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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씩 축구공 만들어 보실래요?"

[아시아 인권 투어] <3> 아시아의 아이들, 그리고 아동노동

6월 9일의 독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세계의 축구팬들이 들끓고 있다. 이 열기 속에서 6월 12일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World Day Against Child Labour)'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00만 명의 아동이 빈곤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십 수만 원을 호가하는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파키스탄·인도 등지의 아동들은 축구공 하나당 100~200원을 받으며 고사리 손을 혹사당해야 했고 때로는 유독물질에 눈이 멀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 FIFA-유니세프 공동캠페인의 구호는 '어린이와 평화를 위해 다함께(Unite for Children, Unite for Peace)'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월드컵 기간에도 멈추지 않을 아시아 지역 아동노동의 실상을 돌아보자.

아동노동은 '값 싸고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힘 없는 노동'

아동노동은 푼돈으로 부릴 수 있는 '값 싼 노동'이자 노동조합 등을 조직해 협상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고립된 노동'이며 보호자 없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워 착취가 용이한 '힘없는 노동'으로 여겨진다. 전 세계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아동의 숫자는 2억46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의 아동들이다. 게다가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아동의 숫자는 6200만 명에 달해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많다.
▲ 전세계에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2억6400만의 아동들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 아이들이다. 이들을 고된 노동으로 몰고 간 1차적 이유는 빈곤이다. ⓒEPA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빈곤은 아동을 노동에 몰아넣는 가장 큰 요인이며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에는 당장 오늘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지역이 많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노동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의무교육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기도 하고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국제프로그램(IPEC)'은 빈곤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불안한 정치상황 등도 아동 노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부계 중심의 가족에서, 또 어른을 잘 모시고 형제자매를 위하는 것이 의무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밥벌이를 해서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더구나 여자 아이들은 가부장적인 전통 하에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떠난다고 여겨지는 여자아이들은 결혼 이전에 가사노동을 하거나 남자형제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 가족구성원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노동으로 내몰리기 쉬운 것이다. 이는 최근까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던 일이다.

아동노동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갑작스런 가난'이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정치적 분쟁과 자연재해,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성인 노동자들 역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부상, 사망하는 사태가 빈번하다. 사회안전망 역시 취약하여 이러한 위기를 겪은 가정들은 쉽게 무너지고 최소한의 보호막도 잃은 아이들은 쉽게 불법적이고 위험한 노동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성인 노동시장의 차별 또한 그들의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하고 있다. 네팔, 태국, 파키스탄의 세 가지 아동노동 사례를 통해 이러한 현주소를 돌아보자.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 - 파키스탄 씨알콧

축구공은 가죽 조각을 손바느질로 이어 붙이는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그동안 축구공 생산은 경제논리에 따라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아동노동을 착취해 악명이 높았다. 비난 여론이 일자 1999년 FIFA는 강요되거나 구속된 노동 혹은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축구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식 생산현장이 아닌 중간상인을 통한 생산은 통제하기가 어려워 여전히 많은 아동들이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

파키스탄의 씨알콧은 대표적인 축구공 생산지역으로 파키스탄 축구공 생산의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브랜드만도 전 세계 50여 개에 이른다. 수 만 명으로 추정되는 씨알콧의 아동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8~9시간을 일하고 있고 그 중 30%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가난하기도 하거니와 교육의 질도 낮아 아이들을 무리해서 학교를 보내기 보다는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씨알콧 지역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서구 사회의 압력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단체들도 아동노동 근절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시기에도 여전히 씨알콧 지역의 아동착취 축구공 생산은 악명을 떨쳤다. ILO나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연합(UN) 기관들과 국제 언론, '아동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세계행진(Global March)'과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섰고 '축구공 프로젝트'를 실시해 '바느질을 멈추고 학교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축구공을 생산하는 아이들을 극한 빈곤으로부터 탈출시켜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여전히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동들이 많지만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씨알콧은 대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집안의 어린 노예 - 네팔 카트만두

