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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에 관한 두 가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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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에 관한 두 가지 해석

[특집] 베넷 밀러의 <카포티> vs 리처드 브룩스의 <냉혈한>

베넷 밀러의 <카포티>가 최근 DVD로 출시됐다. 영화 속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트루먼 카포티 원작의 <냉혈한 In Cold Blood>(1967)도 함께 DVD로 발매됐다. 캔자스 주 작은 마을의 무고한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범들과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이야기는 지금도 울림이 크다. 두 영화를 비교 안내한다. – 편집자
국내에도 출간된 트루먼 카포티의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1965년 첫 출간 이후 '가장 뛰어난 논픽션 문학'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미디어의 역사에서 뉴 저널리즘을 태동시킨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뉴 저널리즘은 객관적 보도를 지양한 채 사실(fact)에 접근하는 기자의 주관적 태도와 감정, 논평 등을 기사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글쓰기 형태를 말한다. 특히 뉴 저널리즘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톰 울프, 헌터 톰슨, 노먼 메일러 등 탁월한 문장가들을 배출하며 한동안 크게 각광받았다. <인 콜드 블러드>는 바로 미국 저널리즘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파격적인 작품이다.
카포티 ⓒ프레시안무비
트루먼 카포티는 이전에도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작품으로 꽤 명성을 얻은 작가였다. 그는 1959년 11월 '뉴욕 타임스'에 실린 캔자스 홀컴 마을의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고 취재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것이 책으로 완성돼 나오기까지는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동안 카포티는 살인범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에게 집요하게 접근했다. 과연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날 밤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를 직접 듣기 위해 그들과 친구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카포티는 페리 스미스의 성장기가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페리 스미스의 지적이고 사려 깊은 면모에 감화 받게 되며, 그들의 살인 동기가 결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낸다. 카포티는 이 살인사건을 둘러싼 모든 인물과 배경 공간, 정황을 기록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인 콜드 블러드>는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트루먼 카포티는 다른 어떤 책도 끝내지를 못했다.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동안 너무 기력을 소진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출간 직후 큰 인기를 끌었다. 리처드 브룩스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 <냉혈한>이 1967년 개봉한 것도 그런 인기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생생히 옮기다
냉혈한 ⓒ프레시안무비
리처드 브룩스는 <내가 마지막 본 파리>(1954)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엘머 갠트리>(1960)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냉혈한>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그의 경력이 완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만든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황량하고 건조한 흑백의 촬영과 신경을 긁듯 긴박감 넘치는 재즈 음악이 돋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거장 콘래드 홀(<내일을 향해 쏴라><아메리칸 뷰티><로드 투 퍼디션>으로 아카데미 촬영상 3회 수상)이 카메라를 잡았으며, 1950년대부터 빅 밴드 마스터로 재즈계에서 명성을 드높인 퀸시 존스가 사운드트랙을 책임졌다. 페리 스미스 역은 로버트 블레이크, 딕 히콕 역은 스콧 윌슨이 연기했다. 당시 이들은 그다지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지만, <냉혈한>이 개봉된 뒤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196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냉혈한>은 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각색상 등 4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비록 수상에는 모두 실패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냉혈한>은 아카데미 상과 그다지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마치 <키스 미 데들리> 같은 필름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도입부가 펼쳐진다. 카메라는 어두운 밤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 한 대를 비춰 보이고, 음험하고 긴박하게 느껴지는 재즈 선율이 그 위에 흘러내린다. 불빛이 거의 없는 버스 안에서 한 사내가 기타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작은 소녀 하나가 "죄송해요"라며 버스 복도를 지나간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내는 주인공인 페리 스미스. 캔자스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그는 지금 규정을 어기고 다시 캔자스 주로 향하고 있다. 홀컴 마을에 사는 클러터 씨 집에 있는 금고를 털자는 감방 동료 딕 히콕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훔치는 것과 바람피는 것은 전국민의 유희"라는 딕은 페리와 함께라면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믿는다. 클러터 씨 집에서 동태를 살피는 두 사람. 하지만 영화는 이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다음 날 아침으로 이어진다. 이미 클러터 씨 일가 4명이 무참히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페리와 딕은 라디오를 훔친 채 달아난 상태다. 대체 이 살인사건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 <냉혈한>은 페리와 딕이라는 두 인물의 캐릭터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페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쟁 용사로, 인디언의 피가 섞여 있지만 차분하고 신중한 성품이다. 그는 좀처럼 흥분하거나 들뜨지는 않지만 다소 소심하고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일단 돈을 마련한 다음 멕시코로 튀어 바닷속에 잠겨 있는 스페인 금화를 캐낼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딕은 허풍과 거짓말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인물. 별로 교양이 없는 데다 폭력적인 면까지 있어 아내까지 그 곁을 떠나고 말았다. . 사건보다 사건의 배후를 파헤친다 이후 영화는 페리와 딕이 체포되고 사형되기까지의 행적을 차분히 따라간다. 그리고 이들을 뒤쫓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교차 편집한다. 