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강금실 사건'이 터졌다. 40대 중반, 판사 출신, 현 민변 부회장인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장관 임명. 법조계, 특히 검찰의 강력한 반발을 뚫고 단행한 '파격 인사'다.
오비이락인가. 같은 날 대북송금 고발사건을 맡아오다 검찰 내부 결정으로 수사를 유보했던 서울지검 형사9부(이인규 부장검사)는 "특검이 수사할 바엔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 검찰이 직접 수사를 맡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의 특검제 법안 통과에 정면 반발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개 요청한 '파격 행보'다.
같은 날 터진 두 가지 서로 다른 '파격', 무엇을 말하는가?
***검찰 '서열주의 존중요구', 盧 'NO'**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은 법조계의 오랜 관행인 서열주의 파괴, 그리고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검찰개혁,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인사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법조계의 서열주의가 해소되기를 바란다. 제가 그걸 없애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지만 그 서열주의를 존중할 이유는 없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간 검찰 측이 강 장관 임명소식에 강력히 반발한 것은 관행인 서열주의를 존중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NO'라고 확답을 낸 것이다.
사실 강 장관에 대한 반발은 검찰만이 아니다. 법원과 변호사계, 심지어 법과대학 교수까지 연령에 따라 강 장관보다 선배급이 되는 쪽은 한결같이 반대 분위기다. 그만큼 우리 '법조3륜' 혹은 '법조4륜' 전체에 서열주의, 기수 존중의 관행이 강력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강 장관 임명을 통해 이 서열주의 관행의 개혁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이 '강요'는 하지 못한다. 또 장관이나 차관 임명 외에 서열파괴의 개혁을 직접 실천해 갈 방법도 사실상 더는 없다. 서열주의는 법조계 나름의 문화로 이미 정착되어 있고, 이 문화가 바뀌려면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의식과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법조계의 '관행 존중' 요청을 대통령이 '공식 거부'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장 마찰이 예상된다. 그 첫번째 핵심 접점이 검찰개혁이다.
***법무장관 수사지휘권ㆍ인사권 향배 어디로?**
노 대통령은 이날 강 장관 임명 배경설명에서 "검찰이 법무부를 완전히 장악해 법무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검찰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법무부를 검찰청으로부터 독립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권력의 검찰'이 아니라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금실 신임 법무장관도 28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은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법무부는 검찰을 견제, 감독하는 게 원칙이나 그동안 검찰인사들이 법무부장관을 차지해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인사권 행사등을 통해 검찰에 대한 견제,감독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결국 '법무행정과 검찰의 분리' 원칙,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원칙이 검찰.법무부 개혁의 기본방향으로 읽힌다.
여기서 법무부와 검찰이 얽혀드는 핵심고리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과 '인사권'에 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분리', '독립', '자율' 등의 면모가 구체화된다.
대통령직인수위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 등을 개혁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검찰 역시 평검사회의 등을 거쳐 성안한 자체 개혁안에서 장관의 수사지휘는 서면을 통해서만 하도록 하고,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와 외부인사 확대 등을 포함시켰다. 외형상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강금실 장관은 27일 임명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 "장관이 할 일은 검찰에 대한 최고감독자로서 소신수사를 보장하고 적절히 견제하는 것이다. 현재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지휘권 또한 견제의 일환이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장관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소극적인 견제에 머무르되 책임소재는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수사지휘권 폐지'라는 인수위의 안과는 약간 다른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인사권에 관해서도 강 장관은 "인사권은 장관의 전속권한이다"라고 분명히 못 박은 뒤, "다만 검찰 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으며, 또 법령개정작업을 수반하지만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검찰 인사위에 참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참여 등의 여러 보완장치를 마련, 검찰에 대한 인사권만은 분명히 행사하겠다는 메시지다.
이 대목이야말로 검찰이 초유의 비검찰 출신 법무장관의 출현에 크게 반발한 핵심요인인 셈이다.
검찰이 강 장관 임명에 반발한 배경엔 이러한 검찰개혁과 관련된 물밑 힘겨루기가 깔려 있는 것이다.
***'특검법 거부권 요청'에 도사린 검찰의 '압력'**
강 장관이 임명되기 2시간여 전 검찰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대북송금 특검법 대통령 거부권 요청'은 이같은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담당 수사부서였던 서울지검 형사9부의 논리는 한마디로 "수사를 할 바엔 특검보다 검찰이 더 잘 한다"는 것이다.
