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장은 18일 여권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기조의 수정과 관련,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나 양도세에 손을 대면 본질과 근간을 손대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날 오후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기를) 겨우 막아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다시 봇물을 터서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력에게 힘을 주어서는 안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5.31 지방선거 이후 당내에서 제기돼 온 1가구 1주택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보유세 조정론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어서 당내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의장의 이런 입장은 보유세 완화는 절대 불가하다는 청와대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부동산 정책의 수정 여부를 놓고 당.청 고위층 간에 의견조율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당.청간 논란은 이미 정리된 사안으로 봐달라"며 "보유세는 부동산 정책의 가장 핵심적 대목이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건드릴 수 없다는 데 당.청이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참여정부가 지난 3년간 제도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고 했지만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보유세 강화를 골자로 한 8.31 부동산 대책은 당과 정부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합의해 만든 것으로 기본방향과 취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특히 당내에서 거론돼 온 '미세조정'론과 관련,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기조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1가구 1주택자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종부세 완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당론 조율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김근태 의장은 50분간의 인터뷰 내내 정국현안과 당 운용 방안 등에 대해 '김근태 스러운' 진솔한 답변들로 일관했다.
한미 FTA 협상에 대해서는 의장 취임 후에도 자신의 지론인 '신중 협상론'을 강하게 견지했고, 5.31 지방선거 참패로 인한 당의 전국정당화 실패 지적에 대해서는 "망한 선거, 망한 집구석"이라는 표현도 썼다.
또 정계개편 논의를 연말 이후로 늦춘 배경에 대해 "내적으로 중상을 입었지만 집권 여당 사표 낼 수도 없어서 정기국회까지 격려하면서 가자고 한 것이고 암암리에는 그때까지 힘을 축적해 가자는 생각도 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의장 취임 이후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선회가 맞느냐는 질문에도 "급한 걸 먼저 해야 하지만 대증요법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미 FTA 협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양분돼 있다. 정부측은 조속히 타결하고 싶어하는데 김 의장은 '신중론'에 서 있었다. 의장 취임 이후에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일반론으로서는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해야 하지만 전세계의 제도를 결정할 힘이 있는 미국과의 FTA 체결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은 중진국의 톱인 한국과의 협상에 모든 협상력을 동원해 WTO 라운드가 잘 진척되지 않는 데 대한 본보기를 보인 뒤 다른 나라로 (협상을 가져) 가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번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보다 부담과 영향력이 더 광범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설혹 한.미 FTA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 해도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분명치 않고 농업이나 금융 등 등 개개 영역과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국회는 FTA 특위를 만들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미국이 정한 시한에 구속돼선 안된다.
-FTA를 적극 찬성론자들은 토론을 해도 공감대를 만들기 어렵고 그럴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건 미국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관세율이 낮아 섬유 부문을 제외하면 수출 증대 효과가 크지 않고 국민에게 보여줄 게 별로 없다.
-취임 후 서민경제 회복을 강조하고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등 실용주의에 무게가 실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명확한 입장은 무엇인가.
=5.31 선거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정책의 혼선과 혼동이 50% 이상이었고 개혁의 결핍과 미흡이 30%, 개혁의 과도함이 19% 정도였다. 제 감각도 비슷하다. 큰 데로 가기 위해 급한 걸 먼저 해야 한다. 급한 걸 먼저 해서 힘을 모은 뒤 중요한 것으로 가야 한다.
-개혁을 위한 우회로가 실용인가.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우리당을 활력있게 만들고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접근은 일종의 대증요법이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저는 중산층과 서민의 여러 어려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초중반에 케인즈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반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처럼 새로운 케인즈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당내에서는 지나치게 과도한 부분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제도적으로 막은 지난 3년간 정책 실패가 계속됐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고 부동산 투기가 만연했다. 이는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이제 겨우 막아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봇물을 터서 또다시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기를 바라는 세력에게 힘을 주면 안된다. 그래서 정책기조가 변하면 안된다. 보유세나 양도세에 손을 대면 정책의 본질과 근간에 손을 대는 것이다. 제한적으로 손질하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본질과 근간에 손을 대서 결국 투기 세력이 불로소득 기회를 밀고나갈 모멘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 시각은 청와대와 일치하는 건가.