두 사람은 도심 상가로 잠입해 과감히 가게 주인들을 속이고 가짜 수표를 사용하며 돈을 가로챈 다음 멕시코 근교 국경으로 달아난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안 풀리자 페리는 일단 자신의 짐을 라스베이거스로 부치기로 하고, 둘은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해 캘리포니아로 향하기로 한다. 경찰은 딕에게 클러터 집안의 금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재소자의 신병을 확보해 페리와 딕에 관한 증언을 들은 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벌여나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체포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살인 행각을 전면 부인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리처드 브룩스는 페리와 딕을 말끔히 제거해야 할 '절대악'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트루먼 카포티와 마찬가지로, 리처드 브룩스 역시 이들이 사건을 저지르게 된 배경을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사건 전후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다소 뻔뻔스럽고 유들거리는 딕 히콕의 캐릭터가 전면에 부각된 것도 독특한 점이다. 무엇보다 리처드 브룩스는 페리 스미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개인적인 불행에 초점을 맞춘다. 알코올 중독자인 데다 불륜을 저질렀던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구타하고 폭행한 아버지 때문에 페리는 유년기에 깊은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된다. 영화는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페리 스미스의 주관적인 환상 장면을 보여주고 그의 과거를 전면에 드러낸다. 아버지와 함께 알래스카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던 기억은 페리 스미스를 더욱 끝없는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그 과정에서 클러터 씨 일가를 살해하게 된 경위도 자세히 드러난다. <냉혈한>은 페리 스미스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아무런 사족도 달려있지 않은 이 마지막 장면은 물론, 영화는 전체적으로 대단히 황량하고 삭막하다. 캔자스와 아이오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의 사막을 횡단하는 페리와 딕의 여정은 콘래드 홀의 단호한 촬영에 힘 입어 매우 건조하게 묘사돼 있다. 경찰 수사팀이 '외로운 늑대'라 불리는 페리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시퀀스는 <냉혈한>을 연출한 리처드 브룩스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리처드 브룩스의 영화적 코멘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으나 차마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사회 주변부로 내몰려 뜻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과연 미워할 수 있겠는가? <냉혈한>은 이에 대한 판단을 관객 몫으로 돌린다. .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이중 심리 <카포티> <냉혈한>에는 페리나 딕과 교류를 맺은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존재가 전면에 다뤄지지는 않는다. 다만 폴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젠슨'이라는 잡지 편집장이 페리와 딕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인물로 등장해 간간이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베넷 밀러의 <카포티>와 <냉혈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카포티>는 페리와 딕의 과거사를 자세히 밝히거나,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과정과 이후 행적을 추적하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의 저자)와 함께 캔자스 주 홀컴 마을을 찾아가서 사건을 취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페리 스미스와 트루먼 카포티가 맺은 인간적 교류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카포티>에서 딕 히콕의 캐릭터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대신 페리 스미스의 캐릭터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페리 스미스가 다리 흉터 때문에 아스피린을 자주 먹으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냉혈한>이든 <카포티>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페리 스미스는 <냉혈한>의 그처럼 독립적인 캐릭터와 과거사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카포티>의 페리 스미스는 오직 트루먼 카포티(필립 시무어 호프먼)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보안관 관저에 감금돼 있는 페리 스미스에게 말을 건네고, 그가 다른 감옥으로 호송된 뒤에도 수없이 찾아가 그의 속내를 들어주며, 페리 스미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는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도 한다.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페리 스미스를 '취재'하는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카포티>는 친구이자 취재원으로서 페리 스미스를 대하는 '작가'인 트루먼 카포티의 이중적 태도에 담긴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파헤친다. 완벽한 논픽션 문학을 쓰고 싶어하는 카포티는 원하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기꺼이 페리 스미스에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을 '냉혈한(in cold blood)'라고 확정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페리 스미스가 화를 내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단지 사람들이 선정적으로 보이도록 제목을 그렇게 선택한 것이며, 나는 당신에게서 사건 당일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제목을 짓지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마도 <카포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일 것이다. 진정한 '냉혈한'은 페리 스미스가 아니라, 거짓말을 불사하고라도 사실을 얻어내어 글로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트루먼 카포티일지 모른다. <카포티>의 후반부는 수년 동안 계속되는 홀컴 사건의 법정 공방으로 트루먼 카포티가 책을 끝맺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페리 스미스와 연락을 끊은 채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로 내몰린 트루먼 카포티의 고통이 묘사된다. 페리와 딕의 사형이 집행되던 날, 카포티는 형장을 찾아가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욕망과 현실의 잔혹함이 부딪히고 폭발하는 치열한 격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카포티>는 바로 그 간극에 돋보기를 들이댄 영화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84년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사망한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택해 넣었다고 한다. "응답을 못 받은 기도보다 받은 기도에 더 많은 눈물을 흘린다." <카포티>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이 문구는 바로 트루먼 카포티 자신이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응축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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