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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는 나의 컴플렉스이자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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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는 나의 컴플렉스이자 우상"

<인터뷰>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갖는 락커 전인권

오는 22일 가수 데뷔 30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가수 전인권씨를 만나 그의 어린시절부터 음악여정 그리고 현재의 심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민기씨의 영향을 받아**

'영원한 자유인'으로 불리는 전씨는 자신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로 현재는 연극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기씨를 꼽고, 한국이 낳은 천재인 김민기 선배는 자신의 오랜 컴플렉스이자'우상'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또 가장 아끼는 후배로 "둘다 노래를 잘하고 음악성도 있는 윤도현과 김종서"를 꼽으며 "김종서 음악이 지금도 참 좋은데 자꾸 대중성으로 가려는 것 같다. 그대로 유지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전씨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일본보다도 30년에서 50년 정도 떨어진다"며 음악인들이 더 많이 공부하고 분말할 것을 강조했다. 전씨는 또 '65세까지는 청춘'이라며 "앞으로 10년 정도는 음악을 더 공부하는 기간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자유는 신나지만 외로운 일이며 자유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전씨는 자신의 노래 중에 '돌고, 돌고, 돌고'를 자신의 삶과 인생을 나타내는 주제가로 꼽았다.

다음은 20일 삼청각에서 진행된 전인권씨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사진1 전인권>

***전인권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 : 인터뷰 장소가 '삼청각'이라 의외인데.
전인권 : 삼청각 일대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여기 예쁜 여자들 들어오는 걸 보면서 컸다. '나도 언젠가 저기에 들어가 봐야지' 했었다.

프레시안 : 개인적인 것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적은 편인 것 같다.
전인권 : 아버지가 한학을 하셨고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다. 형들은 나하고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서 혼자 외롭게 큰 편이다. 그게 음악에 영향을 좀 주기도 했다.

프레시안 : 처음 음악을 한 동기는?
전인권 : 고교자퇴 후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 그리다가 사춘기 때 이성에 관심도 생기고 해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나 보고 여학생들이 잘 부른다고 그랬다. 그때는 부르기 어려운 팝송을 많이 불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됐다. 쉘브르(종로에 있던 음악다방)의 마지막 세대다.

***첫 취입은 '따로 또 같이' 시절**

프레시안 : 그러다가 첫 취입은 포크가수로 했는데.
전인권 : 강인원 이주원 같은 음악인들을 알게 되어 '따로 또 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첫 취입도 했다. 난 락이고 그 사람들은 포크계열이라 팀 이름부터 따로도 하고 또 같이도 한다는 뜻 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자꾸 나를 포크화하려 했다.

프레시안 : 그리고 몇 년 쉬다가 들국화를 결성했나?
전인권 : 아니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락 밴드로 활동을 했다. 당시에 함춘호나 후에 헤비메틀 그룹 백두산에 있던 한춘근도 나와 같이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가 들국화를 처음에 한 사람은 나와 조덕환이었다. 그 다음에 허성욱과 최성원이 합류를 했다.

프레시안 : 80년대 엄청난 인기에도 방송에는 왜 못 나왔나?
전인권 : 사실 몇 번은 나갔다. 조동진 콘서트 때 게스트로 머리를 자르고 나오라고 해서 스프레이 같은 것으로 꽉 누르고 뒤로 묶고 한 후에 무대 오르기 직전에 다 풀어버렸다.(웃음) 방송으로 그게 나가고 나서 그 프로 담당 신종인PD는 3개월간 좌천을 당했다. 지금은 국장이 됐는데 배짱이 있는 분이다.

***들국화는 좋아하는, 재미있는 음악을 한 그룹**

프레시안 : 무기한 장기공연을 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라이브 음반도 내는 등 당시에 많은 기록을 세운 들국화를 지금 돌아보면 어떤 그룹이었나?
전인권 : 처음 작업을 할 때 그랬다. 들국화는 잘 하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재미있는 음악을 하자고 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악착같이 한 것이 아니었다. 라이브 앨범도 5천명 모여서 할 때 녹음했으면 좋았을 텐데 국내기술이 당시에 그런 걸 못해서 아쉽다.

프레시안 : 당시 해체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2집의 실험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 보는데?
전인권 : 2집 앨범으로 흔들린 것은 아니다. 팀워크는 계속 유지가 됐다. 문제는 미국 공연이었다. L. A에서 한인교포사회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는 투어를 했는데 공연에서 음악 잡아주는 엔지니어가 우리보다 더 음악을 잘 알았다. '한국의 1등' 들국화가 너무 실력이 떨어졌다. 우리 실력이 그쪽의 기준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예술가들은 보통 개성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전인권 : 물론 개성이 중요하다. 근데 개성을 표현하려면 기본적인 테크닉이 필요하다. 한글을 알아야 소설을 쓸 것 아닌가. 솔직히 지금도 컴퓨터로 하고 하는 것 빼고 진짜 실력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일본보다도 30년에서 50년 정도 떨어진다. 곡의 구성 등 실제 실력이 그렇다.

