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다빈치 코드>를 드디어 봤다. 개봉 당시의 열기는 거의 사라지고 객석에는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었다. 솔직히 영화는 좀 지루하게 봤다. 랭던 교수역을 맡은 톰 행크스도 그렇고, 소피 느뵈역을 맡은 오드리 토투도 그렇고, 출연 배우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다지 움직이지 못했다. 애초에 연기력을 기대하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훌륭한 부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 소설로 인해 높아져 있었던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영화에 국한하지 않고 '다 빈치 코드'라는 현상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하다. <다빈치 코드>는 베스트셀러 소설 출간으로 시작하여 언론 및 학계의 격렬한 논쟁을 거쳐 블록버스터 영화로 이어지는, 현대 거대 복합 기획물의 전형적인, 그리고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어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전체 과정을 구상하고 진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이 출판되고 난 이후의 과정을 보면 심지어 종교계의 격렬한 반대까지도 모든 것이 다 예정되어 있었던, 각본상 꼭 필요했던 것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그만큼 <다빈치 코드>는 그것이 다루고 있는 소재만큼이나 그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사실이 <다빈치 코드>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B급 오락 소설로 시작했던 것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 정확히 어디를 건드려야 관심을 끄는지 알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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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나는 이런 상상을 해봤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 비슷한 기획을 한다면 우선 소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그들에게 기독교가 있다면 우리에겐 불교가 있다. 서구에도 불교 신도가 많으므로 소재의 보편성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 다음엔 어떤 대담한 가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건드리는 매우 민감한 부분과 관련된 가정이어야 할 것이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 후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다빈치 코드>의 가정이 갖는 정도의 파괴력이 있는 이야기 말이다. 이 또한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정치와 연합하고 지역의 종교를 흡수하며 궁극적으로 지배적 이념이 되어 오히려 다른 것들을 억압하기 되는 역사적 과정에서 무언가 끄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필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들이다. 다 빈치와 같은 예술가, 프리메이슨이나 시온수도회, 오푸스 데이와 같은 비밀 조직,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예술 작품과 건물, 그리고 도시의 구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역시 동아시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저 수많은 불교 미술품과 경전, 그리고 사찰 및 고대 도시들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자의 세계가 있다. <다빈치 코드> 최대의 매력도 결국은 모든 심오한 수수께기를 문자의 세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한자와 한글의 사회적, 역사적 대립 구도 같은 것을 적절히 집어넣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한글의 디자인에 숨어있는 우주적 원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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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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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으로 이런 기획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빈치 코드>라는 희대의 오락물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것을 담을 그릇들이 필요했다. 이렇게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며 복잡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은 유럽이라는, 다양하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역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랭던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이 거대한 수수께기를 푸는 주역인 그 자신은 정작 유럽인이 아니다. 그는 미국인이며 미국의 학문적 심장을 대표하는 하버드 대학의 교수다. 서구 최대의 미스테리를 미국인이 풀어내는 구도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유럽과 같은 지역이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지역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적 시점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아시아는 이런 점에서 유럽과 다르다. 아시아 각국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각종 경로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은 아주 옛날 아니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시아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심지어 우리나라의 '국제화, 세계화' 같은 구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극복의 대상으로서 건너뛰어야 할 존재가 아니면, 같은 아시아 국가 사이에서도 철저한 에조티시즘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아시아를 잘 모르고 아시아에 관심이 없다. 우리로 치면 고려시대인 12세기 중엽 이후 건설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보다 기원전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역사적 모순 속에 우리가, 그리고 아시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재도 있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것을 현재적 관점에서 하나로 아우르는 시각이 없다면 동양판 <다빈치 코드>는 불가능하다. 오락 영화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도 세상은 수많은 전제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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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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