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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당 이전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뉴스메이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개봉 앞둔 이창재 감독

다큐멘터리 한 편이 화제다. 9월 7일 개봉을 앞둔 <사이에서>가 바로 그 주인공. 이 다큐는 '무당'의 얘기를 그린다. 지금껏 무당 얘기를 그린 작품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 남다른 측면이 있다. 그건 무당을 '무당'으로 그려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숱한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그려 낸, 역설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신과 인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 무당이 아니라 - 사람, 다만 그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사이에서>는 대무(大巫) 이해경의 삶을 따라간다. 1991년 신내림을 받은 후 무당으로의 삶을 꾸려오고 있는 이해경에겐 그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쉼 없이 찾아온다. 스물여덟에 신의 부름을 받은 인희, 30년 동안 신의 목소리에 저항한 손영희, 겨우 여덟 살에 귀신을 보는 동빈이까지, <사이에서>가 담아내고 있는 이들 모두는 이해경과 같이 '숙명'을 등에 업은 자들이다.
이창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8개월이 넘는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며 울고 웃었던 이창재 감독은 요즘 기분이 묘하다. 이 영화를 국내에서 개봉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사이에서>는 'CGV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작'으로 선정, 극장 개봉까지 하게 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반극장 개봉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창재 감독을 만났다. - 왜 무당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사람이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살다가 그게 무너지면 허무가 찾아오게 된다. 허무가 끝으로 가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어지고, 또 그게 극에 달하면 신비주의와 만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직장 생활을 끝내고 유학을 갔을 때 개인적으로 그런 단계들을 거친 것 같다. 신비주의 같은 데 매료된 거다. 그리고 실제 친적 중에 '빙의'에 걸린 분이 있어 자료를 좀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은 굿을 실제 보게 됐는데 '힘'이 대단하더라. '외날 작두의 대가 김도령'. 이름만 들어도 뭔가 좀 가짜 냄새가 나지 않나?(웃음) 굿도 아니고 그저 푸닥거리 같은 정도였는데 그런데도 거기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 2003년 개봉한 박기복 감독의 <영매- 산자와 죽은자의 화해>도 무속인의 삶을 다룬다. "그땐 유학 중이라 <영매>에 대해선 몰랐다. 기획 중에 그런 영화가 있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내 작업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아직 보진 않았다." - <영매>는 세습무(혈통을 따라 대대로 계승되는 인위적인 무) 자매의 이야기부터 강신무(신이 내리는 종교 체험을 거쳐 이루어지는 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당의 이야기를 옮긴다. <사이에서>는 강신무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를 위해 수십 명의 무당을 만났고 그 속엔 세습무도 있었다. 한 30시간 가까이 찍은 거 같다. 세습무들은 사실 '예능꾼'에 더 가깝다. 학습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강신무들에 비한다면 노래 가락이나 연주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 하지만 단오굿이나 풍어제를 맡아 하는 세습무의 굿은 직업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강신무보다 좀 더 사회화된 굿을 하는 거지. 문화 인류학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어 모두 버렸다."
