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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06년 달력을 찾습니다!"

[인권오름]국가보안법, 언제까지 남겨둘 것인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 씨의 좌익 활동 경력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그럼 내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라는 말로 자신에 대한 색깔 공세를 반전시켰다.

이 때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만이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입은 이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념적 색깔론의 피해를 겪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적어도 진보적인 이념을 공부하거나 전파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겪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국가보안법은 변함 없이 남아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올해 5월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는가 하면, 지난 16일엔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건국대 학생 김용찬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맑스를 위하여〉, 〈자본론〉, 〈신좌파의 상상력〉 등의 서적을 소지하고 〈메이데이 참가단 자료집〉, 〈빈민활동 교양자료집〉 등을 제작·배포했다는 혐의였다. 이들 자료집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구한 자료를 이용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의 이용이 활성화된 이후 정보와 자료를 복사하고 전달하는 게 무척 쉬워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에서 이적표현물을 읽거나 다른 곳으로 복사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많은 네티즌이 잠재적인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된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최신호에 김용찬 씨의 후배인 이호영 씨가 쓴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이 씨는 민주노총이나 사회진보연대와 같은 합법적인 단체의 홈페이지에서 구한 자료를 활용해 글을 작성한 데 대해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라는 죄목을 적용하는 게 타당한 일인지 묻고 있다. 이념 대립이 첨예하던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냉전이 끝났을 뿐 아니라 인터넷의 보급으로 누구나 부지불식 간에 '이적표현물 제작·배포'에 가담하게 될 수도 있는 지금껏 유효한 것이냐는 것이다.

다음은 〈인권오름〉에 실린 이호영 씨의 글을 전재한 것이다. 〈편집자〉

2003년 7월, 국가보안법과의 첫 만남

2003년 여름, 나는 대학 시절 마지막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뜻이 맞는 후배 3명과 스터디를 기획했다. 시간, 능력, 의지 부족으로 항상 중도 포기를 경험했지만, 함께 공부하자면 조금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뭉친 것이다. 굳은 의지에 걸맞게 첫모임을 MT를 겸해서 학교 밖에서 갖기로 했다. 찾아간 곳은 강원도 홍천의 한 콘도. 3~4시간의 스터디 후, 우리는 밤늦도록 단합대회(?)를 했다.

다음날 쓰린 배를 감싸 안고, 우리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서울 잠실로 올라왔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기 전, 음료수 한 잔 마시고 담배도 한 모금 피우기 위해 역 앞에 서 있던 우리 앞에, 정체모를 괴한들이 서류 하나를 들고 몰려와 후배 김종곤을 둘러쌌다. 알고 보니 그들은 말로만 듣던 경찰 보안수사대 요원들이었고, 그 서류는 후배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다는 영장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들은 후배 녀석을 잡기 위해, 몇 주 전부터 행동을 감시했고 우리가 MT를 떠난다는 것을 알고는 그곳까지 따라와 움직이는 장소마다 쫓아다녔으며,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뒤를 계속 밟고 있었던 것이었다.

학교로 부리나케 돌아온 나머지 3명은 연행된 이들이 더 있는지를 확인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노무사 시험 준비를 한다며 한동안 연락을 안 하던 김용찬 선배가 약국을 다녀오던 중 연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국가보안법이 나와 상관 있는 법이라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 2003년 7월 11일 그 생각이 바뀌었다.

