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 로스 |
출연 사무엘 L. 잭슨, 줄리앤 무어, 에디 팔코
수입,배급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13분 | 2006년 영화를 보다 보면 때론, 이건 분명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고 아마도 원작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요즘 영화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여전히 문학의 힘은 영원하며 영화적 상상력이 문학적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프리덤 랜드>가 딱 그런 영화다. 리처드 프라이스가 1998년에 쓴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문학이 갖는 섬세한 언어의 힘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무척이나 힘에 부쳐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다시 원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설정 자체는 영화적이다. 그래서 구성도 미스터리 스릴러식이다. 무대는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한 흑인 거주지역. 이 지역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어느 날 브렌다라는 이름의 백인여성(줄리앤 무어)이 손에 피칠갑을 한 채 들어 오는 것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지역 내 고참 흑인형사인 로렌조(사무엘 L. 잭슨)는 단순 강도 사건이려니 하지만 여인의 진술을 듣고 나서는 이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브렌다는 횡설수설 끝에, 밤길을 가다가 한 흑인 남자에게 차를 뺏겼는데 그 차 안에 자신의 네살된 아들이 타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건은 단순강도에서 유아 납치 사건으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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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랜드 Freedom Land ⓒ프레시안무비 |
문제는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이른바 흑인 슬럼가라는 것. 이곳은 인근 백인 거주 구역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돼 관리되는 일종의 우범지역인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이 사건은 단박에 무조건 이 지역 내 흑인에 의해 저질러진 가공할 유아 살해사건으로 비화된다. 관할서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이 흑인 슬럼가의 출입을 차단하고 지역 내 흑인 주민들은 그 같은 조치야말로 인종탄압의 전형이라며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주인공 형사 로렌조의 행동반경은 점점 더 좁아질 수 밖에 없어진다. 진술의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브렌다를 보호하느라 흑인 주민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게 되고 수사반은 수사반 대로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고 생각한다. 흑백의 첨예한 갈등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중산층과 하층민의 미묘한 계급투쟁의 한가운데에서 로렌조는 원칙적인 수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 방식으로 꾸며졌지만 사실 이 영화는 인물들 간의 날카로운 신경전, 감정 대립,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편견의 무리 쪽에 서야 하는 극중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 등등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했을 작품이다. 원작 소설은 분명 그 미묘한 정서적 긴장 관계를 문학적 탁월성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만든 조 로스 감독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영화적 어법과 심리소설이라는 문학적 어법을 종횡무진 왔다갔다 하며 헤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차라리 어느 한쪽을 제대로 선택했어야 옳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 로스 감독은 분명 소설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자기 혼자만의 감동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 감동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올바로 전달하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주연을 맡은 줄리앤 무어와 사무엘 L. 잭슨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이 영화의 원래 뼈대와 그것이 함의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배우가 얼마나 좋은 연기자들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영화적이어야 평가를 받는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영화는, 그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들조차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영화다. <프리덤 랜드>를 보면서 줄곧 갑갑증이 느껴지는 건 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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