아치어조>도 그랬다. 오죽하면 제목부터가 '양아치어조(語調)'겠는가. <뚝방전설>로 본격적인 충무로 데뷔전을 치른 조범구 감독을 만나기에 앞서 단단한 주먹과 걸쭉한 입담을 기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날 종로의 '프레이저 스위츠'에서 만난 조범구 감독은 기대와 달리 조금 더 점잖고, 훨씬 더 유쾌한 사람이었다.
조범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독립영화 <양아치어조>가 있긴 하지만 <뚝방전설>이 본격적인 충무로 감독 데뷔작이다. 충무로의 마이너와 메이저, 경험해보니 뭐가 다른가? "딱 세가지 면에서 다르다. 자본, 사람, 시스템. 독립영화에 비해 자본이 크고,전문인력들이 모인데다 제작사가 영화제작 경험이 많은 '싸이더스FNH'다 보니 축척된 노하우가 많았다. 한 마디로 편했다. 독립영화할 때는 나 혼자 이거 저거 하느라 많이 뛰어다녀서 영화 찍기 전부터 지쳤는데 <뚝방전설> 찍으면서는 <양아치어조> 때 소비했던 에너지의 10%밖에 쓰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뚝방전설>을 만들면서는 자의식을 좀 줄이고 유쾌하고 즐겁게 가려고 애썼다. 내 돈이 아니지 않나.(웃음)" - <양아치어조>에 이어 이번에도 박수진 작가와 같이 일했다. "박수진 작가와는 학창시절 때 인연을 맺었으니 벌써 19년 지기다. 처음부터 같이 작업해왔기 때문에 일하기 편하다. <양아치어조> 때는 내가 쓴 원안을 박수진 작가가 각색했는데 이번에는 박수진 작가가 시나리오를 혼자 다 썼다. 박수진 작가가 원래 남자들, 수컷들 이야기를 잘 쓴다." - 19년 지기면 서로 모르는 게 없겠다. "워낙 친한 사이라 박수진 작가랑 하는 얘기는 다 단답형으로 끝난다. 영화에 우리 둘이 하는 얘기가 많이 반영되는 편인데 영화 속에서 툭툭 뱉듯이 얘기하는 상춘(오달수)이 나라면 따발총 경로(MC몽)가 박수진 작가 스타일이다." - 다소 의외다. 조범구 감독이 상춘이라니, 지금 말하는 스타일로 봐서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언제나 다 똑같을 수 있나. 난 캐릭터의 전형성을 믿지 않는다. 앞에 있는 사람에 따라 말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나. 박수진 작가와는 둘이 서로 모르는 게 없으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 학교 다닐 때 싸움 좀 해봤나? 영화가 리얼하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잠깐 놀아봤다. 재구성하긴 했지만 인물 이름이나 캐릭터, 상황 설정 같은 건 그 때 친구들에게서 많이 빌어왔다. 그렇다고 정말 영화처럼 막 싸우면서 돌아다닌 건 아니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그런 게 다였다. 그러다 누가 시비 걸면 방어형으로 싸우고 그랬다. 하지만 금방 돌아왔다. 부모님이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결국에 돌아온다." - <양아치어조>에서도 그렇고 <뚝방전설>에서도 그렇고 모자지간, 부자지간의 정이 끈끈하게 그려진다. "원래 먹물들보다 방탕하게 놀아본 사람들이 부모한테 더 끈끈한 법이다. 흠 많은 사람일수록 정도 많다. 부모한테 신경 많이 쓰게 되는 법이다. 나도 부모님하고 살갑게 지내는 편이다. 지금도 같이 모시고 산다. "
조범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효자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의 중반 이후가 흥미롭다. 다른 청춘 액션영화들과 달리 '18:1' 전설의 몰락을 그린다. 정권(박건형)이 결코 1인자가 아니다. "꿈은 수정하면서 사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그걸 인정해야 살기가 편하고 자기자신도 덜 괴롭다. 결국에는 때 되면 누구나 철든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흔히들 '군대를 다녀와야 철 든다' 그런 말 많이 하는데 그게 아니다. 군대 때문이 아니라 나이 들면 철 드는 거다. 군대 안 다녀와도 나이 되면 철 든다." - 자신은 언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나? "10대 때 놀고 그러느라고 제대로 된 사춘기를 못 겪고 지나서 20대 때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황 많이 했다. 많이 힘들었는데 서른 넘어가니까 정리가 되더라. 남들보다는 늦긴 했지만 반칙 안하고 살고 있으니까 철 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 <양아치어조>부터 시작해서 '양아치', 이른바 아직 철이 덜 든 청춘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귀엽지 않나? 자기들끼리 소란을 피우고 돌아다니긴 하지만 남들에게 크게 민폐를 끼치는 건 없다. 3주 전쯤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한 열 대여섯 명 되는 남녀 고등학생 무리들을 봤는데 전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구석에서 펴" 그랬다.(웃음) 그랬더니 다들 "네" 하면서 구석으로 가더라. 내가 담배 끄라고 한다고 그 애들이 담배 안 피울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귀엽게 대해주는 게 맞는 거 같다. 원래 세게 가면 오히려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때 되면 다 철 든다."(웃음) - 확실히 영화 안에서 정권, 성현(이천희), 경로 세 친구들도 철이 든다. "누군가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불구가 되는 건 싫었다. 성장영화의 관점에서 볼 때 <양아치어조>가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뚝방전설>은 세 친구가 철이 들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착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 다른 인물들과 달리 유독 치수(유지태)만 과거도 추억도 없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치수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설정한 캐릭터다. 전사(前事)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진짜 건달이다. 그래야 미련없이 주먹을 날리고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기 때문에 코믹이나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범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내레이션을 성현이 하는 건 좀 의외였다.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경로가 하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성현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인물이 내레이션을 해야 정리가 될 것 같았다. 성현이 귀엽지 않나? 성현은 평범하면서도 생뚱맞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다. 정권처럼 떠났다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경로처럼 천방지축 떠벌이고 다니지도 않는다. 크게 하고 싶은 것도, 불만족스러운 것도 없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가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게 세 친구들이 철드는 이야기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 철 드는 이야기에 비해 결말은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싸운다는 설정은 청춘영화의 관습 아닌가? "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뭉쳐서 싸우지 않았으면 그 셋은 이후에 다시 만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수컷들에 대한 이야기다. 수컷들에게는 서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담과 전설이 있어야 한다. 세 친구는 마지막에 자기들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싸운 거다. 남성 관객들은 공감을 많이 할 거다. 내 친구들도 그렇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만날 때마다 매번 옛날 이야기하고 논다.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다. 남자들이 원래 유치하다." - 그래서 세 친구의 우정을 강조한 건가? "속 상하고 서운한 점이 있어도 타박하지 않는 게 우정인 것 같다. 영화에서도 그걸 그리려고 했다. 영화 속에서도 성현과 경로가 정권을 나무라지 않고 저 녀석한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짐작할 뿐 무슨 일이냐고, 왜 그랬냐고 묻지 않는다." - 놀 때 만난 친구들한테 영화는 보여줬나? 뭐라고들 하나? "흥행을 위해서 돈 내고 보라고 해야지 무슨 소린가.(웃음) 아마 명절 때나 되면 다들 모여서 비디오로 볼 것 같다.(웃음)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원래 설날이나 추석 때 한번씩 보고 그런다. 그 친구들이 보면 낄낄거리고 웃느라 정신 없을 거다. 그러다 또 다시 옛날 이야기 하고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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