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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 영화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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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 영화를 생각하다

[건축가 황두진의 영화기행]

오늘은 특정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글의 제목은 요즘 나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주제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연이다. 자연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며' 의도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래서 잔인하지도 않지만 자비심 같은 것도 없다. 자연이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자연의 일부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과 구별되는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일부면서도 자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 인간이 가진 큰 재능은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만드는 것이 달라진다. 그 하나가 기계고, 또 다른 하나가 예술이다. 이렇게 자연, 인간, 기계, 그리고 예술, 이 네 가지는 오늘날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도상적으로는 일종의 마름모를 생각하면 된다. 위에 자연이, 그리고 아래 인간이 있다. 그리고 양 옆에는 기계와 예술이 있다. 당연히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상호작용에서 많은 현상들이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기계와 예술의 관계는 미묘하다. 종종 이 둘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별은 가능하다.
기계는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다. 이것을 벗어난 기계는 있을 수 없다. 즉 기계의 최대치는 자연이다. 하지만 예술은 자연과 보다 복합적인 관계를 맺는다. 물론 어떤 예술은 자연을 닮고자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생각이 강하다. 한옥을 보라. 지붕의 곡선이 뒷산의 능선과 닮았다는 것에서 우리가 얼마나 만족을 느끼는가? 하지만 분명히 어떤 예술은 자연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의지와 능력을 담고 있다. 건축가 루이 칸(Louis Kahn)이 '예술의 세계에서 자연은 인간이 만드는 것을 만들 수 없다'(In the work of art, nature cannot make what men can.)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중에서도 내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기계다. 기계는 맹목적이다. 기계는 적어도 고장 날 때까지는 만들어진 목적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장면들을 연상하면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기계의 한계지만, 동시에 인간이 기계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그러한 능력을 가질 필요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증기기관, 비행기, 자동차와 같은 것들은 보이는 기계다. 하지만 정부, 회사, 각종 조직 등 사회적 기구 및 제도(social institution)들은 보이지 않는 기계다. 그리고 이들의 작동 기제는 보이는 기계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 기계들은 종종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한 맹목적인 동작을 취하고 또 그 결과로 살아남는다. 나는 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는가? 그 이유는 내가 하는 건축이야말로 기계이면서 동시에 예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도 그 속성에 대해 항상 호기심을 느낀다. 마치 항상 같이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해서 우리가 종종 호기심을 느끼는 것과도 같다. 내가 하는 일은 기계를 만드는 것만으로, 혹은 예술을 하는 것만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양자 사이의 복합적 긴장이야말로 이 일의 핵심이다. 정갈한 사랑방에 앉아 홀로 고요히 문인화를 그리는 것과는 정말 다른 것이다. 사군자를 치는 선비와 같은 자연형 예술가가 복잡한 법규를 따져가며, 일정과 공기를 따져가며, 현실 세계 속에서 건축을 만들어내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그런 면이 아예 없으면 만들어진 결과가 건축이라고 하기엔 너무 살벌할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아파트들이 그런 것처럼.
터미네이터 ⓒ프레시안무비
기계이면서 동시에 예술인 또 다른 예는 영화다. 생산수단이 그렇고, 생산과정이 또한 그렇다. 학교 졸업 작품 정도의 저예산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제 갈수록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계는 끊임없이 투자하고 소비하고 또 투자하고 소비한다. 좀 더 공고한 시스템을 만들고자하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촬영 현장에서 혼신을 힘을 다해 영화 만들기에만 힘쓰는 감독은 자연형 예술가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이를 지나서 제작에서 배급, 흥행의 시스템을 자본 및 사회적 환경과 결합하여 만들어 나가는 감독들이라면 점점 기계의 능력까지도 갖추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계에는 그러면서도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기계 이전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충무로 뒷골목에서 선배와 후배와 모여 정겹게 소줏잔을 기울이는 모습 등이 그런 것이다. 그야말로 자연형 인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변호사를 대동한 계약서 작성이나, 유사시 법적 대응도 불사하는 등 생존을 건 기계의 모습이 선명하게 공존한다. 건축은, 적어도 나같은 스튜디오형 건축가들의 세계는 아직 충분히 기계적이지 못하다. 여전히 자연형 인간들이 많고, 그러니 '정'과 같은 감성적 요인들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지만 요즘은 앞날이 걱정스럽다. 기계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기계에 편입되지 않은 자연형 인간으로만 구성된 조직의 운명은 앞길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계가 그토록 스크린 쿼터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충분히 헐리우드와 같은 고성능 기계가 되지 못했고, 그래서 국가와 제도라는 확실한 기계의 힘이 아직은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건축에서는 그런 자각조차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사는 그런 초식동물 같은 존재들이다. 기계 특유의 생존을 위한 유난스런 짓을 별로 하지 않으므로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도 없다. 사라지고 나면 그때서야 조금 아쉬운, 그런 존재일 뿐이다. 기계는 인간성의 일부다. 그래서 나도 이제 기계가 좀 되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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