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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배달원 "월드컵? 좋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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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배달원 "월드컵? 좋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치킨 배달원과 동네 치킨집 주인이 이야기하는 월드컵

거리응원이 흥겹다고들 하지만 역시 축구는 가까운 사람끼리 삼삼오오 방에 모여 보는 게 제격이다. 이 때 빠질 수 없는 게 치킨과 맥주다.
  
  독일 월드컵을 맞아 치킨업계는 '월드컵 특수'를 최대한 활용하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각종 판촉 행사에 경품을 거는 것은 기본이다. 서울의 한 치킨 가게는 한국이 이기는 순간 가게 안의 모든 손님에게 맥주 한 잔을 무료로 서비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본사 관계자는 "매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 전체적으로 4배 정도의 매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말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이른 저녁이나 낮 시간에 경기가 몰려 있었으면 그 효과가 훨씬 컸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월드컵 특수'는 과연 모든 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같다. '월드컵 특수'가 남의 나라 일로 느껴진다는 이들도 제법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축구 응원은 꿈도 못 꾸죠…무조건 뛰어야 해요"
  
  서울 서교동의 주택가에서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 모(22세) 씨는 월드컵이 썩 반갑지만은 않다. 한국팀의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3~4배의 배달 주문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신 씨는 "지난 번 세네갈과의 평가전 때는 축구 경기가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전반전이 끝날 무렵까지 혼자서만 20여 마리를 배달했어요. 보통 한번에 두 집씩 배달하고 돌아오면 주문이 또 열 건 정도 들어와 있었거든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내년에는 군대에 갈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 거리응원을 꼭 해보고 싶었다는 신 씨. 그러나 그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형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는 그에게 매달 치킨 배달로 벌어들이는 7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요? 좋아하죠. 하지만 응원은 꿈도 못꿔요. 가게를 왔다갔다 하면서 잠깐씩 보고, 또 배달할 때 현관에서 소리만 듣고 뭐 그래요. 오토바이 타고 주택가를 다니다가 '와~'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넣은 줄 아는 거죠. 가나전 때는 조용하던데요."
  
  신 씨의 고충은 단지 축구 경기를 볼 수 없다는 것만이 아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는 축구선수들처럼 이를 악물고 뛰어다녀야 한다. 선수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렇게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의 수준일 뿐이다.
  
  신 씨는 배달 일을 시작한 지 막 8개월이 됐다. 이제 좀 적응이 됐다고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구나 싶다. 월드컵 평가전이 열리던 날 밤마다 뛰어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신 씨는 "이 동네는 아파트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 5층 쯤 되는 고시원이나 원룸처럼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아서 힘들죠. 물론 오토바이 타고 다니지만 계단에서는 뛰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무조건 뛰어야 돼요. 한 사람이 배달을 밀리기 시작하면 다른 배달하는 애들 세 명도 한꺼번에 힘들어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사장님도 막 화를 내요."
  
  이렇게 고생을 하고 나면 그래도 좀 돌아오는 게 있지 않을까? 굳이 이름 붙이자면 '월드컵 특별 보너스'같은 것. 신 씨는 "있으나마나"라며 말 문을 열었다.
  
  "월드컵이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이렇게 손님이 몰리는 대목이 있는 달에는 5만 원 정도 보너스가 나온대요. 규정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사장님이 더 주시는거죠. 월드컵? 저도 좋죠. 그런데 몸이 너무 힘들어요. 그렇다고 돈을 훨씬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월드컵이라고 별 거 있나요, 손해나 안보면 다행이죠"
  
  '월드컵 대목'을 앞두고 한숨을 쉬는 것은 밤마다 뛰어다녀야 하는 배달원들만이 아니다. 치킨집 '사장님'들 중에도 월드컵 열기를 탐탁찮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송파구 마천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백석만 씨도 마찬가지다.
  
  백 씨의 가게가 고전하는 이유는 근처에 생긴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대리점 때문이다. 소위 '양극화'의 문제를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셈이다. 백 씨의 가게 근처에만 유명 치킨 배달 전문점 두 곳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기존에 영업하던 이른바 '동네 치킨집'들은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인근의 P치킨 대리점은 두 마리를 시키면 '치우천왕'의 로고가 찍힌 선캡을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 중이다. 또 B치킨 대리점은 모든 고객에게 우산을 증정하고 있다.
  
  백 씨는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면 치킨 한 마리를 주문받을 때마다 반 마리씩 더 얹어주고 있다. 그러나 별 재미를 못 봤다. 백 씨는 "평가전 하던 날, 스무 마리쯤 팔았나. 반 마리 더 얹어준 것 계산하면 별로 남는 게 없지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전단지도 따로 제작해서 뿌려 봤거든. 돈만 날렸지 뭐…"라고 덧붙였다.
  
  백 씨는 2004년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처음에는 제법 욕심도 부려봤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손해만 안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뭐 장사야…, 저 사람들(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처럼 텔레비젼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월드컵이라고 뭐 별거 있나…."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백 씨의 표정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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