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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빨리 장관이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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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빨리 장관이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데스크 칼럼> '하마평 홍수사태'의 정치학

인사가 만사라고는 하지만 최근 언론보도는 지나치다. 새 정부 청와대 인사와 조각에 대한 하마평이 신문지상을 도배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A부처에는 누가 확정적이다, B부처에는 누가 누가 경합중이다, 그러다 또 누구로 경쟁자가 바뀌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신문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매일매일 변한다. 공통적인 것은 거의 100% 보도 출처가 ‘여권 고위 관계자’라는 점이다. ‘아니면 말고’ 식이라는 얘기다.

이번만이 아니다. 정권교체 때마다 매번 그랬고, 임기 중 개각이 예고되거나 혹은 개각이 점쳐질 때에도 거의 예외 없이 ‘누가 어디 장관 되나’ 식의 추측성 기사가 며칠씩 신문을 뒤덮는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언론의 독특한 한 면모다.

***장관 누가되는지 몇 시간 빨리 아는 게 왜 중요한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누가 총리, 부총리, 비서실장, 장관이 되는지를 공식 발표되기 몇 시간 전에 먼저 안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 몇 시간 차이가 국가운영과 국민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총리나 장관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한두번 후보군의 윤곽을 보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매일처럼 누구는 탈락됐다더라, 대신 누가 새로 포함됐다더라는 중계방송식 보도가 왜 필요한가? 그것도 확실치도 않은 기사뿐인데.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겐 최대 관심사일테다.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친구들, 그 사람들과 사업을 같이 할 게 있는 사람들, 관료, 정치인, 기자들, 이들에겐 엄청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문제가 그렇게도 중요한 주제인가?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들어야 할 ‘뉴스’인가?

***권력과 언론의 부정한 결탁관계가 만들어 놓은 ‘인사특종’**

첫째 권력과 언론의 부정한 결탁관계가 오늘의 풍토를 만들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언론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했던 조선일보. 그 최대 힘은 여권 고위정보의 특종이었다. 그중 꽃이 인사 특종이다.

권력이 특정 언론에게만 인사에 관한 고급정보를 흘린다. 그것이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된다. 바로 그날 똑같은 내용의 개각이 발표된다. 다른 언론사는 낙종에 울고, 기자들에겐 데스트의 재떨이가 날아간다. 특종이 거듭되면서 해당 언론사 스스로 권력화된다. 이것이 인사특종의 정치학이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언론계 내에 뿌리내리면서 인사특종이 특종 중의 특종으로 손꼽히는 풍토가 완전히 정착되어 버렸다. 앞서 던진 질문, “남보다 몇시간 먼저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한 대답 없이 그저 대단한 특종인양 기정사실화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와 경우는 전혀 다르지만 바로 얼마전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 사실을 특종한 것도 조선일보다. 특종 이후 조선일보 사내 정치부 게시판에는 ‘I´m proud of you all!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부장의 메시지가 떴으며, 편집국 입구 게시판에는 ‘자랑스럽습니다 : 대특종’이라는 문구와 함께 특종한 지난 1월8일자 1면 신문이 게시됐다. 방상훈 사장은 정치부장에게 1천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도대체 어떻게 조선일보가 ‘문희상 특종’을 했는지 두고두고 화제였다. 여권 내부에선 발설자가 누군지 색출작전이 펼쳐졌고, 여타 언론사에선 특종과정을 별도로 취재하느라 며칠 법석을 떨었다.

바로 오늘 언론계 풍속도의 분명한 한 장면이다. 한 발만 떨어져서 쳐다보면 참 요지경 속이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왜들 이 난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번 묻자. 남보다 몇 시간, 혹은 며칠 먼저 알아낸 것이 뭐 그리 대단한 특종인가? 그로 인해 나라가 어떻게 달라졌고, 민생에 어떤 변화가 생겼으며, 여론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 오늘도 정치부기자들은 하릴 없이 귀동냥을 하러 다닌다. 매일처럼 거의 똑같은 기사를 대서특필해 대고 있다.

