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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살인', '염산테러'로 스러져 가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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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명예살인', '염산테러'로 스러져 가는 여성들

[아시아 인권 투어] <10> 묵인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어느 사회에서든 소수자와 약자는 다수집단과 강자에 의해 혹은 이들이 주도하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당하며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날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그 수적 다수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돼오고 있다. 그 차별이 나타나는 현실은 교육기회의 불평등, 상대적 저임금, 정치영역의 진입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흔히 성폭력, 가정폭력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체적 손상뿐만 아니라 여성의 인격과 존엄성, 그리고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수반한다.

여성을 여전히 인격체로 간주하지 않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문화적 전통이라는 명분하에 극단적인 형태를 띠기도 한다. 예컨대 중동이나 남부아시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위 '지참금 살해(dowry murder)', '명예살인(honor killing)', '염산테러(acid attack)', 아프리카 문화에 뿌리를 둔 것으로 알려진 여성성기절단(female genital mutilation) 등이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지참금

지참금이란 약혼이나 결혼을 할 때 신부측에서 신랑측에 제공하는 돈이나 선물을 일컫는다.

지참금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주장들이 있다. 여성은 공식적으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이 결혼할 때 부모의 재산 중 일부를 신랑에게 줌으로써 여성측의 가산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고 힌두교 경전인 마누법전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경우도 있다. 즉 마누법전은 철저히 남존여비를 진리로 삼고 있는데 남성이 '별 쓸모없는 여성'을 거두는 대가로 지참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여성들의 경제력과 교육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오히려 요구하는 지참금의 액수는 날로 높아져서 웬만한 가정의 연간 수입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인도여성민주연합(AIDWA)의 2002년 보고서에 의하면 요즘 인도에서는 빈부와 카스트에 상관없이 평균 지참금이 약 10만 루피(약 27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인도인들의 연평균 수입이 4만 루피(약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지참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보통신 산업과 투자 활성화 등으로 인해 인도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남아선호 사상은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2002년 인도의 개발정보연구소에 의하면 남성 1000명 당 여성인구가 1901년에는 972명이던 것이 한 세기 동안 꾸준히 감소해 2001년에는 933명으로 나타났고 0~6세 영유아의 성비는 928로 전체 성비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낮은 지위와 지참금 문제로 출산을 꺼리게 되면서 여아를 낙태하거나 출산 후 유기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61년 법적으로 지참금을 금지한 데 이어 1994년에는 이 법을 강화하고 낙태 또한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신랑측의 요구대로 지참금을 지불하지 못한 여성들은 결혼 후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남편이나 시집식구들로부터 매를 맞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여성이 부엌에서 일할 때 불을 질러서 화재사고를 가장하여 신부를 살해한다. 그 이유는 사망한 여성이 부엌에서 일하다가 실수로 불을 냈다고 둘러대기 쉬울 뿐 아니라 화재로 인해 살인에 대한 모든 증거를 없앰으로써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경찰에 의하면 기혼여성의 자살과 사고사 중 거의 80%는 부엌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인도에서는 '부엌화재(kitchen fire)', '신부 불태우기(bride burning)', '지참금 살해(dowry murder)'와 같은 용어들이 일반화돼 있다.

최근에는 지참금으로 인해 살해되는 여성뿐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의 얘기가 드물지 않게 보고된다. 2003년 인도에서는 결혼 지참금을 걱정하는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15, 17, 19세의 세 자매가 나란히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지참금 제도가 나이 어린 여성들을 자살로 몰고 있는 한편 지참금 마련을 위해 어리고 젊은 여성들이 장기 매매를 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인도의 이웃나라 방글라데시 또한 1989년부터 지참금을 불법화 하고 있으나 한 보고에 의하면 지난 2000년 209명의 여성이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이 중 100여 명은 사망에 이르렀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염산테러
▲ '염산테러 생존자'인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염산테러생존자재단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2002년 특별법까지 제정했지만 염산테러는 여전히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EPA

2002년 3월 8일 방글라데시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과 남성들이 거리행진에 나섰다. 이들이 든 피켓에는 염산테러를 근절하자는 문구와 염산을 뒤집어쓰고 빨갛게 살이 녹아내려 참혹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는 여성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들은 또 다른 여성폭력인 염산테러의 피해자들이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에서 주로 일어나는 염산테러.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가 당연시되는 사회구조에서 청혼의 거절은 '감히' 남성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되고 손상된 남성의 권위를 재확인하는 염산테러는 '낭만적 정의(poetic justice)'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여성을 남성의 요구와 권위에 철저히 복종해야 하는 소유물로 간주하는 이런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보복적 응징이 오히려 정당화되는 것이다.

