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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법원 판결에 '딴지' 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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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법원 판결에 '딴지' 거는 이유는?

<인터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 소장

"법도 민주주의의 한 영역이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과격한 주장' 내지는 '주제 넘은 참견'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관 인선과 관련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면, 보수 언론은 '사법 독립'을 운운하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다. 최근 강신욱 전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판결에 대해 진보니, 보수니 과격한 언동으로 선동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법은 비판이 불가능한 성역이라는 사법부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법도 민주주의 발전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영역이다. 더군다나 법관이 법을 현실에 적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 '판결'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지난 2005년 초부터 '판결 비평' 작업을 시작했다.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여덟 번째 '판결 비평'으로 서울지방법원 이종광 판사의 지난 6월 판결에 대한 비평을 내놓았다. 이 판결은 "불법적인 목적으로 부동산을 남의 명의로 바꿔놓은 사람은 나중에 그 부동산을 돌려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것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판결이다.

"판결문은 국민들에게 수용돼야 한다"
▲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프레시안

참여연대가 이 같은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상희 사법감시센터소장(건국대 법학과 교수)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법원의 판결이 법조인과 일부 법학자들의 전유물이 되다 보니 법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법에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판결문은 법적으론 판단이 끝난 것인지 몰라도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수용돼야 한다"며 "판결문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개인 정보 보호' 등을 핑계로 영·미법 법원에선 기본 전제로 여겨지는 판결문 공개를 아주 제한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소장은 판결 비평 작업이 여러 차례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판결이 나온 뒤 두어 달이나 지나야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어 시의성이 떨어지고, 판결 비평 자체가 대중의 큰 호응을 기대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한계를 짚었다.

그는 그러나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둔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 각 부문의 비민주적인 관행에 대해 비난이 아니라 논리를 가지고 비판하는 작업을 하는 게 다음 단계 시민운동의 방향"이라면서 "금기시돼 왔던 분야에 시민사회가 뚫고 들어가서 시민의 눈으로 판결을 평가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과 인터뷰는 지난 8일 참여연대 근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문제는 사법부의 관료화"

프레시안 : 판결비평을 시작한 이유는?

한상희 : 그간 사법감시는 법조비리나 제도개혁 등 제도적 차원에 집중해 왔다. 이제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돼 가고 있다. 개혁도 되고, 체제도 정비가 되고, 법관이나 사법부 독립도 보장돼 가고 있다.

이제 문제는 제도적인 차원보다는 사법부의 관료화다. 사법부의 판결들이 그 자체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내용 자체가 사회의 어느 일방에 유리하다든지, 또는 특정한 어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위주의 체제에 물든 관례, 관행 등이 반복·재생산돼 사법감시의 방향을 전환해 이제까지 해오던 활동 외에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겉으로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판결이 실제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나.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한가. 이런 기준으로 법원의 판결을 단순히 법 논리나 학술적인 면이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에서, 일반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잘된 판결은 국민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잘못된 판결은 국민의 입장에서 비판 해보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이를 통해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판결의 잘잘못을 따지고 이런 판결이 나온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했다. 좀 더 나아가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록 매우 간접적인 참여지만 시민들이 사법과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판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도 목적이었다.

프레시안 : 비평의 대상이 되는 판결은 어떻게 선정하나?

한상희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문제점이 있거나 혹은 잘된 판결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선정해서 회람을 시킨다. 또 중요한 선정 작업 중 하나로 판례공보나 월보에 실린 판결요지를 검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아진 판결 중에서 실행위원들이 최종 선택을 한다.

프레시안 : 영·미법 법원에서는 판결문을 모두 공개하고 있지만 우리 법원에선 판결문 공개를 매우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

한상희 : 금년 5월부터 판결문 공개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에 직접 가서 열람해야 하고 항소가 진행 중이거나 법원이 비공개로 결정한 판결문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다. 우리 법에도 재판은 기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을 공개한다는 것은 선고를 하는 현장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 공개하고 있는 방식은 너무 미흡하다. 사법감시센터의 입장은 판결문을 누구나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대는데 핑계에 불과하다. 개인정보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민등록번호나 이름 등 개인 신상이 노출되는 사안을 컴퓨터로 쉽게 익명 처리할 수 있다. 사실 판결을 공개하지 않기 위한 핑계라고 보여진다.

프레시안 : 왜 그런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나?

한상희 : 판결을 공개하기 싫은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판결을 쓰는 것 자체가 예사 일이 아니니 대충 쓴 판결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의 경우에는 판사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까…그런 면에서 보면 판사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프레시안 : 판사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이 한 해에 6000건이 넘는 경우도 있다던데?

한상희 : 그렇다. 어쨌든 판사의 보따리 안에 최소한 100개의 진행 중인 사건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

"판례평석은 있으나 판결비평은 없어"

프레시안 : 법치국가의 기본이 판결문 공개다. 판결문도 공개하지 않고 판결 이유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법치라고 할 수 있나? 이건 법치가 아니라 판사 개인에 의한 인치다. 여기에 모든 부정부패의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것 아닌가.

한상희 : 그렇다. 개인정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판결문을 공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거의 대부분의 판결이 컴퓨터 파일로 저장돼 있으니까 이름만 변환시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사실 저는 이름을 변환시키는 것도 반대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이 재판의 대상이었는가 하는 것도 공개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백보 양보해서 이름을 가려야 한다 하더라도 그 작업이 어렵지 않다.