=김근태의 판단이다.
-보유세와 양도세는 두고 거래세는 완화하자는 얘기인가.
=당의 입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동산 투기가 또다시 시작될 위험이 있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즉각적인 재개정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현단계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가.
=사학법을 강행통과한 측면이 있어 한나라당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국민 입장에선 법적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일단 시행해보고 문제점이 있다면 재개정 논의를 할 수 있지만 시행해보지도 않고 재개정하겠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5.31 선거의 패인이 기본적으로 '집토끼 이탈'이라고 보나.
=우선은 정권재창출과 원내 과반을 만들어준 호남을 홀대했다는 정서가 강하다. 그것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대북송금특검 수용과 대연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호남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꽤 당선됐다.
'집토끼' 문제로 국한하면 안된다. 우리당이 전국정당화하는 과정에서 호남과 충청 표심을 많이 잃었고 영남 표심은 얻었지만 그건 당선을 위한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결국 정치적으로 결과적으로 해석하면 망한 선거, 망한 집구석이 됐다.
-우리당 창당 때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웠는데 지금도 현실정치에서는 지역주의가 엄존하고 있다. 실패한 정치실험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지적한 부분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성공한 면이 있다. 정치개혁 하자고 했고 정경유착은 이제 끝났다. 또 전국정당화로 가는 희미한 그림자도 있다. 어디에 희망과 역점을 둘지는 우리의 과제다. 지금 이대로는 안되고 '집토끼'를 결집하자는 의견이 많지만 민주세력이 폭넓은 대연합을 어떻게 할지, 미래의 비전과 대안을 어떻게 제시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계개편 논의를 정기국회 이후에 하자고 했는데. 현재의 당 지지율이 낮은 것도 큰 이유가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세력 재편을 논의하면 국민이 '제정신 못차렸다'고 본다. 우선은 질책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정치세력임을 보이도록 진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 정치적으로 신임을 거부하는 투표결과를 봤지만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집권 여당 사표 낼 수도 없고, 원내 제1당에 대통령이 속한 당이기에 정권을 내놓을 수도 없다. 내적으로 중상 입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국민을 설득할 에너지가 상처를 입었다.(그는 '상처'라는 표현에 앞서 '고갈'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지만 쓰기 싫어서 말을 바꿨다면서 '소진'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고통스럽지만 제 역할을 안하면 국민이 고통에 직면한다. 정기국회까지는 임무에 충실하고 힘들지만 격려하면서 가자고 한 것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고, 그때는 회피할 수도 없다. 암암리에는 그때까지 힘을 축적해 그때 힘을 얻어가자는 것도 있다
-어차피 정기국회 때까지 현 정부와 여당이 함께 가려면 대통령과의 관계가 계속 삐걱거리는 것보다는 당.청간 의견을 조율해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말을 하긴 어렵지만 그런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만간 당.청간의 협의채널이 생기는 건가.
=당은 절실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채널이 생기면 이 채널이 일방채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도 소통이 안되는 것보다는 일방소통이라도 되는 게 낫다.
-개헌론에 대한 입장은 뭔가.
=여당이나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략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지금은 5.31 선거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할 힘이 없다. 개인적 희망이 있지만 여야간 광범위한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 희망사항을 얘기할 순 없다. 국민적 공감대가 무엇이고 낭비와 혼선을 막을 방안이 무엇인지 한정해야 정략적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이 너무 대별돼 있다. 17대에서 일치시키는 것도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 유력한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이 이 문제에 대해 담백하게 의견을 개진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건(高建) 전 총리는 정계개편 논의 이전에 만날 생각이 있나.
=이전에는 지방선거에 참패하지 않도록 공동 협의하자고 했는데 지금 만난다면 새로운 얘길 해야 한다. 당 비대위 결의를 존중해야 한다. 고 전 총리가 하실 수 있는 일이 잘되길 바란다.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가 있고 리더십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계에서는 너무 고민만 하는 '햄릿형' 스타일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가.
=부족한 게 많다. 열심히 하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