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매기건
출연 조시 하트넷, 브루스 윌리스, 루시 루, 모건 프리만
배급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등급 18세 관람가 |
시간 105분 | 2006년
상영관 CGV, 메가박스, 대한극장, 서울극장 찰리 채플린이 찰리 채플린을 닮은 사람 경연대회에 나가 3위를 했다면 정말 웃긴 얘기다. 그런데 세상에선 정말 그렇게 있을 것 같지 않은 얘기가 벌어지는 경우를 왕왕 목격하게 된다. 기발하고 재치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인간사의 어두운 심연을 담고 있는 독특한 누아르 스릴러 <럭키 넘버 슬레븐>이 바로 그런 얘기다. 외형적으로는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봉착한, 극도로 '재수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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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넘버 슬레븐 Lucky Number Slevin ⓒ프레시안무비 |
슬레븐이란 이름의 한 청년(조시 하트넷)은 어느 날 재수없는 일 세가지를 한꺼번에 겪는다. 회사에서 잘리고 집에 돌아오니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질펀한 정사를 벌이고 있었던데다 그런 그녀를 버리고 친구인 닉의 집에 머물고자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강도를 당하는 것. 그것만으로 일이 끝났으면 어떻게든 참고 견뎌 볼 수 있겠지만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친구 닉으로 오인받아 뉴욕 최대의 마피아 양대 조직인 '보스파'와 '랍비파'의 사이에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보스파'의 보스(모건 프리만)로부터는 '랍비파' 두목(벤 킹슬리)의 아들을 암살하라는 강요를 받고 '랍비파'에게는 꿔간 돈 3만 달러를 갚지 않으면 48시간 안에 죽은 목숨이 되버린다는 위협을 받는 것. 문제는 아무리 얘기해도 자신을 닉이 아니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닉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슬레븐은 아슬아슬한 죽음의 줄다리기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양측의 지령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를 처치하려는 직업 청부살인업자 '굿 캣'(브루스 윌리스)까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속에서도 인용되지만 <럭키 넘버 슬레븐>은 명백히 히치콕이 즐겨 사용하던 '롱 맨(wrong man)'의 이야기, 그러니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주인공과 같은 설정을 차용한 내용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도 주인공 로저 쏜힐(캐리 그란트)은 가상의 인물이자 첩보원인 조지 캐플란으로 오인받아 좇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생과사의 갈림길을 오간다. 조지 캐플란이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는 결국 중요하지가 않다. 히치콕은 조지 캐플란이라는 인물 캐릭터를 결국 맥거핀(극적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물이거나 인물이지만 사실상 영화의 핵심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사건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일종의 미스테리 드라마의 장치)으로 활용함으로써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럭키 넘버 슬레븐>의 '닉'이란 존재 역시 히치콕이 창조해 낸 맥거핀과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 히치콕의 스릴러와 선을 긋고 있는 것은 그 가상의 인물(혹은 가상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 인물)이 극중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고,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것. <럭키 넘버 슬레븐>을 보는 재미는 바로 그 점에서 찾아진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영화까지, <럭키 넘버 슬레븐>은 오랜 과거와 가까운 과거에 만들어진 많은 할리우드 영화, 그것도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를 영리하게 베껴낸 작품이다. 베낀 솜씨가 워낙 복합적이고 교묘해서 베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이 영화를 만든 폴 맥기건이 상당한 수준의 영화광 감독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인공을 맡은 조시 하트넷을 비롯해 모건 프리만과 벤 킹슬리, 브루스 윌리스 그리고 루시 리우까지 비교적 초호화 캐스팅에다 성격연기로 '한 연기'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모았다는 점에서 최근 나온 할리우드 상업영화 가운데 만족도가 꽤나 높은 작품에 속할만 하다. 주인공 슬레븐은 진짜 누구인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양대 마피아가 그를 이용하는 것인가, 그가 이 마피아들을 이용하는 것인가. 미안한 얘기지만 직접 영화를 통해 확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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