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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미국은 수퍼맨을 필요로 하는가?

[특집] 19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수퍼맨 영화, <수퍼맨 리턴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수퍼맨'은 그 태생부터 사회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캐릭터를 창조한 이는 1930년대 초반 클리블랜드에 살고 있던 고등학생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였다. 당시 미국은 사상 최악의 경제 대공황에 시달리고 있었고, 시겔과 슈스터는 가난하고 평범한 보통의 청소년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외계인과 영웅의 대결을 그린 SF나 범죄자를 처단하는 형사의 활약을 그린 싸구려 펄프 소설 잡지와 만화가 대중문화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슈스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던 시겔이 이런 잡지들을 노리고 슈퍼 영웅에 관한 만화를 구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1차 대전 직후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과학 기술이 급성장하던 바로 그 시점, 그러나 사회의 동력과 대중들의 삶에는 너무도 큰 괴리가 있던 그 시점에 '초인' 수퍼맨의 탄생은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 할리우드의 혁신 기술의 산물 시겔과 슈스터의 수퍼맨은 만화 잡지와 라디오 드라마, TV 시리즈 등을 통해 보다 폭넓은 대중들과 만났다. 하지만 수퍼맨이 지금과 같은 신화적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슈퍼맨> 덕분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 만화는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극영화에서 특수효과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시겔과 슈스터의 만화적 상상력을 제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할리우드는 영화 제작 기술에 있어서 혁신적인 기법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등장해 할리우드 영화를 체질적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1970년대 중반이었던 만큼,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슈퍼맨>의 영화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수퍼맨 리턴즈 ⓒ프레시안무비
이 작품의 영화화는 이미 1974년부터 진행되었다. <슈퍼맨> 장편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DC 코믹스에서 영화화 판권을 구입한 워너 브라더스는 <대부>의 작가 마리오 푸조에게 시나리오 집필을 맡겼다. 하지만 푸조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분량이 방대했으며, 따라서 스튜디오는 다시 로버트 벤튼과 데이비드 뉴먼에게 각색을 맡겼다. 그리고 여기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황금총을 든 사나이> 등의 각본을 썼던 톰 맨키비츠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맨키비츠는 크립톤 행성에서 온 외계인 수퍼맨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악당 렉스 루터와 대결한다는 기본적인 줄거리에 코믹하고 개성 넘치는 디테일을 입혀나갔다. 그뿐이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와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비주얼을 책임졌던 프로덕션 디자이너 존 배리는 <슈퍼맨>에서도 전대미문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테렌스 피셔의 <드라큘라>, 프랑수아 트뤼포의 <화씨 451>,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 걸작 SF 판타지 영화에서 실력을 뽐낸 베테랑 시각효과 수퍼바이저 레스 보위, 웅장한 오리지널 스코어로 단숨에 귀를 사로잡은 작곡가 존 윌리엄스도 <슈퍼맨>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수퍼맨의 아버지 조엘 역에 말론 브랜도, 악당 렉스 루터 역의 진 해크먼, 수퍼맨의 연인이자 활달한 현대 여성 로이스 레인 역의 마곳 키더까지, <슈퍼맨>의 배역진 또한 일급이었다. 여러모로 <슈퍼맨>은 '웰메이드 상업영화'로서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이었다. .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하는 영웅
수퍼맨 리턴즈 ⓒ프레시안무비

1978년 12월 개봉한 <슈퍼맨>은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이듬해 누적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뛰어난 배우와 스탭들이 참여한 <슈퍼맨>은 지금 봐도 여전히 대중영화로서의 품격과 재미를 갖춘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이 <슈퍼맨>에 공감했던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수퍼맨'이라는 영웅 캐릭터는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제작되던 1970년대 중반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전에 잇따른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진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서 도무지 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 경제적 침체기를 겪고 있던 1970년대 미국은, 마치 시겔과 슈스터가 '수퍼맨'을 창조해냈던 1930년대 대공황시기 미국과 정서적으로 유사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슈퍼맨>에는 당시 미국의 관객들에게는 꽤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도 있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로이스 레인 앞에 처음으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수퍼맨은 "왜 이곳에 나타났느냐"는 질문에 "미국과 함께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러 왔다"고 답한다. 또한 수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은 왜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하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무엇보다 자만심을 조심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자신은 불멸할 것이라는 야만심이 (크립톤 행성에 비극을 가져오면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조엘의 말은 당시 미국에 대한 일침과도 같았다. 악당 렉스 루터가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한 장사꾼 악당이라는 설정도 상당한 리얼리티가 있었다. <슈퍼맨>에서 렉스 루터는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들을 핵미사일로 폭파해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만든 뒤, 자신이 확보해놓은 사막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영토 분쟁이 모든 외교적 갈등의 핵심이며, 핵미사일 같은 무기 개발이 현대 국가들의 국토 방어수단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4편까지 이어진 <슈퍼맨> 시리즈는 점차 퇴보해갔다. 