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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행 전 부장판사 혐의 입증 어려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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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관행 전 부장판사 혐의 입증 어려울 수도

[심층추적] 김홍수 청탁 사건들은 어떻게 처리됐나?

검찰은 김홍수 법조비리 사건으로 구속한 김영광 전 검사와 민오기 총경을 지난 17일 기소했다. 그런 가운데 이들보다 먼저 구속된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기소를 1주 연기했다.

검찰은 조 씨에 대한 기소 연기 이유를 "본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부인의 계좌에 대해서도 추적작업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조 씨를 기소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구속영장 신청서에서 제시한 양평 TPC골프장 양수도 계약 무효확인 소송 등 4건의 사건의 추이를 면밀히 분석한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 '조관행 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건들이 과연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 씨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 등을 하나 씩 살펴본다.

1. 양평 TPC 골프장 양수도계약 무효확인 소송

검찰은 조관행 씨가 시내산개발의 최 모 씨로부터 "양평 골프장 사건의 재판이 유리하게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약 1500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발표를 바탕으로 일부 언론들은 1심 판결에서 패한 시내산개발의 최 모 씨가 김홍수 씨를 통해 조관행 씨에게 접근,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고등법원에서는 시내산개발이 이겼다고 보도했다. 조관행 씨가 이 항소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시내산개발의 최 씨가 조관행 부장판사를 만난 것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였다. 그리고 조 씨는 당시 서울지방법원의 부장판사였다. 검찰의 영장청구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3년 12월부터 2004년 5월 사이에 만났고, 양평골프장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난 것은 2004년 8월이었다.

서울지법에서 진행 중인 소송의 당사자가 당시 서울지법의 부장판사를 만나 어떤 청탁을 했다면, 당연히 그것은 서울지법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요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내산 개발은 서울지법에서 패했다.

그리고 1심 판결 이후 시내산개발 측이 다시 조 씨를 만난 흔적은 최소한 검찰의 영장청구 자료에는 적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시내산개발이 승소한 서울고법의 항소심 재판은 2004년 10월 4일 시작해 2005년 7월 28일 끝났다. 이 재판이 시작될 때 조 씨는 여전히 서울지법에 근무중이었고, 2005년 2월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옮겨갔다가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온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이 내려진 뒤인 2006년 2월이었다. 항소심 기간 중 서울고법에 근무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서울고법에서 양평골프장 사건을 심리한 구욱서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을 8기로 12기인 조관행 씨보다 선배에 해당한다. 두 사람은 출신 고교와 대학도 판이하게 다르다. 두 사람은 학연, 지연, 또는 연수원 동기 중 어느 끈으로도 얽혀 있지 않다.
양평 골프장 사건이란?

소송의 대상이 된 양평 TPC 골프장의 부지와 사업승인권은 가격이 460억 원에 달하는 등 규모가 상당히 큰 사건이었다. 이 소송의 결과에 따라 280억 원의 행방이 결정되도록 돼 있었다.

소송의 당사자는 시내산개발 주식회사와 대지개발 주식회사로 골프장 운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대지개발 주식회사는 노무현 정부 초기 파문을 일으켰던 정치자금 수수사건의 주인공인 썬앤문그룹의 계열회사로 썬앤문그룹 회장 문병욱 씨의 친동생 문병근 씨가 대표였다.

서울고법의 항소심에서 시내산 개발은 서울고법원장 출신의 변호사를 포함해 모두 16명의 변호사를 고용했고, 대지개발도 서울고법원장 경력의 변호사를 고용해 재판을 진행했다.

이렇게 고법원장 출신 선배 법조인들이 변호사로 양쪽에 포진하고 있는 항소심 재판을 맡은 판사가 하급법원에서 일하는 후배판사, 그것도 아무런 개인적 연고도 없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재판 결과를 왜곡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구조와 법관 세계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의 견해다.

2. 성남소재 여관 영업정지 처분 해제 신청

이 사건은 조관행 씨가 김홍수 씨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성남의 여관 주인 송 모 씨가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1심에서는 김홍수 씨에게 부탁했던 송 씨가 승소했다. 승소는 했지만 1심 재판부는 영업정지처분의 집행을 정지시키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1심에 이기고도 송 씨의 여관에 대한 영업정지처분은 계속되고 있었고, 항소심 판결이 내려졌을 때는 이미 이 여관에 대한 영업정지의 기간이 끝난 뒤였다.