이창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수십 명의 무속인 가운데 이해경을 선택했다. "만나고 전화 인터뷰하고 정말 많은 무당을 만났다. 이해경 선생은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일명 '대가'로 불리는 다른 무당들은 갈등과 트라우마가 이미 내적으로 스며들어 버린 상태였다. 이해경 선생은 그가 쓴 책 <혼의 소리 몸의 소리>로 먼저 알게 됐는데, 사연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현재 진행형의 갈등들을 품고 있는 분이랄까. 황해도 굿을 하신다는 매력도 있었고." - 어떤 점이? "황해도 굿이 좀 전투적이다. 황해도가 과거부터 부침이 잦은 동네였다. 전쟁도 많았고 쌀과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라 수탈도 잦았다. 그래서인지 원시적인 제의 의식, 에너제틱한 힘이 그 어떤 굿보다 짙다.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굿 한판을 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굿의 흐름 속에 사람의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 - 굿의 과정을 따라 스물여덟의 인희, 여덟살 동빈이, 30년 동안 신내림을 거부한 손영희의 이야기가 이해경의 이야기와 맞물려 돌아간다. "인희, 동빈, 손영희 씨의 이야기는 사실 이해경 이야기의 일부다. 신의 부름을 받았지만 망설이고 고민하는 인희는 무당의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이해경의 갈등을 대변하고, 동빈이는 이해경이 잃어버린 자식과 겹쳐진다. 실제 동빈은 이해경 선생을 '서울 엄마'라고 부른다. 일종의 유사 아들관계라 볼 수 있다. 손영희는 이해경 선생이 갖고 있는 무당으로서의 신비를 부각시키는 존재다. 이런 이야기 구성은 촬영 중반을 넘기면서 결정한 것이다. '한 여자의 이야기'로 압축되면서 육군 대위 출신 이석우 씨의 이야기 등 많은 내용들이 잘려나갔다." - 보통의 인물다큐와는 달리 <사이에서>는 인터뷰의 비중을 줄이고, 각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드라마를 만든다. 다큐의 매력과 드라마의 매력이 묘하게 공존한다. "이해경 선생 자체가 드라마가 넘치는 분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너무 부각되지 않게 방어한 부분들이 많다. 중간 중간 손이 등장하며 인물 별로 이야기를 묶어내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HD로 작업해 영화 같은 영상들이 많은데 그럴 땐 6mm 촬영의 거친 느낌을 함께 넣어 HD의 튼튼한 영화적 영상을 부숴내 영화적 질감을 무너뜨렸다." - 개인적으로 <사이에서>가 일상을 담는 방법이 특이했다. 다들 밥 먹고 세수하는 게 일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이에서>는 굿에 집중하던 화면이 하품하는 개에게로 넘어가는 식이다. "밥 먹고 TV 보고 장보러 가고. 다큐들이 반복적으로 일상을 담는 방법이다. 사생활을 뒤져보고 그런 것에 의미를 둔다.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동질화가 싫었다. 인물의 뒷통수를 따라가며 일상을 담는 건 카메라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하다보면 분명 인물의 행동반경과 동선이 나오게 돼 있다. 카메라가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면 다른 각도의 일상을 담을 수 있다. 80년대 액티비스트의 이 같은 전통도 이젠 변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반적인 일상은 배제하고 영상화법으로 풀고 싶었다." - 원래 Q채널에서 일하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버리고 독립 다큐를 찍게 된 건 왜 인가. "방송국이란 체제 때문에 두 달 안에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웃음) 개인적으로 몇 년 간 정성을 들여 구상해온 이야기 중에 '학출 노동자'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걸 다큐로 만들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노조 이야기에 어떤 광고주가 광고를 주겠냐는 거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다 보니 편집 과정에서 변화를 많이 겪었다. 회의도 있고 해서 영화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
이창재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독립 다큐 작가는 고생이 심하다고 들었다. "맞다. 고생이 많았다. <사이에서>는 원래 다큐코리아가 해외에 소개할 만한 블록버스터급 다큐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건데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좀 많아 결국 찍다보니 독립 다큐가 되어 버렸다. 용두사미가 된 격이다. 총 제작비가 5천에서 6천쯤 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AD가 대충 붐대 들고 녹음하고, 편집 과정에서 자막 입히는 것도 맥 컴퓨터에 있는 기본 글씨체 12가지 중에 대충 골라서 넣고.(웃음) 완전 아마추어적으로 만들었다." - 그래도 관객과 만나게 됐다. 지원을 얻어 후반 작업도 다시 손봤고 문제의 자막도 다시 입히고.(웃음) "아 정말 고맙다. 그 고마움은 말로 다 못한다. 모두 자기 영화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 도와줬다." - 개봉 소감은? "안 그래도 이해경 선생한테 흥행 기도 같은 거 해달랄까 생각 중이다.(웃음) CGV 인디 상영관이 강변과 상암뿐인데 이해경 선생이 용산이 터가 좋다고 해서 용산에서도 상영하게 된 걸로 안다. 관객 안 들면 이해경 선생 '신기'가 다 한 걸로 알 수밖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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