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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장, 울산·순천의 '사회적 합의'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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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장, 울산·순천의 '사회적 합의'를 배워라

[시각] 플랜트 노조 사태 등 시청이 적극 나서 해결

'포스코 점거사태' 이후에도 포항 건설노조의 파업이 계속 되고 있다. 게다가 집회에서 입은 부상으로 하중근(44) 씨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포항 지역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9일 포항에서는 또 다시 대규모 노동자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포항시 의원 5명이 포항시장, 포스코, 민주노총을 방문하며 중재에 나섰다.

물론 이번에 중재에 나선 포항시 의원 5명은 박경열 민주노동당 포항시 지구당 위원장, 강학중 한국노총 포항지부 의장 등 '친 노조' 성향의 의원들이다. 하지만 현재 갈등을 풀 실마리를 누구도 찾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노력은 '폭염 속의 소나기'와 같다.

특히 지난해 극한 대립으로 치달아 대량 구속사태를 낳았던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파업, 순천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파업 등이 '사회적 합의'로 평화롭게 마무리됐음을 감안할 때, 이번 포항 건설노조 파업 사태도 시민사회의 중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큰 대가를 치르고 깨달은 교훈… 울산: 71일 간의 파업, SK공장 정유탑 점거 농성, 47명 구속…. 지난해 울산 건설플랜트노조가 파업을 벌이며 얻은 기록들이다. 노조는 SK 공장 정유탑을 점거했고, 시위는 격렬했다. 그 당시에도 언론들은 매섭게 노조를 몰아세웠다. 일부 경제신문들은 '점거 농성 중인 노조원이 경찰에 통닭과 족발을 요구했다'며 악의적인 오보를 내기도 했다. 농성장에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파업에 대응하던 경찰의 모습도 최근 포스코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 지난해 있었던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의 SK점거 농성모습ⓒ연합뉴스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은 울산시청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대화 테이블을 마련했고, 노사 역시 더 이상의 대립은 피해만 키운다는 인식 하에 대화 테이블에 나섰으며, 결국 '노·사·정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당시 노사 문제를 '단체협약'이 아닌 '사회적 합의'로 매듭짓는 것은 약속 이행의 법적 강제성이 없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사회적 합의의 한 주체인 시청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노사 대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합의체가 계속 유지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지난해 합의 이후에도 꾸준히 노조 관계자나 지역 경제인들을 만나며 의견을 청취했고, 올해 초에는 '2006년 파업은 더 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올해 중반 노조 측의 교섭 요구를 사 측이 6차례나 거부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일일이 사 측을 찾아다니며 '일단 대화를 하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울산 건설플랜트노조는 지난 달 31일 전문건설업체들과 단협안을 합의했고, 지난 5일 조합원 77%의 찬성으로 단협안이 통과돼 한 달 간의 파업을 종료했다.

그는 "사실 노사관계는 노동부 소관업무로 지방 정부는 아무런 개입 권한이 없지만, 노사 갈등이 결국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플랜트 일용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생존권'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단체행동을 개시하면 '사생결단'으로 나오기 마련"이라며 "근로자 가족들의 생계 문제는 물론 석유화학단지의 특성상 안전사고 문제 등을 고려해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 시와 지방노동청 나서 중재, 해고 비정규직 전원 복직… 순천: 전남 순천에 위치한 현대 하이스코도 2005년 큰 홍역을 치렀다. 포항이나 울산과 같은 일용직 건설노조는 아니지만 하이스코 하청회사 폐업으로 길거리에 나앉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하이스코 공장 크레인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하이스코 파업도 경찰의 강경 대응과 노조의 격렬한 저항으로 수많은 부상자와 구속자를 낳았다. 사태가 과격한 대립으로 치닫자 중재에 나선 곳은 순천시와 광주지방노동청,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었다. 파국 11일만에 '노사정 합의'를 체결하며 사태는 마무리됐다. 당시 순천시장은 하이스코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사 측 설득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당시 체결한 노사정 합의 이행 여부 및 노조에 대한 72억 원의 손배·가압류 소송 등을 두고 갈등이 재현됐다. 노조는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공사 현장 크레인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으며, 총파업을 결의했다.
▲ 순천 현대 하이스코의 비정규직 갈등은 지방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낸 훌륭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연합뉴스

