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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무원을 反개혁으로 매도말라"

<한 공직자의 격정 토로> "줄세우기가 더 문제"

정권교체기, 변화의 시기다. 이 변화로 인해 다른 어디보다도 뒤숭숭한 집단이 바로 공직사회일 것이다.

대폭 인사교체가 기다리고 있다. 조직개편도 있을지 모른다. 행정쇄신, 새로운 개혁 추진 등등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날 곳이 바로 공직사회다. 김영삼 정부 때도,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다.

긴장 속에 노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공직사회. 그 내부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부처에 따라 직급에 따라 각자의 처지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바라보는 심사도 모두 다를 것이다.

그중 한명,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공직자의 주장을 생생히 옮겨 본다.

***"공무원을 보수, 反개혁으로 매도 말라"**

"공무원들 다수가 노무현을 찍었을 것이다."

그의 첫 마디였다. 지난해 말 각 부처별로 다양한 형식의 모의투표가 횡행했는데 투표 결과는 단연 노무현 쪽이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공무원들도 우리 정치가, 사회 전반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마한 사람들 중 변화를 기대할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이상하게도 정몽준에 대해서는 공무원 대다수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이회창은 변화와 거리가 멀고. 그러니 노무현을 찍은 사람이 많다."

"이회창 앞으로 줄서기가 횡행했다는 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즉각 답이 터져 나온다.

"고위직들 가운데는 실제 줄 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은 다르다. 내가 만나본 공무원들 가운데는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노무현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공무원을 무조건 보수적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한 얘기다."

결국 그는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공무원을 무조건 보수집단으로 규정하지 말라."

같은 취지의 말이 몇 차례 반복됐다.

"자기 의견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의견은 반(反)개혁으로 매도하는 것은 독선이다.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DJ 정권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합리적 기준이 아니라 자기네 이익을 좇아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거기 반대하면 반(反)개혁집단이라고 매도하는 일말이다."

"공무원을 보수, 반(反)개혁세력으로 설정하면 토론과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무조건 제압하려 든다. 공직사회를 장악하는 것은 대통령의 리더십 범위에 들어가는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장악의 방법이다. 보수집단, 반(反)개혁세력으로 치부해 놓고 무조건 굴복시키려 한다면 일이 될 리가 없다. 공무원 다수를 냉소적으로 만들 뿐이다."

***'정치와 행정의 분리', 정치꾼 만들지 말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원칙일까?

그가 내놓은 답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정치와 행정의 분리'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충격적인 얘기들이 이어졌다.

"5년 전 일이다.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각 부처마다 평소 문제 많았던 몇몇 사람들이 김대중 당선자 명의의 감사패를 들고 다녔다. '내가 감사패 받았다'면서 실제 자랑하고 다녔다. 그게 정말 김대중 당선자가 준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들의 자작극인지는 모른다. 하여간 분명히 봤다. 물론 특정지역 출신 사람들이었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 법에 규정돼 있다. 누가 당선되었든 당선자의 감사패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5년간 완장 차고 설쳤다. 자기들끼리 뭉쳐 포스트를 정해놓고 민주당의 전문위원이나 몇몇 보좌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다른 공무원들의 '충성도'를 평가했다. 거기서 인사를 다 했다. 그 사람들만 승승장구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정보망이 잘 되어 있었다. 소수그룹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자기들 외에 타인들을 항상 감시하고 평가했다. 결국 공무원 모두에게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그 영향력을 무시 못 한다."

지금은 어떤지 물었다.

"이번 선거에서 이회창이 당선되었다면 아마도 그런 사람이 또 나왔을 것이다. 노무현에게 대 놓고 줄 선 사람은 별로 없었는지, 아직은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그가 말하는 '정치와 행정의 분리'는 이런 것이었다. 추상적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사회 내에 정치꾼을 만들지 말고, 정치꾼을 오히려 색출해 처벌해야 한다는 간단한 주문이었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였다.

