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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비열한 인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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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비열한 인생들

[뉴스메이커] 화제작 <비열한 거리> 만든 유하 감독

유하 감독은 키가 187cm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크다. 아마도 국내 영화감독 가운데서는 가장 큰 키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와 마주 서 있으면 이 사람, 세상 보는 게 늘 부감 샷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굽어 보는 자세에는 왠지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이 묻어 있을 것 같다. 큰 키만큼 그가 그렇게 넉넉하고 만만한 사람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가 만드는 영화만큼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그의 영화에는,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가슴 속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드는 울분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울분은 종종 세상을 향해 폭발한다. 전작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현수(권상우)가 그랬던 것처럼. 현수는 극 말미에 스크린 밖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고 그래!!" 이번 영화 <비열한 거리>도 마찬가지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 병두(조인성)는 치졸하고 더러운 세상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에서 어떻게든 기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루한 사람들과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 몸을 날리고 칼을 꽂는다.
유하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비열한 거리>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아우성이 들린다. 요즘 영화들은 오히려 세상의 아우성을 감추려 한다. <비열한 거리>는 그래서, 요즘 같은 때에 만나기 힘든 작품이다. 보기 드문 영화는 종종 사람들을 전율시킨다. <비열한 거리>는 그렇게, 가슴 속에 울림을 남기는 영화다. - 왜 제목을 <비열한 거리>로 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니 비로소 알 것 같더라. "원래 제목은 그게 아니었다. '비루함의 카니발'이었다. 글쟁이로 시작해서인지 난 늘 제목을 다소 문어적으로 짓는 경향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도 원래는 '절권도의 길'이었던 것처럼. 당연히 제작을 앞두고 주변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제목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고?" - 알다시피 마틴 스콜세즈의 영화 제목과 같으니까. 그러니까...당신은 코폴라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려 했던 게 아니라 스콜세즈식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거다. "꼭 두 사람의 영화로 비유해야 한다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어느 한쪽의 분위기, 어느 한쪽의 철학적 방향만을 선택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대부>와 <굿 펠라스> 사이의 길을 가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어느 곳이나 늘 폭력성이 매복돼 있고 그 매복과 매복 사이에는 엄청난 긴장이 흐른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폭력성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이의 긴장감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비열한 관계들이었다." - 난 이 영화가 역설적으로 안티 조폭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흔히들 얘기하는 기존의 조폭영화와 다르다고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얘기한 것이라면 맞는 얘기다.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만들려고 조폭 담당 형사를 만났을 때 처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형사들이 내게 그랬다. 감독님, 또 조폭을 미화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그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서늘했다. 기존의 조폭영화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는 얘기니까. 영화 속 조폭들이 멋있고, 의리 있고, 알고 보니 괜찮은 인간들인 것처럼 그려졌다는 얘기니까. 조폭의 세계를 비장미 있고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날 것 그대로, 그래서 아주 야만적인 느낌으로 그리려 했다.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다." - 당신은 중간 보스 격인 주인공 조폭의 삶을 폭력적인 세상의 순환구조에 연결시켰다. 이 영화가 다의적으로 읽혀지는 건 그 때문이다. "맞다. 영화 속에서 병두가 조폭 영화를 찍으려고 자신을 찾은 영화감독 친구 민호에게 그런 말을 한다. '건달 세계가 뭐 따로 있것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가 거기지'라고. 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조폭들이 살아가는 비좁고 비열한 거리만을 목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거리 자체가 비루하고 비열한 것이다." - 영화는, 조폭인 병두보다 그를 미끼로 영화를 찍으려는 민호란 캐릭터가 더 폭력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숨겨져 있는, 내재된 폭력이 늘 더 무서운 것이다. 폭력이라고 하는 건 세상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더 폭력적인가는 누가 더 욕망이 강한가로 얘기될 수 있다. 병두의 욕망과 민호의 욕망, 둘 중에서 누가 더 비열한가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스스로가 가늠할 일이다. 난 어느 한쪽을 더 미화할 생각도, 어느 한쪽을 더 단죄할 생각도 없었다. 우리 모두 이 천민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껏 욕망을 키우려다 자멸해 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두 인물도 자멸해 가기는 마찬가지다."
유하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병두가 한 건 크게 쇼부치겠다며 전전긍긍 할 때 영화는, 민호가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퇴짜 맞고 나오면서 '내가 진짜 얘기 보여주겠어'라며 씩씩대는 모습을 이어붙인다.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내면적 폭력성향 역시 한건 크게 쇼부치겠다는 조폭들의 마음과 동일한 거니까. 잰 체하고 고급스러운 체 하지만 민호 역시 세상에 대한 비열한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영화 속 영화감독은 어쩌면 지금 이 영화를 만든 나 자신에 대한 얼터 에고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자기성찰적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 병두를 죽이는 건 결국 또 다른 조폭이 아니다. 친구인 영화감독 민호다. "병두는 넘버 2였던 상철을 죽이고 민호는 병두를 죽인다. 아니 결국은 죽이게 만든다. 그럼 민호는 또 누구에게 죽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사회의 폭력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 폭력성은 끝없이 소비되고 전달되고 이어지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 그러니까 그 사회적 폭력성이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천호진 씨가 맡은 영화 속 황 회장의 존재처럼. "진짜 폭력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어선다. 진짜 폭력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큰 손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대리인을 내세울 뿐이다. 병두와 민호 같은 대리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린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한낱 하수인에 불과할 뿐이다. 비루함의 정체는 거기서 찾아진다."
비열한 거리 ⓒ프레시안무비
- 그래도 황 회장이란 인물은 맨 마지막에 가라오케에서 <올드 앤 와이즈>란 노래를 부른다. 살벌한 인생의 파고를 겪으며 현명해졌다는 얘기인가? "현명해진 게 아니라 현명해지라는 얘기다.(웃음)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져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고 그래서 꼭 이 노래를 영화 속에 쓰고 싶었다. 굳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 영화 속 인물들처럼 아무리 날뛰고 바둥거리며 산다 한들 이들은 자신 스스로들도, 세상 어느 한 구석도, 편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 모두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불구인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병두가 사랑하는 현주란 여자도 처음엔, 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녀 역시 유부남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비껴간 삶을 살아가긴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사실은 그렇다. 꿈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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