'입주 아동노동(domestic child labour)', 통칭 '남의집살이'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가려진 노동이지만 전 세계 아동노동의 약 6~7%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경우, 이러한 입주 아동노동은 도시의 부유한 가정을 중심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입주 가사노동을 하는 아동은 요리·청소·설거지 그리고 아이보기 등의 일을 하는데 IPEC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2001년에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부모님에 의해 팔려가다시피 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입을 줄이기 위해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 될 여자아이들을 입주노동으로 보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보내져 노동하는 아이들의 18%는 문맹이고 또 다른 10%는 거의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다른 부유한 가정으로 보내지는 노동의 경우, 다른 아동노동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극단적인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형태의 노동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조사 결과 입주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아동의 97% 이상이 UN아동권리협약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노동(worst form of child labour)' 수준이었던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해서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급여를 받는 경우에도 40% 이상이 부모가 그 돈을 전부 가져간다.

이들은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과중한 노동과 열악한 처우,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과 정신적인 피폐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적 착취와 폭력에 쉽게 노출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아동들은 고용기간 동안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아 사실상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마약을 운반하는 아동들 - 태국 방콕

강제노역이나 아동 성매매 등과 함께 최악의 아동노동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마약 거래다. 이같은 마약 운반에 동원되는 아이들의 대다수는 도시빈민가에서 자라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기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이미 마약거래에 연루된 친구를 통해 이 '사업'에 빠져들게 된다. 아동을 마약거래과정에 이용하는 것이 더욱 심각하고 위험한 까닭은 이들이 이를 통해 마약에 노출·중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2년 '아동노동에 대한 통계정보와 모니터링 프로그램(SIMPOC)'과 IPEC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마약과 연관된 14~17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 결과, 98%의 아이들이 가족의 빈곤으로 인해서 학교교육을 계속 받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그리고 응답한 아이들의 절반 가량이 이미 마약 중독 상태에 있어서 자신의 약을 사거나 얻기 위해서 마약 거래를 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연구진의 참여관찰 결과 사실상 대부분(98%)의 아이들이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대부분은 하루 10시간 이상 고객을 찾으며 지역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가족 전체가 마약 거래에 손을 대어 빠져나올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솜차이(가명/SIMPOC 면접조사 케이스)는 이러한 현실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시 빈민가에서 자란 솜차이는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14살에 처음으로 마약에 손을 댔다. 마약 중독자이자 중간상이 된 솜차이는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먹거나 자신을 위한 마약을 샀다. 솜차이는 14살 때 마약소지죄로 체포, 같은 해에 약물남용으로 체포, 15세, 16세에 각각 마약소지죄로 다시 체포됐다. 건강하게 성장하고 교육받을 아동으로서의 권리는 솜차이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넘어서…아동인권 인식 성장으로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각 나라별 사례를 들어 설명했지만 이같은 아동노동은 특정 국가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공 산업의 아동노동의 경우 씨알콧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전역, 인도,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서도 만연한 일이다. 입주 아동 노동의 경우에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그 심각성이 지적되고 있으며 마약 거래에 연루된 아동들의 경우는 태국을 포함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 가난한 부모를 만나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노동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빈곤을 벗어날 길은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EPA

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가 아동의 권리를 상대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 지역의 아동노동 착취의 현실을 해결하는 데에는 경제적 성장과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동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인권과 평등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나오는 정책과 대안이 문제 해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경제논리, 가부장적이거나 성인 중심의 권위적인 전통적 악습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 아동이 건강한 성인으로서 성장하고 교육받을 권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작동할 때, 이 비극을 끝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인권 침해라는 지금까지의 현실을 아이들의 미래에서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가난해 교육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해 다시 빈곤해지고, 부모가 빈곤하여 다시 어린 자식이 학교가 아니라 위험한 노동현장으로 내몰려야 하는 이 빈곤과 무지의 악순환의 고리는 그 어떤 노력이 요구되더라도 반드시 끊어져야 할 대목이다.
※ 아동노동 관련 사이트들

ILO : www.ilo.org
SIMPOC : www.ilo.org/public/english/standards/ipec/simpoc
UNICEF : www.unicef.org
Global March : www.globalmarch.org
World Vision : www.wvi.org

* <프레시안>과 <한국인권재단>의 공동기획 '아시아 인권 투어'는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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