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병기 |
출연 고소영, 강성진, 장희진
제작 토일렛픽쳐스, (주)영화세상
등급 18세 관람가 |
시간 92분 | 2006년
상영관 CGV, 메가박스, 대한극장, 서울극장 공포영화가 공포를 그릴 것인가 현실을 그릴 것인가의 문제는 물론, 감독이 알아서 할 일이다. 가상의 공포를 그리든 현실의 공포를 그리든 중요한 것은 그 공포가 그럴 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얘기의 아귀가 들어 맞아야 함은 물론이고 살인마든, 원혼이든, 이상성격자든 영화속 인물의 행동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걸 잃으면 영화를 보는 흥이 깨진다. 공포영화가 무섭지가 않아진다. 공포영화가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공포스럽지 않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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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프레시안무비 |
안병기 감독의 네번째 공포영화 <아파트>는, 영리한 감독이 만든 작품답게, 요즘 유행한다는 공포영화의 트렌드를 죄다 쓸어담은 듯한 느낌을 준다. 세계 공포영화계는 요즘, <링>이나 <주온><검은 물밑에서>와 같은 일본식 심령영화에 푹 빠져 있는데 이들 작품들은 대개 과학적으로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들을 할리우드식의 이벤트성 장치가 아니라 일본식 괴담의 음산한 분위기로 꾸며낸다. 산발한 머리 사이로 흘깃 들춰 보이는 비틀린 얼굴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각인된다. 오 그건 정말 지긋지긋하게 무서운 표정이다. 안병기가 그려낸 <아파트>의 원혼(인지 뭔지는 영화로 확인해야겠지만) 역시 소름돋는 형상을 하고 극장안 관객의 머리 위로 떠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고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다 보고나면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쇼크가 극 후반의 결말을 위해 다소 무리하게 짜맞춰진 듯한 인상을 준다. 공포영화는, 다른 영화들보다 특히 더 (마치 바둑을 다 두고나서 하듯) 복기를 하게 만드는 장르다. 그러니 신경써서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파트>를 보고 나면 여러 의문이 떠오른다. 주인공 고소영은 한명일까, 두명일까. 그녀는 살인의 목격자인가, 아니면 살인 당사자인가. 그녀가 만나는 휠체어 소녀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죽었다면 언제 죽었는가. 휠체어 소녀의 집에 숨어있던 (히키코모리 병에 걸린) 괴기스런 청년은 범죄의 방조자인가, 목격자인가, 아니면 살인자인가. 건너편 아파트에 살며 극 중반부터 고소영 옆을 따라 다니는 여고생의 존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녀의 6mm 카메라에 찍힌 원혼은 진짜 원혼인가, 아니면 카메라에 찍힌 이상 현상인가. 사실 이 모든 질문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심플하게' 정리된다. 스포일러가 염려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원혼의 얘기를 그린 내용이 아니다. 스스로 원혼이 된 어떤 살인자의 얘기다. 안병기 감독은 그 살인자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중첩시킴으로써 관객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의 얘기들, 특히 히키코모리 청년의 이야기 등은 죄다 '맥거핀'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병기 감독은 몇가지 장면에서 전체 이야기 구조를 비트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장치를 풀어 놓고 있어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 영화의 살인자는 명백하게 '누구'이다. 그렇다면 여고생 카메라에 찍힌 머리 푼 원혼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휠체어 소녀와 주민들의 관계는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 무엇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때문에 <아파트>는 2% 부족한 감을 준다. 몇가지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호함 자체도 감독 스스로 의도한 것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공포니까. 그렇다면 그걸 노린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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