2006년 6월, 3년 싸움의 패배

올해 6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김용찬 선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결과는 상소 기각. 1, 2심 당시의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기존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고, 국가보안법과의 3년 싸움도 끝내 패배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나에게 이번 판결은 단순한 확정의 의미, 패배의 의미만을 갖진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우리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 2004년 겨울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 나선 이들

정리해보자면 이번 판결은 국가보안법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제5항, 즉 이적표현물의 소지·제작·유포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2003년 7월 11일 김용찬, 김종곤 등을 구속했을 때 검찰과 보안수사대는 이적단체 구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특별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자본의 이해>(강신준 지음), <신좌파의 상상력>(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 <지식인을 위한 변명>(장 폴 사르트르 지음) 등과 같이 서점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도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문서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와 이러한 문서로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자료집, 빈민활동 자료집 등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제작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이처럼 본래의 연행 이유와 증거로 구속을 시키기 어려울 경우,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를 적용한 사례는 빈번한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적표현물에 대한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제7조 제1항)할 목적인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제5항)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매우 추상적이어서, 특정 작품이 실제 이적표현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것을 감정하는 이들, 즉 수사기관밖에는 알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조정래 씨의 소설 <태백산맥>을 들 수 있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학 작품임에도,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읽고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음에도,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들이댐으로써 저자를 불구속 기소했던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는 법에 의한 것이 아닌, 수사기관의 의지에 의해 부가되는 죄가 된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러한 실태는 무관심한 채로, 아직 실정법이라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관행과 사법부의 판결행태가 변하지 않는 이상, 국가보안법은 그 수명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판결에서 인터넷 자료 역시 이적표현물로 인정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인터넷 상의 자유도 침해될 여지가 생기고 말았다. 인터넷은 개방성과 자율성을 기본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몇 개의 검색어나 웹 주소만 알면 누구나 특별한 제한없이 해당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인터넷 상의 문서는 누구나 손쉽게 올리거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보혁명'이니, '정보화 사회'니 하는 표현이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이를 통한 사회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사건에서 이적표현물 적용받았던 글은 상당수 인터넷 상에 올린 자료였다. 민주노총이나 사회진보연대와 같은 합법적 조직의 홈페이지에서 구한 자료 등을 원문으로 하여 글을 작성하거나 그대로 복사해 와, 자신의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 등에 올린 것이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판결 논리에 따르면 결국 민주노총과 사회진보연대 등 원문의 출처가 된 홈페이지, 그리고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김용찬 선배의 개인 홈페이지, 인터넷 카페 등은 이적표현물이 잔뜩 쌓여 있는 공간이며, 이곳을 거쳐 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또한 오프라인 상의 도서나 문서 등은 전량 압수라도 해서 국민의 접근을 막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온라인 상의 그것은 압수할 수도, 폐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는 생길 수밖에 없다. 해당 문서를 '복사'하는 행위만으로 동일한 것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인터넷의 속성을 그 누구도 쉽게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개방성과 자율성이 생명으로 여겨져 온 온라인 공간마저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적 논리를 적용함으로써 이곳을 폐쇄의 공간, 타율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설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논쟁과 토론을 통해 수정.개선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야만적 수단을 통해 처벌받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다.
▲ 과거청산을 다짐했던 이용훈 대법원장. 하지만 사법부의 시계는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과거사 청산이라는 사법부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식 때 대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의 뜻을 표시했음이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1972~87년 발생한 긴급조치법, 국가보안법, 반공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시국사건 판결문의 분석작업을 지시했으며, 지난 2월 판결문 6500건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고 받고, 재심의 형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이러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 당장의 국가보안법 사건을 유죄로 판결하는 마당에 과거사 청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거사 청산꺼리를 만들고 만 것이다.

21세기? 아니 1948년!

달력을 보면 지금은 분명 2006년, 21세기다. 세계 그 어디에서도 지금을 탈냉전 시대라고 하지,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일반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국립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는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죄가 되는 시대를 과연 탈냉전 시대라 할 수 있는가? 수많은 글이 올려지고 읽혀지는 인터넷만의 특성을 무시한 채 전 국민을 범죄 예비자로 만드는 시대를 정보화 시대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독재시대의 과거청산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새로운 청산꺼리를 만드는 우리의 시대를 과연 민주화 시대라 할 수 있는가?

이번 판결로 인해 사법부의 달력은 냉전이 막 피어나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던 1948년에 계속 머물러 있음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의문을 갖는다. 우리는 21세기인 2006년 달력을 언제쯤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9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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