<사진2 공연모습>

***'전인권이 트로트를 하면 터질 것'**

프레시안 : '추억들국화'라는 앨범이 그 후에 나왔고 거기에 '사노라면'과 '사랑한 후에'가 들어있었다.
전인권 : 무척 힘들던 시절이었다. 허성욱과의 마지막 작업이기도 하다. (허성욱씨는 후에 유학중 사고로 사망했다) '사노라면'은 김민기씨 곡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는데, 김민기씨가 권유를 해서 넣었다. 그 후 취입을 거의 안했다. 그 시절에 황당한 제안도 많이 왔다.

프레시안 : 어떤 것인가?
전인권 : 돈 싸들고 와서 판을 내자는 것인데 '전인권이 트로트를 하면 터질 것'이라며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웃음) 난 이미 정상을 맛본 상태라 흔들리진 않았다. 그리고 들국화 시절에는 모처에서 TV방송에는 나가지 말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어떤 국회의원은 직접 전화를 해서 자기가 하는 행사에 노래를 부르러 오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우린 그런데 그런 말을 하나도 안 들었다.(웃음)

프레시안 : 그 후 '겨레의 노래' 앨범에 후에 김광석씨가 히트시킨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으로 취입하기도 했다. 후에 딴 사람이 히트해서 억울하지 않았나?
전인권 : 그렇진 않았다. 김광석씨가 잘 불렀다. '이등병의 편지' 녹음과정에도 김민기씨가 연관되어 있다. 김민기씨가 한번 불러 보라며 집에 악보를 가져다 줬다. 그런데 녹음 중에 트러블이 생겼다. 나는 락으로 드럼소리를 살리자는 쪽으로 고집을 부렸고 김민기씨는 그러면 곡이 죽는다는 입장이었다. 생각해 보면 김민기 선배가 맞았던 것 같다.

프레시안 : 그 후 '돌고 돌고 돌고' 가 들어있는 1집이 나왔다. 곡이 히트했는데 텔레비전엔 계속 안나온 것 같다.
전인권 : 크게 성공을 했다. 그런데 당시에 홍콩배우 주윤발이 최고 인기였고 MBC가 2천만원 개런티에 '쇼 2000'인가 출연시키고 그랬다. 나보고도 나오라기에 '나도 최고니까 최고 대우하라'고 했더니 연락이 없었다. (웃음)

프레시안 : 그리고 또 '언제나 영화처럼'이 담긴 2집이 나오고 이번에 3집이 나왔다.
전인권 : 14년 만에 3집이 나왔나. 좋은 곡 쓰고 싶어서 오래 걸렸다. 그런데 곡을 못썼다. 그래서 일본작곡가를 섭외해서 같이 작업을 했다. 내가 아이디어나 영감을 주면 거기에 맞게 작곡을 하는 식이었다.

***김민기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프레시안 : 이번 새 앨범에도 김민기씨 곡인 '봉우리'가 있는데.
전인권 : 사실 나는 김민기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김민기씨는 천재다. 그런 천재는 우리나라에 또 없다. 개인적으로도 물론 친한 음악계 선배지만 어려서 처음 김민기씨 곡을 들었을 때도 어떻게 이런 기막힌 가사나 코드가 나오나 했다. 이번 취입한 것도 형님(김민기)이 나에게 2년 쯤 전에 '봉우리를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시작했다.
이 '봉우리'란 노래 가사 중에 '우리 땀 흘려 가는 길 여기 좁게 난 길 여기가 거긴지도 몰라'라는 부분이 있다. 너무 먼 곳에 신기루 같은 꿈을 보면 힘들고 허무할 수도 있으니까 현실에서 여기에서부터 땀 흘리며 싸워 나가고 그 자체로 만족하자는 말인데, 참 가슴에 와 닿는다.

프레시안 : 이번에 사랑노래도 처음으로 부른다고 알려졌다.
전인권 : '코스모스' '새야'같은 곡은 내 스타일의 사랑노래, 한 남자의 사랑노래다. 보내면서 서로가 너무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처음 사랑을 보고 내게 온 것처럼 만족을 못 시켜 줘서 헤어진 후에도 사랑하며 살기 바란다는 것이다.

<사진3>

***자유롭기 때문에 소속감 더 원해**

프레시안 :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산전수전에 '우주전'(이혼) 까지 치른 심정은?
전인권 : 나는 가족이 없으면 우주의 미아 같은 존재다. 미칠 것이다. 자유롭기 때문에 소속감을 더 원했다. 가정파탄은 막고 싶었다. 3년이나 싸웠다. 나는 같이 있자 아내는 떠나겠다고 계속 부닥쳤다. 지금은 애들과 셋이 산다. 이젠 발전이 남았다.