리처드 레스터가 연출한 <슈퍼맨 2>(1980)에는 냉전시대 대결을 상기시키는 테러리스트들의 폭발 위협, 당시 왕복우주선 개발에 한창이던 미국의 국가적 사업을 연상시키는 우주정거장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후 만들어진 <슈퍼맨 3>(1983)는 단순한 코미디로 전락했으며, <슈퍼맨 4: 최강의 적>(1987)은 웰메이드 영화가 되기를 완전히 포기한 작품이 되어버렸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더 이상 수퍼맨과 같은 초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로 접어들었다.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경제 정책은 1970년대의 깊은 침체를 종식시켰으며, 미국 경제의 성장에 따른 주식시장의 호황을 가져왔다. 군비 지출의 증대와 더불어 세계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기 시작했던 '부강한' 미국의 대중들에게 수퍼맨은 더 이상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 레이거노믹스의 퇴조, 사라진 수퍼맨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는 <슈퍼맨 2>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세계를 구원하던 수퍼맨이 갑자기 사라진 지 5년 만에 나타나 다시 한번 영웅적 면모를 발휘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놀라울 정도로 리처드 도너의 오리지널 <슈퍼맨>에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의 디자인과 음악은 <슈퍼맨>과 거의 흡사하며, 캐릭터들의 특징과 카메라 앵글에 있어서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원작에서 차용했다. 하지만 <수퍼맨 리턴즈>는 다행히도 오리지널 작품의 복사본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2억6천만 달러짜리 블록버스터에서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풍부한 상징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아이콘을 숨겨놓았다. 또한 당대 사회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정치적인 코멘트가 가능한 설정들 역시 풍성하게 불어넣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퍼맨 리턴즈>는 올해 개봉한 다른 여름영화에 비해 월등히 잘 만들어진 영리한 블록버스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퍼맨 리턴즈 ⓒ프레시안무비
<수퍼맨 리턴즈>에서 로이스 레인은 '왜 우리는 더 이상 수퍼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로이스 레인이 쓴 기사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그것은 '레이거노믹스' 이후 20여 년 동안 별다른 위기 없이 호황을 누려왔던 미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응답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극중 렉스 루터는 원작의 진 해크먼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특한 악당의 면모를 과시한다. 무엇보다 렉스 루터는 인류의 역사에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문명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정치 권력을 어떻게 재편시켰는지를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기술을 차지한 이가 권력과 부를 갖게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인간에게 불을 전한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세계 어느 국가도 따를 수 없는 탄탄한 과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지구적 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렉스 루터는 여전히 땅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장사꾼으로 그려진다. 미국 대륙 전체를 침몰시키고 크립토나이트로 새로운 대륙을 만들어 소유하겠다는 그의 야욕은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하게 보인다. 오리지널 <슈퍼맨>에서 진 해크먼의 렉스 루터가 다소 코믹한 캐릭터였던 것과는 상반되는 면이다. <수퍼맨 리턴즈>는 명백히 9.11 테러 이후 위기에 빠진 미국에 대한 할리우드의 응답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전편의 <슈퍼맨> 시리즈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도시 파괴의 이미지가 전면에 등장한다. 오리지널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보통 사람들의 사소한 경범죄를 해결하는 소영웅에 가까우며,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낭만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수퍼맨 리턴즈>에서 수퍼맨은 더욱 거대한 스케일의 악행을 소탕하는 '메시아'로 그려진다. 추락하는 비행기를 구출하고,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구하며 고군분투하는 수퍼맨의 활약은 그야말로 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행사할 수 없는 기적처럼 보인다. 실제로 <수퍼맨 리턴즈>에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고 의식불명에 빠진 수퍼맨이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당한 예수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후속편을 예고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마치 '마태복음'의 첫머리를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의 미국이, 어쩌면 전세계가 수퍼맨과 같은 '메시아'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 미국인은 지금 수퍼맨을 기다린다 9.11 테러 이후에 등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재난과 파괴의 이미지를 스펙터클로 승화시켰다. 두 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투모로우>와 <우주전쟁>은 물론, 올해 개봉한 <포세이돈>과 <엑스맨 3: 최후의 전쟁>도 그 자장에 포함된다. 할리우드의 이러한 경향은 외부의 적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 느닷없는 평화의 파괴에 대한 혼란, 테러리즘으로 인한 공포감의 확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 등 복잡한 심리적 기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는 이러한 위기 상황으로부터의 구출, 더 나아가 구원에 대한 갈망을 응집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 미국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보통 사람들을 외면해왔으며, 최근에는 소득 상위계층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 이라크 문제와 대 테러 문제 등 정치 경제 사회의 총체적인 맥락에서 지금 미국은 결코 편안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 1970년대 침체기에 이어, 21세기 초 미국은 여전히 수퍼맨을 필요로 하는 곳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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