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그린 그래스
출연 오펠 알라딘, 에릭 레드맨, 벤 슬리니
수입,배급 UIP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10분 | 2006년 |
상영관 메가박스, CGV, 대한극장 딜런 에이버리의 공격적인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 탓에 폴 그린 그래스의 노력은 다소 빛이 바랜 듯한 느낌이 든다. 데뷔작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지난 역사의 상흔에 대해 자신이 유달리 관심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킨 바 있는 이 영국 출신 감독은 이번 영화 <플라이트 93>을 통해서도 9.11 사태의 문제를 단순히 테러의 비극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적' 상처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
플라이트 93 United 93 ⓒ프레시안무비 |
딜런 에이버리와 달리 폴 그린 그래스의 영화가 그래서, 9.11의 진실이 무엇이고 또 그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때문이다. 그는 테러의 원인보다는 테러로 인해 빚어진 상처의 치유에 더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플라이트 93>은 그래서인지 세미 다큐 혹은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어, 마치 기계적이고도 기능적인 기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가치 평가는 나중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보다는 사태의 처음과 끝,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고, 또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를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플라이트 93>은 9.11 테러를 위해 동원된 총 네대의 민간 항공기 가운데 펜실베니아에 추락한 비행기에 대한 얘기다. 네대 중 두대는 무역센터빌딩에충돌했으며 한대는 펜타곤에 부딪혔다. 하지만 한대, 곧 '유나이티드 93' 항공기는 '엉뚱하게도' 펜실베니아 외곽, 인적이 없는 숲에 떨어졌다.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의 관심을 끈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왜 이 한대만은 무역센터빌딩이나 펜타곤을 향하지 않았을까. 그 비행기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당시 이 비행기가 추락하기 직전까지의 여러 상황을 종합하고 또 관제탑 등등에 녹음된 송수신 내역, 기내에서의 통화내역 등등을 면밀히 추적한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은 이 비행기가 이륙하고 추락하기까지의 모든 일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내는데 성공했다. '플라이트 93', 보다 정확한 이름인 '유나이티드 93' 항공기 역시 이날 테러범들에 의해 공중납치됐으나 무역센터로 향하는 도중, 승무원과 탑승객들에 의해 일어난 일종의 '기내 반란'에 의해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없애고 사람이 없는 펜실베니아 평원에 떨어질 수 있었던 것.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은 그 과정을 일체의 감정적 치우침없이, 마치 뉴스릴을 찍어 이어붙이듯 그려냄으로써 9.11 자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결국 왜 이 비행기만 펜실베니아에 떨어지게 된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감독의 궁극적인 질문은 이 참혹한 비극속에서나마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것에 있다. 어떠한 형태든 죽음은 숭고한 것임을 영화는 역설한다. 영화속 드라마를 – 사실은 실재 이야기를 - 테러범과 테러범에 맞서는 영웅들의 대결구도로 그리지 않은 것은 그때문이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폭탄을 몸에 두른 아랍계 청년들이나 그들과 마주한 채 일촉즉발의 위기에 한발한발 다가서는 승객 모두에게서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테러범은 알라를 부르고 인질이 된 승객은 예수를 부르는 아이러니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비극 가운데 가장 참혹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2001년 9월 11일, '유나이티드 93' 항공기 안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일, 어떤 사태에 직면해 있는가. 지독하게도 마음을 억누르는 다큐멘터리지만 우리 모두 결코 이 작품을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테러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소수가 지배하는 세계 권력의 종식을 위하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