프레시안 : '모험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네티즌의 질문이 있었다.
전인권 : 아주 좋아한다. 신곡 중에 '네가 상상할 수 없는 곳까지 날아라' 라는 가사가 있다. 산을 가서도 태백산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니는 길로 눈 속을 20시간씩 가곤 한다. 위험이 있지만 거기서 얻는 것이 있다.

프레시안 : 네티즌들은 '머리 모양을 폭탄처럼 고수하는 이유'도 묻고 있다.
전인권 : 지금 스타일이 지금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예전에 예쁘게 파마머리도 하고 했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게 좋다.

프레시안 : 네티즌 질문 중에 들국화 초기 멤버로 '아침이 밝아올 때 까지'를 작곡한 조덕환씨가 지금은 무얼 하느냐는 것도 있었다.
전인권 : 조덕환은 그 노래를 자기가 부르려고 만들었는데 목소리가 가늘고 미성이라 소화가 안돼서 내가 내식으로 불렀다. 지금은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생활하고 있다. 조덕환은 우리끼리 쓰는 표현으로 '선수기질'이 부족했다. 뭐냐 하면 최성원이나 나는 무대에 오르면 뛰어다니고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좀 없었다.

프레시안 : 다시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락을 뽕락(뽕짝+락)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전인권 : 락은 그 지역마다의 특성이 있다. 발리나 태국을 가보면 또 그쪽의 감성에 맞는 가볍고 흥겨운 고유의 락이 있다. 우리는 한이나 슬픔이 섞인 락이라고 본다. 그래도 뽕락은 좀 심했다.(웃음) 창을 하다보면 참 블루스와 많이 닿아 있음을 알 수는 있다. 그리고 창이 꺾고 밀고 하는 것은 봉짝 하고도 연결이 된다.

프레시안 : 후배 가수 중에 주목하는 사람은?
전인권 : 윤도현하고 김종서다. 둘다 노래를 잘하고 음악성도 있다.

프레시안 : 아끼는 후배라 더 따끔한 충고를 한다면?
전인권 : 김종서 음악이 지금도 참 좋은데 자꾸 대중성으로 가려는 것 같다. 그대로 유지하면 좋을 것 같다.

***히피시대 사이키 음악 추구**

프레시안 :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의 목표는?
전인권 : 내가 결국 다가가려는 음악은 히피시대의 사이키 한 음악이다. 나는 우드스탁 세대다.

프레시안 :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은?
전인권 : 하고 싶은 관심은 전혀 없다.

프레시안 :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인은 ?
전인권 : 역시 김민기 선배다. 김민기는 나의 우상이다.

프레시안 : 본인이 65세까지는 청춘이라고 했는데?
전인권 : 앞으로 십년에서 십오년은 청춘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청춘은 공부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드럼과 악보공부를 계속 하려고 한다. 특히 악보는 지금도 코드정도는 보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를 그대로 옮길 수 있도록 공부하고 싶다.

프레시안 : 그림도 다시 하고 싶지 않은가?
전인권 : 전에 앨범에 내 자화상을 넣기도 했는데 전시회나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서예와 동양화 공부를 할 계획이다.

<사진4>

***내 주제가 '돌고 돌고 돌고' **

프레시안 : 자신의 주제가를 고른다면?
전인권 : 내 주제가는 '돌고 돌고 돌고'다. 풍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이 내 세상'도 어떤 끝까지 가는 각오와 결의가 있다. 그런 감성도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극한에 있으면서 한편으론 다시 또 돌고 나가고 또 돌아보고 하는 스타일이 좋다.

프레시안 : 대마초에 대해 말 한다면?
전인권 : 대마초는 온 국민이 피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담배보다 몸에도 덜 해롭다. 하지만 나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잡혀가면 안 되니까 못한다. 피면서 비타민 C와 B만 잘 보충하면 된다. 네델란드는 허용을 한다고 들었다.

프레시안 : 노무현 당선자는 어떻게 보나?
전인권 : 이번엔 제발, 제발 좀 잘해라!

프레시안 : 돈 벌고 성공하니 옛날 무명시절보다 좋은 점은?
전인권 : 연습실과 스튜디오를 갖게 된 점이다. 이번 앨범도 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다.

***노력이 없으면 자유롭지도 못하다**

프레시안 : 자신이 음악인으로 성공한 비결이 있다면
전인권: 노력이다. 노력이 없으면 자유롭지도 못하다.

프레시안 : 노래와 락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전인권: 좋은 것! 최고다! 노래는 목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트레이닝을 한다. 그리고 가수는 타고 나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전인권 : 산에 꼭 다녀다. 자신의 지구력을 알아보고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 바란다. 못 올라가고 실패해도 산이 받아 주니까 거기서 공부하고 터득해라.

프레시안 : 이번 공연에 대해서 소개한다면?
전인권 : 내가 그런 말을 잘 못한다. 난 무대에 올라가면 정신을 차린다. 균형이 잡힌다. 내 진짜 모습은 공연에서의 모습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와서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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