***권력이 언론을 활용하는 ‘띄워보기’**

둘째 권력이 언론을 활용하는 소위 ‘띄워보기’, 이것 역시 넘쳐나는 하마평의 정치학이다.

조각을 하던 개각을 하던 대통령은 몇 사람을 물망에 올려놓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임명할 경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미리 흘려보는 것이다. 하루 이틀 신문에 냈다가 반응이 나쁘거나, 해당 인물의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점들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면 거둬들인다.

이런 ‘띄워보기’를 가장 즐겨 활용한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취임초 YS는 전병민 정책수석, 김상철 서울시장 등 임명 직후 언론의 공세로 되물리기를 경험했다. 호되게 당한 YS는 이후 번번이 정보를 흘렸다. 며칠씩 반응을 떠보다 문제가 없으면 그때 발표하곤 했다.

이는 전적으로 청와대의 인사 검증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론을 통해 보다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의제설정기능’이란 원칙에 어긋난다. 하마평은 신문 한 귀퉁이에 어쩌다 한번 실리면 그만인 가십일 뿐, 국민이 일일이 꼭 알아야 할 중요 정보도 아니고, 사회적 중요 아젠다도 아니다.

또한 ‘띄워보기’가 일상화되다 보면 언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발탁되는 심각한 왜곡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인지, 특정 언론사에게 있는 것인지 혼미한 상황이 벌어졌던 기억도 그리 오래지 않다.

***政-官-言 결탁관계가 만든 자가발전식 하마평 보도**

셋째 특정인과 특정 언론에 의한 자가발전, 이것 역시 하마평 홍수사태의 정치학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하마평 보도의 공통점은 출처가 모두 ‘여권 고위관계자’라는 점이다. 정말 얘길 듣고 쓴 것인지, 지어낸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 속에 음험한 정(政)-관(官)-언(言)의 결탁이 끼어든다. 정치인, 관료들 스스로 자신을 홍보할 목적으로 거짓정보를 유출시킨다. 혹은 기자나 언론사가 일부러 검토대상도 아닌 사람들을 끼워 넣기도 한다.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중 입맛에 맞는 사람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풀리기도 한다.

자기 이름을 넣어 달라는 사람도 많고, 써 줘야 할 사람도 많다. 하루하루 미묘한 상황변화에 따라 추가되기도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매일 써야 한다. 그것도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나와야 빛을 본다. 사진까지 실리면 더욱 좋고.

***‘권력놀이’ 앞장서 조장하는 언론**

최근의 하마평 보도가 꼭 그렇다는 얘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실세들이 특정언론에만 고급 인사정보를 흘렸다는 확증도 아직 없고, ‘띄워보기’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도 확실치는 않다. 또 특정 개인과 언론사의 자가발전인지 아닌지 역시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보통 독자들이 매일처럼 비슷비슷한 기사를 봐야만 하는 오늘의 사태, 그 배경에는 이러한 인사특종의 정치학, 하마평의 정치학이 깔려 있다. 정(政)-관(官)-언(言) 결탁의 구조화, 한마디로 ‘권력놀이’에 모두가 놀아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에는 권력이 있고, 정치인과 관료들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주된 책임은 언론에 있다.

진짜 중요한 정보, 정말 새로운 뉴스, 국민의 알권리와 사회적 의제설정기능의 원칙에 걸맞는지 따져보는 보도가치 판단이 없는 것이다. 권력놀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앞장서 조장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을 되돌아 본다.

새 정부 조각의 방향에 대한 제언을 내놓은 바 있다. 한두번 하마평을 보도한 바 있고, 여타 언론에 오르내린 하마평에 근거해서 특정인의 문제점에 대한 각계 반응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나치거나 자의적이지 않았는지 계속 되돌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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