프레시안 : 그러면 법률저널 같은 것도 없나?

한상희 : 판례평석이 있으나, 문제는 이 평석들이 다루는 판결은 대법원에서 공개를 결정한 판결에 한정된다. 법률학자들도 대법원에서 공개하는 것만 볼 수 있다. 그러니 하급법원에서 결정하는 사항들, 예를 들면 사실 인정 등에 대해서는 판결 평석을 할 수 없다. 왜 원고 측 이야기만 듣고 피고 측 이야기는 듣지 않았는가 등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프레시안 : 판결에 대한 법학자들의 평석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비평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겠다.

한상희 : 판결이라는 게 원고가 있고 피고가 있어 서로 다투는 것인데, 저희가 나서서 이 판결이 잘 됐다 잘못 됐다고 평가하는 것은 원고나 피고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라서 아무리 중립성을 유지한다고 해도 좀 어렵다.

확정된 대법원 판결을 다룰 때는 좀 편하지만, 진행되고 있는 사건을 다룰 때는 자칫 잘못하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한다.

프레시안 : 판결 선정의 기준은?

한상희 : 사회적 영향이 큰 판결, 이제까지 판결의 흐름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경우, 그리고 그 다른 흐름이 어떤 효과를 야기하느냐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판결이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나쁜 영향을 미쳤느냐, 그 영향이 큰가, 적은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또 민사, 형사, 상급심, 하급심 등도 고려하는 요소다.

프레시안 : 이 작업이 효과를 거두려면 판결비평이 널리 홍보가 돼야 하는데, 문제는 판결비평이 완성돼 발표될 때까지 시간이 걸려 시의성이 떨어진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판결은 판결이 나오는 대로 곧 언론에 보도된다.

한상희 : 저희들도 시의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지만 과정상 포기할 수밖에 없다. 판결이 나오면 그 판결을 비평할까 말까 판단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결정이 되면 이것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판결이 나오고 한 달 내지 두 달 정도 걸린다.

프레시안 : 시의성도 없고, 내용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게 아니다. 그렇다면 들인 공에 비해 얼마만큼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한상희 : 저희들도 그 점을 생각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 파급효과가 현실적으로는 별로 크지 않더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껏 법원의 판결은 법조인과 일부 법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겼다 졌다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법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법 과정에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고리가 어느 순간에는 깨져야 한다.

프레시안 : 제작된 판결비평은 어떤 경로로 배포하나?

한상희 : 참여연대 홈 페이지에 띄운다. <시민의 신문>(www.ngotimes.com)에도 게재한다. 주로 참여연대 회원들이 많이 읽고, 법원 쪽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법원 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한상희 : 내용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 하는 이야기는 없다. 주로 '왜 너희들이 그걸 하냐'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저희들이 이 사업을 시작했던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얘기들 때문이다.

판결문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끝이 났을지 몰라도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판결문에 접근하고 그 내용을 알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일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20여 명이 실무작업금기를 깬 시도 자체에 의미 있어"

프레시안 : 기존의 평석은 그런 작업을 하지 못했나?

한상희 : 평석은 학술적인 것이다. 이 판결에 적용되었던 법 이론이 무엇이고, 이 판결이 기대하는 도그마가 무엇이고, 사건 인식을 어떻게 했느냐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이 판결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이 판결의 효과는 무엇인가 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작업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몇 명이서 감당하나?

한상희 : 참여연대 실무자 3명과 실행위원과 자원봉사자 15~20명이 참여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에 속해 있는 변호사들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프레시안 :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얼마나 자주 발행할 생각인가?

한상희 : 두 달에 한 번 내는 게 원래 목표인데, 목표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이 작업을 주관해 온 사람으로서 자평을 한다면?

한상희 :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금기시되어 왔던 분야에 시민사회가 뚫고 들어가서 시민의 눈에서 판결을 평가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보다 많은 분야에서 저희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사회 각 부문의 비민주적인 관행에 대해 비난이 아니라 논리를 가지고 비판하는 작업을 하는 게 다음 단계 시민운동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저희의 작업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최근 내놓은 판결비평은 지난 6월 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이종광 판사가 내린 판결이다. 판결의 대상이 되었던 송사는 채권자에 의한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삼촌 명의로 바꾸어 두었던 사람이 낸 부동산명도소송.

지금까지 법원은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런 경우에 원소유주에게 부동산을 도로 이전해주라는 판결을 내려 왔지만 이종광 판사는 "원래 명의를 타인에게 옮긴 목적이 탈세나 채권자의 강제집행 회피 등 불법적이거나 반사회적인 것일 때는 원소유주의 명의반환 요청을 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것으로 만약 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가 이 판결을 훌륭한 판결로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판결로 해서 1995년 제정된 '부동산실명제법'의 입법취지가 비로소 법원의 판결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실명제법' 시행 이후에도 남의 이름으로 옮겨 두었던 부동산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그 법이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둘째, 이 판결은 판결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결문 중에서 판결 이유를 분명하고 조리있게 기록한 것이 드물었다고 참여연대는 지적했다.

셋째, 이 판결문은 판결의 근거로 법학 교수들과 실무가들의 논문과 평석을 다양하게 인용하고 있다. 외국의 판결문은 기존의 법원판례뿐 아니라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를 인용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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