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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다세포소녀

감독 이재용 | 출연 김옥빈, 박진우 제작 (주)영화세상 | 배급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11분 | 2006년 상영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원조교제가 일상화된 사회. 원조교제를 한다면 조퇴가 허용되는 학교. <다세포소녀>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담임선생이 들어와서 얘기한다. 영어선생이 원조교제를 하다가 매독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고. 그말을 듣는 순간 한 여학생이 일어나 자기도 병원에 가야 한다며 황급히 교실을 빠져 나간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남학생이 씩씩거리며 나가고, 그 다음엔 또 다른 여학생이, 그리고 이어서 거의 모든 남학생과 여학생이 번갈아 가며 교실밖을 빠져 나간다. 그런데 그 중간쯤 나오는 대사가 걸작이다. 한 남학생이 교실 문을 나서는 어떤 여학생을 보고 소리친다. "너, 처음이라며?" 여학생이 대답한다. "1:1이 처음이랬지.."
다세포소녀 ⓒ프레시안무비
원조교제에서부터 시작해 SM과 동성애, 그룹섹스와 복장도착에 이르기까지 섹스와 관련된 온갖 상상력이 동원된 <다세포소녀>는 그러나, 노골적인 장면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15세관람가 영화다. 마치 머리와 상상력만으로 '사정(射精)'하라는 얘기인데 그럼으로써 오히려 결국엔 이 영화가 따로 할 얘기가 많은 작품이라는 점을 느끼게 만든다. 섹스산업이 발달된 곳일수록 오히려 성적 욕망은 더 억압돼 있기 마련이다. 정치사회적 억압기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더 왜곡된 성적 환상을 갖게 된다. <다세포소녀>가 역설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아무리 영화 곳곳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활짝 다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변태적 욕망의 수사학을 널어 놓았다 한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오히려 갖가지 형태로 눌려 있는 우리의 욕망을 슬프게 얘기할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가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쉬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때문이다. <다세포소녀>는 그래서, 15세관람가가 맞다. 청소년들도 알아야 할 이 시대의 진정한 정치학을 은근히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언사를 직접적으로 구사하는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뉴 제너이션 감독답게 이재용 감독은 마치 지뢰를 매설하듯 영화 여기저기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심어 놓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온통 괴상한 은유와 비유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재용 감독은 때론 거꾸로 자신의 본심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의 중심인물을 '가난을 등에 업고 사는 소녀'로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중심 캐릭터로 '외눈박이'인 소년을 설정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두 캐릭터는 우리사회의 가난과 소외에 대한 얘기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용 감독은 한편으로 이 두가지의 직접적인 사회적 이슈를 영화중에서 가장 비현실적 방식으로 그려낸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가난이라고 이름지어진 인형(마치 진저브레드맨처럼 생겼다)을 실제로 등에 업히게 한 상태로 나오게 하고 '외눈박이'에게는 커다란 외눈 안경을 이마에 붙여 놓은 상태로 연기하게 한다. 마치 가난과 소외의 문제라면 이제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그런 애기를 하면 마치 만화속에서나 만나는 캐릭터인 양 취급받고 있는 현실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애기를 가장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그 현실을 더욱더 강조하는 간접의 간접화법을 사용한 셈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이재용 감독이 이번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갖가지 실험을 해내고 있음이 느껴진다. 일단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각종의 정치사회적 이슈, 예를 들어 '왕따'와 같은 학원문제를 포함해 경제적 양극화 문제, 원조교제, 해외입양아 문제, 심지어 반미 이데올로기 등등까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실험하려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거기다 덧붙여 온갖 장르의 표현기법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을까도 고민했을 것이다. 영화가 정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극단적으로 혼재된 양식을 선보이는 건 그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란 매체와 출판만화, 뉴미디어 등 인접 매체가 갖는 호환성도 실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만화의 컷을 그대로 따온 듯한 인상을 주는 것, 텔레비전이나 DMB에 적용될 수 있도록 에피소드를 다양하고 짧게 구성해 놓은 것도 아마 그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재용은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가 과연 어디까지, 그리고 무엇까지 표현해 낼 수 있는 가, 무엇보다 그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인가를 실험한 셈이 된다. 영화의 최고의 가치는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발과 실험이다. 그럼으로써 영화 자체를 진보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을 보고 향유하는 사람들을 진보시킨다. <다세포소녀>가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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