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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20 인생에서 30-20-40 인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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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20 인생에서 30-20-40 인생으로

<데스크 칼럼> 사람의 삶에서 출발한 정책 보고싶다

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동기들과 술 한잔을 나눴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81학번. 40대가 되어버린 386세대, 어디선가 486세대라고 부르는 걸 읽은 기억도 있다.

대통령선거 결과, 노무현 당선자의 개혁 등등 시국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가만 보아하니 서로 찍은 후보도 다른 것 같고, 노 당선자에 대한 평가와 앞날에 대한 전망에서도 미묘한 견해 차이들이 느껴졌다.

***노후 걱정, 뒷 세대 걱정 이구동성**

하지만 살아가는 얘기에 이르러서는 이구동성이었다.

첫째 40대 초반인데도 벌써 직장에서 은퇴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대 화제였다.

"정년이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회사마다 정년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누구도 거기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나가라면 나가야지" "몇년 내 임원 안되면 나가는 거지" "임원 돼도 매해 새로 평가를 받으니 언제 나갈지 모르지"... 이런 말들이 이어졌다.

"늙어서 자식 찾아올까 걱정"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모아둔 돈이 없어 '나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자식이 찾아와 손 벌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자식들에게 하듯이 앞으로 계속 지원해 주다간 우리 모두 노숙자 신세될 것"이란 암담한 전망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친구가 "난 아들놈에게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돈을 대주지만, 대학 이후부터는 전부 영수증 처리할 것'이라고 벌써 다짐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 이후 들어가는 돈은 나중에 벌어서 꼭 갚으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다들 조용했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기억해 두려는 눈치였다.

둘째 요즘 젊은 친구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불쌍하다는 데에도 모두가 의견일치였다.

에피소드들이 터져 나왔다. 한 친구의 조카가 미국 유수 대학 MBA에다 한국 공인회계사(CPA) 자격증까지 갖고 있는데, 입사후 원하는 부서에 못 가고 밀려났다 한다. 인사부서에 왜 그런가 물었더니 미국 탑5에 드는 대학 MBA 만으로도 사람이 넘쳐나니 그 조카는 학력에서 밀렸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어처구니없어 한다.

"요즘 같으면 우리들은 대학도 못 가고, 직장도 못 잡을 것"이라는 진단에 다들 동의한다. 40대 초반에 벌써 직장 은퇴 후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자신들보다 외국 유학까지 하고 30이 넘은 나이인데도 직장조차 못 구하고 있는 후배들, 직장 잡아 봐야 얼마 일하지 못하고 곧 밀려날 후배들이 더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20-40-20 인생에서 30-20-40 인생으로**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는 20-40-20의 인생이 보통이었다.

태어나서 20년 자라고 배운다. 스무살 언저리부터 60세까지 40년 가량 일한다. 은퇴하고 한 20년 살다 죽는다. 평균수명이 75세 가량 되지만 좀 넉넉하게 잡았다.

하지만 이젠 30-20-40의 인생으로 바뀌고 있다.

20년 자라고 배워서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 요즘 대학 안 가는 사람 거의 없다. 대학 졸업까지 해외 연수는 거의 기본에 속한다. 자격증도 한두개씩 따야 하고. 남자의 경우 군대까지 갔다 오면 30이 금방이다.

30 언저리에 어렵사리 직장 얻어봐야 20년 일하면 고작이다. 50살 되기 전에 쫒겨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의학 발달로 수명은 늘어나 앞으로 평균수명 90까지는 살게 될 것이다.

20-40-20 인생에서 30-20-40 인생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40년 동안 일해서 자식들 20년 키우고, 노후 20년 먹고 살 것들을 만들었는데, 이젠 고작 20년 일해서 자식들 30년 키워야 하고, 노후 40년 먹고 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이 사회가 지탱할 수 있을까?

***'위에서 아래로' 제도론 틀에 갇힌 국정과제들**

북핵 위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정치개혁이 화두로 떠오른다. 검찰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정권교체기를 맞아 온갖 개혁과제들이 분출하고 있다.

하지만 20-40-20 인생이 30-20-40 인생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가장 큰 문제 아닐까?

노 당선자는 10대 국정과제, 즉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평등사회의 구현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부패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 ▲정치개혁 실현 등이다.

하나같이 필요한 것들이고, 꼭 이뤘으면 하는 목표다. 하지만 왠지 금방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내 인생, 하루하루 삶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표현들이긴 한데 낯설긴 마찬가지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나온 얘기, 거기서 거기다.

물론 최초 과제, 비전 제시이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앞으로 각 분야마다 구체적인 정책과제와 실천방안들이 나오면 착착 온몸에 감기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이 과제와 계획을 짤 때부터 뭔가 출발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해서 가정으로 직장으로 자치단체와 국가로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다. 그 반대다. 세계, 세계 속의 한반도, 한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분류, 그 속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 이런 식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온, 아니 내려오다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이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 국정을 논하고, 개혁을 논하는 모두가 체제론적 접근, 제도론적 접근에 매몰됐다.

국가개조, 국정쇄신 등등 새로 출범하는 정부마다 말은 달리 했지만 비슷비슷한 목표와 과제를 제시했다. 그 틀 안에서 세부적인 실천과제를 수십 개, 수백 개 나열했다. 해마다 각 과제별로 얼마만큼씩 이뤄졌나 성과를 측정했고, 독려했다. 하지만 정권 바뀔 때가 되면 또 다시 같은 작업이 되풀이된다.

이것을 획기적으로 바꿔 볼 수는 없었을까? '밑에서 위로' 사람의 인생과 삶, 생활, 현장, 이런 것들로부터 꼭 필요한 아이디어들을 만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 조금씩 해 갈 것, 나중에 처리할 것들을 나누는 방식. 이런 방식은 안 될까?

***'사람 냄새나는 국정' '피부와 감기는 정책' 보고 싶다**

20-40-20 인생에서 30-20-40 인생으로의 변화, 이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럼 혹시 전혀 새로운 국정목표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자녀 키우는 비용 줄이기',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직장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기', '늙어서도 일거리 갖기' 등등 뭐 이런 것들이 가장 앞서는 과제가 될지 모른다.

그 다음엔 '품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간 만들기', '좀 더 재미나게 살 수 있게 하기', '이혼 없이 자녀 둘씩은 낳는 가정 많이 만들기' 등등 이런 것들이 뒤따를 것이다.

또 '안전하게 살기', '범죄자 줄이기', '세계 여러나라와 가까워지기' 같은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엉뚱한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내건 새 정부라면 예전의 국정계획과는 다른 출발점과 논리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장으로부터,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생활로부터 해야 할 일을 만들어가는 발상의 전환 말이다.

새 정부를 꾸리고 향후 5년을 설계한다는 중압감, 세계, 세계 속의 한반도, 대한민국 전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도적 틀거리들, 이러한 도식들 속에 딱딱하게 갇혀 가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돌아 볼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진 곳 없이 빼곡히 채우려는 욕심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매일 성찰해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는 '사람 냄새나는 정치'로 인기를 끌었다. 이제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람 냄새나는 국정' '피부와 착착 와서 감기는 정책'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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