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골키퍼 옌스 레만의 곁에는 올리버 칸이 있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최고의 골키퍼에게 돌아가는 '야신상'의 주인공이었던 올리버 칸은 레만과 서로 웃으며 얼싸 안았고, 오랫동안 악수를 교환했다. 둘이 나눈 행동은 더 이상 독일 주전 골키퍼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던 '앙숙'이 아닌 '친구'의 다정한 모습이었다.
독일은 승부차기에서 4-2로 거함 아르헨티나를 제압했다. 레만 골키퍼는 두 차례에 걸친 선방으로 독일의 승리를 이끌며 영웅이 됐다. 독일이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르헨티나는 경험이 부족한 프랑코 골키퍼만이 외롭게 골 문을 지켰던 반면 독일은 두 명의 골키퍼가 상대의 킥을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칸은 터치라인 밖에 있었지만 분명 독일의 골키퍼는 두 명이었다. 한 명(레만)은 차가운 손으로, 다른 한 명(칸)은 뜨거운 가슴으로 러시안 룰렛 같은 승부차기에 임했던 셈.
8년 간 올리버 칸의 그늘에 가려있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결국 기회를 잡은 레만 골키퍼는 경기 뒤 "독일 국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다. 독일 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독일 대표팀의 수비수 크리스토프 메첼더는 "이날의 승리는 두 명의 위대한 스포츠 스타를 위한 것이다. 4년 전 칸이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였지만 이제는 레만이 그 자리에 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독일 월드컵이 펼쳐지기 전 레만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줬던 칸은 한 때 은퇴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대표팀을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그 대신 그는 벤치에서 대표팀의 '맏형' 노릇을 했다. 85번의 A매치 경험에 빛나는 칸은 조별 예선 폴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직접 나서 선수들의 적극적 플레이를 독려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전 칸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우리는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있다. 모든 사람들은 독일이 얼마나 승부차기에 강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독일의 강인한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킨 뒤 "나는 승부차기 직전 레만과 칸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들이 서로를 격려해 준 장면은 깜짝 놀랄만한 게 아니다. 칸은 독일 팀에 매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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