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난타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에서는 뚜렷한 승자도 뚜렷한 패자도 없었다. 물론 <수퍼맨 리턴즈>가 전국 12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긴 했으나 350개에 이르는 스크린수를 생각하면 '예상수치'를 달성한 셈이다. 예상을 뛰어 넘는 '대박'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수퍼맨 리턴즈>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한국 공포영화 <아랑>이다. 주말 3일동안 서울에서 약 8만명을, 전국적으로는 4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작품성 면에서 허술한 측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랑>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 데는 철저하게 '시즌 덕'을 본 측면이 강하다. 장마다 뭐다 해서 지난 주말은 퍽이나 후텁지근했다. 더울 때는 공포영화가 최고라는 얘기가 있다. 안타까운 건, 이 영화가 그 같은 장외 요인을 등에 업고 비교적 길게 러닝할 수 있을 만큼 뒷힘이 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무릇 공포스릴러는 이야기의 아귀가 그럴듯하게 들어 맞아야 한다. 예컨대 이 영화의 첫 범행현장에서 수사반장은, 마당에 파묻는 게 뭐냐는 주인공 여형사의 질문에 태평스러운 목소리로 "개가 한마리 죽어 있어서 말이지"라고 답한다. 세상에나. CSI의 길 그리섬 반장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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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관객들이 대부분 CSI의 광팬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허술한 시나리오로 관객몰이를 할 생각이었다면, 그건 언감생심, 꿈도 꿔서는 안될 얘기였다. 다만 한가지. 한 여자가 집단 강간을 당하고 또 그 이후에 살해된 사건을 다룬 내용만큼은 사회적 시선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경남 밀양에서 있었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열한 거리>가 긴 호흡으로 관객들과 계속 접점을 만들고 있는 점 역시 유의깊에 봐야 할 상황이다. 이 영화는 시장에서 여전히 285개의 스크린을 유지하고 있으며 작품성 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평가를 얻고 있다. 유하 감독의 연출력, 조인성의 연기력 등등이 잘 어우러진 이 영화는 요즘 국내 영화 가운데 간만에 볼만한 작품으로 꼽히면서 전국 170만 가까운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칭찬해 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엑스맨>이 예상보다 힘이 약하다. 전국 200만 관객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엑스맨> 아래로 6위부터 10위까지 하위권 영화들의 관객 머릿수를 세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강적>이 '강적'이 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조민호 감독은 <정글 주스> 이후 또 한번 불운을 맛본 셈인데, 그의 영화 공력만큼은 충분히 인정되고 있는 만큼 다시 한번 재도전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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