이 때 다시 적극 중재에 나선 곳은 순천시청이었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난해 순천시장이 하나의 주체로서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며 "순천시가 노사관계에 개입할 법률적 의무나 권한은 없지만, 합의의 주체로서 합의 이행에 책임이 있다는 자세로 중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순천시청 실무진이 대화에 참여하는 등 하이스코 문제 해결을 위해 실무진을 많이 투입했다"며 "사실 사 측은 시민단체가 노조 쪽에 약간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청은 공정하고 성실한 중재자가 되는데 주안점을 두고 문제 해결에 임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 측이 손배가압류 취하·해고자 우선 채용 등을 약속하면서 긴장이 해소됐다. 이 또한 '노사정 합의 이행'이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고, 이 압박에 원청인 하이스코가 성의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하이스코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2006년까지 2단계, 2007년까지 3단계 협약을 이행토록 돼 있다. 이를 감시하고 중재하는 순천시의 역할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시장이 '본때 보여야 한다'던 포항은: 울산과 순천이 노사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던데 반해 이번 포스코 사태에서 드러난 포항시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폭로된 포스코 측 문서에 따르면 박승호 포항시장은 지난 달 12일 포스코 측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포스코에서 건설노조의 연례행사 격인 파업 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본때를 보이고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파업을 막아 경제를 살리자는 시위ⓒ연합뉴스

박 시장은 특히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일용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에 근무하는 일용직도 일요일 유급휴일은 없는 실정"이라고 말하는 등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음 날인 13일에는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지방노동청 포항지청장, 언론사 사장 등을 모아놓고 '지역안정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대책회의에 노조나 시민사회단체 대표는 한 명도 없었다. 포스코 문서에 따르면 오히려 대책회의보다 한 시간 먼저 열리는 건설노조 집행부와의 대화에서 "사 측이 수용 가능한 것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라고 설득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포항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건설노조원들이 포스코 점거에 들어간 이후 '지역경제 망친다'는 각종 현수막이 걸리고 '경제 살리기' 시위 등이 일어났는데, 거의 관변단체들이 한 일이라고 보면 된다"며 "포스코와 경찰은 그렇다 치고, 포항시에 중립적 자세를 기대하지도 않지만 중재자 역할까지 포기한 것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점거 사태 발생 이후에도 포항시는 파업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포항시 의회 관계자는 "포항시청 측은 '이번 사태는 이미 포항시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는 입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값비싼 이웃의 교훈 돈주고 배우진 못할 망정: 우리 사회는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순천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사태에서 이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사회적 합의'라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건설노조의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공장은 사용자가 단일하고 자체 교섭력을 갖고 있지만, 건설 플랜트와 같은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하청구조로 이뤄져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교섭 자체가 어렵고, 현실적으로 원청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면 교섭은 난항에 빠질 수 있다"며 "약한 교섭력은 극한투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 점거농성 중인 '남편', '아버지'에게 음식을 넣어주려는 가족들ⓒ연합뉴스

그는 이어 "교섭력이 약한 경우 공정한 중재자를 둔 대화 테이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며 "포항시가 울산이나 순천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어야 했다"고 말했다.

노동계 출신 포항시 의원 5명은 7일 포항시장을 면담한 데 이어, 8일에는 민주노총과 포스코를 연달아 방문했다. 하지만 '소나기'와 같은 이들의 노력이 마른 대지를 충분히 적실 빗줄기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를 잃은 박승호 포항시장이 먼저 나서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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