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만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영화로 만든,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트루만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란 논픽션 소설을 쓰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카포티>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느껴진다. 책은 캔사스주 홀컴 시티 근교의 한 중산층 농가에서 벌어진 일가족 4명의 살인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지만 영화는 그 살인사건의 범인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려는 카포티의 예술적 야심에 초점을 맞춘다. 신기한 것은 책이든 영화든 사건이 벌어지는 시대배경이 1959년인데도 전혀 옛날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든 <카포티>든 이걸 보고 있으면 마치 5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건의 내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카포티를 포함해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이나, 살고 있는 공간, 타고 다니는 차도 그렇게 올드하지 않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등등이 전혀 50년대식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심지어 카포티가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 혹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조차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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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포티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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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내내 이 묘한 기시감 같은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결국 영화를 같이 본 친구한테 물어봤다. "이게 50년대야?" 그 친구로부터도 그 점이 정말 궁금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왜 그럴까. 베넷 밀러 감독이 시대 고증을 좀 잘못한 것이 아닐까.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로케이션이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게 아닌 듯 싶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금 이 시대의 문제가 50년 전과 비교할 때 거의 변한 것이 없다는 얘기인 듯 싶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안고 살아가는 문제에는 여전히 해법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 셈인 듯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점이야말로 베넷 밀러 감독으로 하여금 50년 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게 한 동기가 아닐까 싶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세상이 진보한다고? 좋아진다고? 봐라. 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건 똑같거든? 착각하지 말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카포티> 같은 작품이 갖는 초월적 시대의식의 문제를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기본 팩트(fact)들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공교육 과정은 그걸 완전히 무너뜨렸다. 역사나 인문 교육이 완전히 백지인 상태에서 무조건 애들을 대학에 밀어 넣은 형국이다. 역사를 모른다는 문제는 단순히 역사를 새로 가르쳐서 복원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관심이 아예 사라져 있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대에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라는 얘기 따위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처럼 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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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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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는 그저 그렇지만 감독으로서는 아주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 리브 슈라이버의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같은 작품도 그래서 학생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거나 가깝게 다가서게 하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크라이나 출신 가계의 자손인 한 유태인 청년의 자기 뿌리찾기 여행을 그린다. 그리고 거기에다 과거 우크라이나 오뎃사 근교에서 자행됐던 나치 대학살의 피의 역사를 절묘한 중층구조로 얹혀 놓았다. 영화는 상호 결합하기 어려운 스타일과 텍스트로 엮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치 에밀 쿠스트리차식 영화를 빔 벤더스식 정서의 로드 무비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는 보는 내내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극 말미에서 주인공 중의 한명인 우크라이나 청년은 또 다른 주인공인 미국 유태인 젊은이에게 편지를 쓴다. 그게 바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가 되는 셈인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과거의 빛은 모든 걸 밝힙니다. 그리고 과거는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 과거는 우리로 하여금 내면으로부터 외부를 바라보게 하죠." 때문에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있게 한 과거다. 그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다. 수많은 영화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 특히 지금 영화의 주관객층이라고 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그것을 인식하는 기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대형 상업영화의 파상공세에 젊은 관객들이 속절없이 빠져들기만 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거기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40년대와 50년대, 70년대와 80년대에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지 못하니까 엉뚱한 정당에 표가 몰리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하면 그 무슨 쓸데없는 얘기냐고 핀잔을 듣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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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티 ⓒ프레시안무비 |
과거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영화, 세상의 이야기가 주변에는 죽 깔려 있다. 그런데 그걸 새롭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뭘 알려줘야 하는 것일까. 그것 참,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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