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전반 '빗장수비'를 풀고 전면전에 나섰던 이탈리아는 두 차례나 골 대를 맞추는 불운을 겪었다. 승리는 독일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승부차기를 예견하고 있던 연장 후반 종료 1분 전 이탈리아의 그로소가 천금의 선제골을 뽑아냈고, 델 피에로가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쉴 새없는 공격을 퍼붓던 고성능 엔진의 전차군단 독일은 이탈리아의 기습에 고개를 숙였다.
이탈리아 결승행 이끈 '작전의 귀재' 리피
2006 독일 월드컵 준결승에서 이탈리아는 '2분의 기적'으로 개최국 독일을 침몰시켰다. 이탈리아는 이날 승리로 지난 1994년 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이탈리아의 승리 뒤에는 '작전의 귀재'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있었다.
리피 감독이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으면서 단행한 것은 수비에 치중하는 '카테나치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가 지휘했던 1990년대 이탈리아 명문 클럽 유벤투스처럼 이탈리아는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됐다. 여기에다 그는 신진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불러 들였다. 이날 결승골을 넣은 수비수 그로소와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크리스티안 차카르도, 다니엘 데 로시가 대표적인 케이스.
리피 감독은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지만 팀에 가장 중요한 결속력이 떨어지는 이탈리아를 단련시켰다. 그는 월드컵 직전 "나는 강력한 팀 정신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했다. 이탈리아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끈끈한 분위기가 대표팀에 형성돼 있다"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여러 이탈리아 클럽 팀을 지휘하며 항상 미친 듯이 비디오를 틀어 놓고 상대를 분석하던 습관에서 싹 튼 리피 감독의 작전 구사 능력은 준결승에서 빛을 발했다. 0-0 무승부를 기록한 채 전후반 경기가 끝나자 리피 감독은 모험을 걸었다. 미드필더 2명을 빼고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 등 공격수 2명을 대신 투입한 것.
리피 감독이 '비밀병기'로 생각하고 주전 자리를 내준 그로소는 이탈리아에 가장 중요한 골을 성공시켰다. 그로소는 왼쪽 윙백으로 뛰는 수비수지만 크로스와 골 마무리 등 공격 능력이 더 뛰어난 선수. 그는 단 한 차례 그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독일이 채 반격할 틈도 없이 이탈리아는 교체 투입된 델 피에로가 추가골을 넣었다. 리피 감독과 유벤투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델 피에로가 옛 스승에게 귀중한 선물을 한 셈이다.
검소한 '빵집 아들' 클린스만 "너무 아쉽다"
반면 독일은 연장전 막판 이탈리아에 충격적인 두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월드컵에서 유달리 '승부차기'에 강했던 독일로서는 너무나 뼈아픈 실점이었다.
독일 축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경기가 끝나기 2분 전까지도 우리는 결승행을 의심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국인 피지컬 트레이너를 데려와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도록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켰고, 독일 전통의 3-5-2 전형을 버리고 4-4-2 전형을 채택하는 등 개혁을 감행했던 클린스만 감독의 거침없던 승리행진은 멈춰섰다.
클린스만 감독은 '빵집 아들'이다. 슈투트가르트에는 '클린스만 제과점'이 있다. 지난 해 유명을 달리한 그의 아버지 지그프리트 클린스만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한 때 제빵사 교육을 받기도 했던 클린스만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 선수시절 팀 동료들은 포르쉐를 타고 다녔지만 그는 낡은 폴크스바겐 비틀을 선호했다.
선천적 재능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됐다. 독일 대표팀 감독이 되기 전 그는 미국에서 스페인어와 컴퓨터를 배웠고, 축구 관련 사업도 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녹슨 전차' 독일에 확실한 윤활유가 되기 위해 촌각조차 낭비하지 않았다. 감독에 부임한 뒤 부진한 성적 때문에 독일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클린스만은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의 희망이 됐다. 비록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 패했지만 그가 바꿔 놓은 독일 축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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