14세의 모야니(가명)는 이웃 청년 랄린(가명)의 청혼을 거절한 이후 오랜 시간 시달려 왔다. 랄린은 후견인을 내세워 다시 청혼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자 2004년 9월 잠을 자고 있던 모야니에게 염산을 뿌렸다. 이로 인해 모야니는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4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염산테러생존자재단(Acid Survivors Foundation)에 의하면 2000년 이후 매년 400여 건의 염산테러 피해자가 보고된다고 한다. 또 다른 보고에 의하면 지난 5년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염산테러는 무려 2000여 건에 달하고 이중 여성 피해자는 70% 정도다. 이렇듯 염산테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2002년 '염산관련특별법'을 제정해 염산으로 살인이나 중상을 입혔을 경우 무기징역에서 최고 사형까지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각종 편법으로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따라서 200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412건의 염산테러 중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겨우 87건에 불과했다. 물론 과거에는 이 정도도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방글라데시에서는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염산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 누구나 단돈 40디카(약 700원)면 염산을 손을 넣을 수 있다. 법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염산을 구입할 수 있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법치의 부재는 이 사회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와 더불어 여성들이 불에 타죽고 살이 녹아 일그러지도록 하는 주원인일 것이다.

명예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살인
▲ 남편에 의해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코와 입술을 베인 파키스탄 여성. 사진은 지난 5월 24일 이 여성이 파키스탄 중부 도시 물탄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EPA

유엔인구기금(UNPF)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연간 명예살인 피해 여성은 5000여 명에 이른다. 명예살인은 성적으로 정숙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을 그들의 남자형제, 남편, 아버지, 친척들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파키스탄, 터키,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여성이 어떠한 언행을 했는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추측이나 소문만으로도 살인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사회에서 여성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은 중매결혼(arranged marriage)의 거부, 성폭력 피해, 이혼(남편의 폭력 때문에 요구하는 이혼도 포함), 혼전·혼외 성관계, 데이트 등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파키스탄의 동부지역에서 40대 남성이 한밤 중에 의붓딸의 목을 찔러 살해하고 이어 4세, 7세, 8세 된 딸마저 살해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의붓딸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은 이 남성은 어린 딸들도 큰딸처럼 될까봐 살해했다고 했지만 사실 큰딸은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피신해 왔던 것이다.

여성의 몸과 존재는 남성 혹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친척, 가문, 부족의 소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남성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한 여성은 곧 가족과 남성의 명예를 심히 훼손한 것으로 여겨지고 해당 여성을 직접 죽임으로써 손상된 자존감과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적 악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습은 가부장적 이중기준(double standard)에 의해 강화, 유지되는데 심지어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경우에도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가해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 여성이라는 모순적 잣대가 작동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2004년에 법을 개정하여 명예살인 가해자에게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측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돈을 쥐어주고는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소위 '피묻은 돈(blood money)'이라는 형식의 면죄부가 제도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대개 명예살인을 코란에 기반을 둔 이슬람의 독특한 문화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 사람들과 이 분야 전문가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코란과 이슬람 교리에 '명예살인'이란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명예살인은 교리를 잘못 이해하거나 단지 종교를 빙자하여 문화적 악습을 합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차별 철폐'의 규정들이 허사가 되지 않으려면…

차별이 있는 곳에는 항상 폭력이 존재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폭력은 그 사회 전반에 고착화 되어 있는 남성우월적인 가치관과 이를 반영한 차별적 제도와 관습에 기인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모든 폭력은 그 차제로서 차별이라고 선언하고 지난 1994년 여성폭력에 대한 특별보고관을 임명했다. 그 이후 특별보고관이 제출한 보고서로 인해 잔혹한 여성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해당 국가들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여성 및 아동의 건강에 유해한 전통관습들의 철폐를 위한 행동계획'이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채택된 바 있다. 여기에는 법률제정,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개별국가가 취해야 할 조치와 유엔 차원의 감시, 비정부기구들의 활동 등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제도적, 법적 장치가 갖추어진다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국내 및 국제 차원의 법과 제도의 보완보다는 얼마나 실효성 있게 해당국이 이를 이행,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일 것이다. 실천 없는 규정, 행동계획, 그리고 법들은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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