이미 영업정지처분의 집행이 끝났으므로 그 처분의 취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서울고법은 송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송 씨는 1심과 2심 모두에서 변호사를 고용해 재판을 진행했지만 '영업정지'의 효력을 정지 또는 취소시키는 데에는 실패한 셈이다. 조관행 씨가 김홍수 씨를 통해 이 재판과 관련해 송 씨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면, 그 역시 그 청탁을 들어주는 데 실패한 셈이다.

3. 일산의 건물에 대한 가처분 해제 사건

검찰의 영장신청서에 따르면 조관행 씨는 일산의 한 건물에 대한 판매 임대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 명령이 취소되도록 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돈을 받았다고 한다.

건물 주인은 가처분 해제 신청을 했고, 그 신청은 의정부지법에 의해 금방 승인됐다. 법원 측이 가처분을 해제한 이유는 그 사건에는 당초 가처분 명령이 아니라 가압류 명령을 내리는 게 법리상 올바르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명백한 오류가 있는 가처분은 어느 변호사가 신청해도 바로 취소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가처분과 가압류

채권에 대한 다툼이 종료될 때까지 건물 등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임대하지 못하게 하는 법원의 명령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처분과 가압류가 그것인데 이 두 가지 처분은 효력은 같지만, 처분 요건이 다르다.

가처분은 채권자가 해당 부동산에 근저당 설정 등을 통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때 내려지는 것이고, 가압류는 채무자에게 받을 돈은 있지만 채무자의 특정 부동산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입증할 수 없을 때 내리는 것이다.

법원은 채권자의 신청서류만 보고 가처분 명령을 내린다. 부동산 소유주는 그 명령이 내려져서 본인에게 통보되었을 때 비로소 그런 명령이 신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반 소송에서는 신청 사실을 상대방에 먼저 알려주고, 판결을 내리기 전에 쌍방에게 소명할 기회를 준다.

법원이 일방의 신청서만 보고 가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은 신청 사실을 먼저 알리면 신청을 심리하는 동안에 채무자가 해당 부동산을 팔거나 제3자 명의로 이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송원칙과는 달리 일방의 주장 만을 보고 가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형평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래서 처분이 내리고 난 다음에 상대방에게 소명할 기회를 준다. 가처분 명령이 구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입증하면 가처분은 즉시 취소된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지 않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부동산을 가압류하려면 먼저 채권에 대한 법원의 지불명령을 받아야 한다. 지불명령을 받은 다음에 가압류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채무자의 부동산에 대해서 근저당설정도 하지 않고, 채권에 대한 지불명령도 받지 않은 채권자는 채무자의 부동산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건물에 대한 가처분 명령이 취소된 뒤 채권자가 법원의 지불 명령을 위한 소송을 진행하다가 채무자와 합의해 사건을 종료했다

4. 보석 신청 사건

조관행 씨가 카드깡으로 구속된 사람이 보석으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모두 7000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건. 이 건을 김홍수 씨를 통해서 의뢰했다고 하는 김 모 씨는 2002년 2월 25일 보석을 신청해 그해 3월 28일 석방됐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모두 4명이며, 김 모 씨는 이들 중 4번째로 이름이 올라 있다. 통상 죄가 가장 무거운 사람부터 차례로 피고인의 이름을 적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 모 씨는 상대적으로 죄가 가장 가벼운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범 4명 중에 보석으로 석방된 사람은 김 모 씨를 포함해서 두 명. 김 모 씨 바로 위에 이름이 적혀 있었던 다른 피고인은 김 모 씨에 이어 4월 10일 보석을 신청해 5월 10일 석방됐다. 보석으로 석방된 두 사람 모두 신청한 지 한 달 만에 보석이 허락됐다.

따라서 그보다 상위에 이름이 올라 있는 다른 관련인물도 보석이 허락된 마당에 김 모 씨가 조건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조관행 씨 덕분에 보석으로 석방됐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조 씨의 개입을 실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을까?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제시한 4가지 사건의 최종 결과 만을 놓고 보면 양평골프장 사건과 일산의 건물 가처분 사건, 그리고 보석신청 사건은 김홍수에게 청탁한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따라서 조관행 판사가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건의 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 조관행 씨가 판결에 개입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관련내용을 추적한 법조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조관행 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뒤 법원도 관련 사건의 경과를 독자적으로 조사했으나 조사 이후 이 4건의 판결과 관련해 아무런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의 법원 분위기로 보아 만약 재판 결과가 왜곡되었다고 판단했다면 해당 판사의 징계나 재심 절차가 뒤따랐을 것이다.

검찰은 지난 17일 함께 구속된 김영광 전 검사와 민오기 총경을 기소하면서 조관행 씨에 대해선 보강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번 주에 조 씨를 기소할 때 새로운 혐의사실을 제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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