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가 놀란 지도 어느덧 6년. 14일부터 광주에서는 남과 북, 해외동포가 함께 모여 이를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이 열린다. 2000년 이후 남북관계는 6.15 공동선언의 힘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 이 날은 남북의 사람들뿐 아니라 질시와 대립의 냉전을 넘어 평화와 화해로 가는 한반도를 기원했던 모든 이들에게 기쁜 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 하기에 앞서 지난 6년간의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13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변화 평가와 발전방안'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난 6년간의 남북관계 변화를 평가하고 향후의 방안을 논의했다.
"정치적 대화ㆍ협력의 제도화 위해 대화기구 정례화와 다양화 절실"
정치 분야의 주제 발표에 나선 김학성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는 "남북한의 정치적 관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장관급회담에서 채택된 공동보도문은 거의 예외 없이 6.15 공동선언을 강조하고 있다"며 "6.15 공동선언 또는 그 정신이 지난 6년을 평가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성 교수는 한반도 현안을 민족 자주적으로 풀겠다는 1항의 정신의 경우 "남북 경제교류와 협력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됨으로 인해 민족 자주적 해결 노력이 한계가 있으며 안보관련 당국간 대화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재래식 및 대량살상무기의 군축에 관한 실질적이고 성과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 문제의 이슈들은 여러 차원에 걸쳐 있어 남북의 정치적 대화ㆍ협력만으로 모두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같은 한계는 "단지 이슈의 성격 탓이라기보다는 남북 당국의 인식 및 전략 차이에 주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6년간 한 차례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남북장관급회담 18회, 차관급회담 2회, 특사파견 4회 등 여러 대화가 있었다며 "현재 남북관계는 대체로 화해 협력단계에서 남북연합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그는 평가했다.
이같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대화기구의 정례화뿐 아니라 대화통로의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그는 "정치적 대화나 협력의 제도화는 단순히 남북한 간의 협상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남북한의 국내적 제도 기반은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및 세계 질서가 남북관계의 개선 및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엔 '남북한 당사자' 원칙 중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ㆍ안보 현안은 누가 뭐래도 북핵 문제와 북미간의 대립이다. 사실 지난 6년 동안 남북한 관계 역시 이 두 가지 요소에 크게 휘둘리며 몇 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6자회담의 교착과 위폐ㆍ마약 제조 등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풀리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 역시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간 문제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조사결과 발표와 이란 핵문제 및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 등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종철 연구위원은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 상황을 풀기 위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의 분리 대응 △6자회담 내의 다층적 협력구도 마련 △금융제재 해제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 방안 강구 △북미간 신뢰조성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박 위원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관련해 특징적인 것은 군사적 긴장완화 그 자체보다 남북협력을 위한 기능적 차원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가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 대표적인 예로 경의선 연결 및 도로건설을 위해 군사회담이 개최된 것을 꼽았다.
그는 동서독의 과정을 예로 들며 "북한을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경제협력기금의 일부분이나 별도의 대북차관기금을 조성해 북한에 차관을 제공한다거나 국제금융기관의 대북차관을 우리 정부가 보증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및 배치제한지역 설정에 드는 비용의 일부는 남한이 제공하는 방안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의 주장에 대해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갑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매우 중요하다"며 "남북관계 발전에 따른 편익이 많을수록 북한 내 군부의 반발에 대한 무마도 쉽다"며 힘을 실어줬다.
지난 9.19 공동성명 발표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전환에서도 몇 가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박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우선 남북한 당사자원칙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이를 위해 미국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우리 정부가 '당사자 원칙'의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반도평화협정 체결과 군비통제의 순서를 놓고 여러 논란이 있으나 어느 하나를 먼저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이 두 가지를 병행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그는 평화체제 전환방식 및 평화관리방안과 관련해 신축적인 입장이 필요하며 다층 구도를 통해 한반도평화체제 전환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민족적 동질성 강조보다 '차이 속의 공존'이라는 대안 찾아야"
이 외에도 이석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소장과 박현선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가 발제자로 나와 각각 경제 분야와 사회문화 분야의 남북관계 변화를 평가하고 발전방안을 제시했다.
이석 소장은 "현재 남북경협이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거의 절대적"이라며 "이에 대한 평가를 두고 정반대의 시각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그것이 '경제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추구해 온 우리 정부의 성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라는 입장"이며 또 이와 정반대로 이것이 우리 정부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비판도 있다는 것.
이 소장은 "이같은 엇갈린 평가는 남북경제관계 거의 전 분야에서 쟁점과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향후 남북경협의 방향을 놓고도 서로 다른 여러 견해로 표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경협의 진로를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로 △현재의 남북경협은 지속해 나가되 이를 통해 북한의 변화 유도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미세조정' 시각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적극적 레버리지의 활성화' 시각 △북핵 등 한반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압박의 도구로 써야 한다는 주장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경협이 필요하다는 '퍼주기' 시각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문화 분야 발제자로 나선 박현선 교수는 "남북한 사회문화 통합은 내적 통합을 이뤄내는 통합의 최종 도달점이자 공동체의 완수"라고 강조했다. 남북의 거부감과 이질감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ㆍ경제적 제도 통합의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정치ㆍ제도적 통합을 넘어 사회문화통합이 실현됨으로써 비로소 남북한 통합이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같은 문화통합의 과정에서 민족적 동질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혈연적 민족주의와 가부장적 전통이 강조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냉전시기 전체주의적 특성을 드러냈던 왜곡된 민족주의 등과 같은 가부장적 전통으로의 회귀로 문화통합이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박 교수는 대안적인 남북 문화통합의 가치로 '차이 속의 공존' 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한 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또 한편으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틀 속에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ㆍ외교ㆍ경제ㆍ문화 각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해 온 남북관계가 후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6.15 공동선언 발표 6돌을 맞아 진지하게 되새겨봄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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