"지방자치제 실시하면서 지방행정기관의 경우 공무원들이 정치인들에게 줄서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색깔을 분명히,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라"**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 대해 물었다. 지나치게 학자 위주로 짜여졌다거나 혹은 과격한 주장이 많이 나온다는 등의 불만이 나오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의제만 정리하는 정도로는 괜찮은 구성이다. 5년 전에는 완전히 모든 것을 인수인계 받는 차원이어서 떠들썩하고 요란했다. 아직도 인수위원회가 자리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어서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새 정부 국정구상의 큰 틀을 내놓는 정도의 일이라면 현재 인원이 적정하다. 거기서 일단 안을 만들고 현실적합성, 실현가능성을 검증하는, 의견수렴하는 절차가 거듭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요즘 말 많은 인수위 경제분과 같은 경우 색깔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거 문제 안된다. 오히려 더 확실한 색깔을 부여해야 한다. 그 색깔을 일관된 방식으로 논리화시켜 놓으면 사회 전체가 그 방향으로 간다."

"문제는 오히려 분명치 않은 데 있다. 원칙과 기준을 정했으면 일관된 논리로 지켜야 하는데, 자기들 이익이 달린 문제에서는 그 기준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DJ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에게 적개심을 갖고 공격하기만 했다.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기들 쪽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았기에 반발만 초래한 것이다."

"큰 원칙, 일관된 논리, 기준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사회전체가 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 세세한 부분은 곳곳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조금씩 진전되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말 바꾸기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정권의 이해관계, 특정 인맥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정해 놓은 원칙을 수시로 깨뜨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런 말 바꾸기를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또한번 DJ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관료사회와 직결된 정부조직 문제였다.

"DJ 정부 초기 정부조직 축소한다고 시늉을 냈지만 실제 줄어든 인원이나 기구는 없다. 장관급의 경우 오히려 더 늘어났다. 공연히 축소한다고 하면서 대다수 공무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불안함을 떨치려고 줄을 섰다. 그래서 결국 실패한 거다."

***"공무원은 권력자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조직"**

다음은 '성급함'에 대한 경계가 이어졌다.

"5년 내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공공권력은 일종의 상징조작이다. 큰 방향을 잡는 것이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손대면 충돌이 벌어지고 반발이 생겨 그걸 무마시킬 방법이 없다. 지원하는 것, 규제하는 것 모두 상징조작, 방향제시에 그쳐야 한다."

이 대목에서 말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정권이 아무리 방향을 제시해도 부패한 관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현장에서 개혁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경제부처 같은 경우 특히 정경유착, 관경유착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꾼다는 게 불가능하다. 하나하나 해야 한다. 세세한 부분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면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흉흉해지면서 곳곳에서 정서적인 암초가 솟아나온다."

"이건 일종의 우리사회 수준 같은 거다. 돈 주고 받고, 서로 봐주고 하는 식의 온정주의가 깊게 뿌리박혀 있다. 이걸 한꺼번에 모두 건드려 불만과 저항이 일단 돌출하기 시작하면 걷잡기가 더 어렵다. 전체적인 사회분위기를 한 방향으로 만들면서 세세한 현장에서는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공무원의 속성이 권력자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배신할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권력이 바뀌면 싫든 좋든 그 사람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는 것이 공무원 사회의 기본생리다."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의적으로 훼방을 놓거나 비토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면 금방 표가 난다. 공무원사회의 문화 자체가 그렇다. 이런 풍토에서 유난히 튀어가면서 대통령의 개혁에 저항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은 상징과 목표를 보여주면 충분하다. 그 다음은 상당부분 관료들의 판단을 믿고 자율권을 줘야 한다. 대신 정확한 평가를 하면 된다.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에 대통령이 너무 세심히 개입하게 되면 관료들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과정은 맡겨두고, 그 성과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토론하고 평가해야 한다."

***개혁의 일선 일꾼은 바로 공무원들**

여기까지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쏟아낸 한 고위공직자의 격정적인 토로를 생생히 옮겼다. '정치와 행정의 분리' '분명한 원칙과 기준 제시' '전문행정의 자율권 존중' 등이 그가 주장한 핵심요지다.

그의 말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관료의 입장에서 공직사회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한 주장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노무현 당선자 입맛에 맞으라고 사실을 왜곡시켰을 수도 있다.

또 '더 많은 변화, 더 빠른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공직사회가 갖는 지나친 현실주의, 결과적인 보수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낸 발언들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의심하거나 매도하기 전에 먼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어차피 변화와 개혁을 일선에서 수행할 일꾼은 바로 공무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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