박영수 서울지검 2차장은 형사9부 수사팀의 의견을 전하면서 "검찰이 수사를 유보했던 것은 국익과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 조치로 특검이 맡으면 국익에 관련한 보안문제가 생길수 있는 만큼 특검이 해야 할 바엔 검찰이 직접 하자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박 차장은 또 "특검법 국회 통과는 `당황'스런 일로 태생근거가 정치적인 특검이 수사과정에서 국익과 관련된 비밀스런 부분을 지킬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특검은 수사 내용을 다 `까발리지만' 검찰은 국익을 위해 덮을 것은 덮을 것이고 나중에 국회 등에서만 공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검은 국민수 공보관을 통해 "(검찰총장이) 수사팀 의견을 사전에 보고 받은 바 없으며, 현재 검찰로선 특검 문제에 관한한 마땅히 국회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검찰이 `대북송금' 관련한 수사를 재개할 계획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일선 수사팀의 사적 견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특검을 거부하려는 수사팀의 의견이 '동일체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검찰내에서 일개 지검 부서장 및 검사들만의 입장이겠느냐 하는 데는 의문이 있다. 실제 검찰 고위층에서도 대북송금 사건이 특검으로 갈 움직임이 가시화됐을 당시 수사 재개 의사를 직접 내비치기도 했던 사실에 비춰 사전조율 내지 공감대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은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수사를 '유보'했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다. 때문에 강금실 장관 임명 2시간 전이라는 미묘한 시점에 검찰이 '특검법 대통령 거부권'을 들고 나온 것은 내심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도 있다는 '압력'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의 전방위 사정이 의미하는 바는?**
'압력'이라면 누구를 향한, 무엇을 향한 '압력'일까?
최근 검찰의 행보를 돌이켜 보자.
노무현 대통령 취임 며칠 전에 검찰은 참여연대가 이미 몇년 전 고발한 SK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 갑자기 수사를 시작, 최태원 회장을 전격 구속했다. 역시 참여연대가 고발한 한화그룹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급기야 노 대통령이 26일 직접 '수사 속도조절'을 언급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인수위에서 검찰개혁과 관련된 논란이 한차례 휘몰아친 후 전국의 일선 평검사들이 지역별로 회합을 갖고 자체 개혁안을 만들었고, 대검이 이를 수렴해 공식발표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이윤수 의원, 한나라당 이양희 의원 등에 대한 수뢰혐의 수사도 진행중이다.
말 그대로 '전방위 사정'이다.
이런 미묘한 분위기 하에서 강금실 장관 임명 몇시간 전 '특검법 대통령 거부권' 발언, 내심은 '대북송금에 대한 검찰 자체 수사 가능성' 발언이 터져 나왔다.
***시작된 싸움**
노무현 대통령은 이같은 검찰의 움직임과 관련, 27일 내각명단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말을 했다.
"정권이 바뀌면 조사권한을 가진 기관이 열심히 조사하더라. 정권의 의도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모르나, 나는 그런 의도가 없다. 이번에도 그럴 조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관계가 없다. 청와대 눈치 보지말고 차근차근 꾸준히 법대로 집행해 주길 바란다."
검찰의 최근 전방위 사정 움직임을 '새 정권에의 눈치보기'로 규정, 자중을 지시한 발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계 해석은 다르다.
최근의 전방위 사정은 "검찰은 검찰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으며, 외부 압력이 아닌 자체능력으로 충분히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의지 표현이자 힘의 과시로도 해석가능하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로라 하는 재벌도, 정치권도, 전직 대통령까지도 검찰 수사 앞에는 누구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새 정권에 대한 무언의 선전포고로도 해석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생리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검찰은 아마츄어들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법무부와 검찰 분리, 수사지휘권, 인사권, 특검 등등 하나 같이 복잡한 얘기다. 검찰권력의 향배가 달려 있고, 그 방향에 따라 정치에도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건드리려면 건드려 보라는 식이다."
참여연대의 고발사건에 연루돼 있는 모 재벌 구조본 고위관계자도 "종전과는 달리 요즘 검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같은 검찰 움직임의 진정한 동인(動因)이 과연 검찰 본연의 소명에 충실하겠다는 순수한 '개혁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서열주의 등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한 '집단이기주의의 발로'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여하튼 검찰 헤게모니를 둘러싼 검찰과 새 정부의 한판 승부, 그 서막이 오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같은 물밑 갈등이 정반합의 발전적 결실을 거두기 위해선 검찰은 그 어떤 정치-경제권력의 부패도 눈감아주지 않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언터쳐블(Untouchable)'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이 이미 시작한 재벌,정치권 비리 수사의 향배를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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