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솔직히 박스오피스 기사를 쓰기가 싫어진다. 뻔한 내용을 써야 하니까. 누구나 쓰는 기사를 어쩔 수 없이 같이 써야 하니까.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새로운 기사거리를 찾는 프레시안무비라 하더라도 이번 주 박스오피스 기사를 쓰면서 <다빈치 코드>를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얘기, <다빈치 코드>가 얼마나 흥행을 했는가의 얘기를 빨랑 해치우고 말자. <다빈치 코드>는 지난 주 목요일에 전국 480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무려 141만 명의 관객들을 모았다. 전국 극장가에는 1년에 한두 번 영화를 보러 나올까 말까 하는 40,50대 중년들로 그득 찼다. 중년들이 움직이면 그 영화는 일단 대박이다. 어떤 점이 그렇게 이들 중년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을까. 댄 브라운의 '쓰레기'에 가까운 원작소설 때문에? 아마도 그보다는 온갖 매체에서 다빈치 코드, 다빈치 코드하며 떠들어 댔던 것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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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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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얘기가 나온 김에 이 기사에 어울리지 않지만 한마디만 더 하고 가야겠다. 워싱턴포스트인가 뉴욕타임즈인가에서는 '훌륭한 소설이 꼭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제목을 갖다 붙였지만 솔직히 말해 댄 브라운의 원작소설은 한참 떨어지는 수준의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너무나 상업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소설인데 댄 브라운은 아예 영화판권을 팔아 먹을 생각으로 각 장을 마치 영화 시퀀스별로 나눠 쓰는 영리함을 보였다. 그래서 이게 소설인지, 시놉시스인지 분간이 잘 안되고 이걸 문학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무지하게 심란해진다. 소설 <다빈치 코드>는 그런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소설이 갖고 있는 심란함에 비해 영화는 비교적 잘 정리가 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보다 보면 워낙 '분절음'이 강해 내용 속에 나오는 '시온 수도회'와 '오푸스 데이'의 대립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데에다가 결정적인 인물인 티빙 교수가 시온 수도회 멤버인데 왜 오푸스 데이와 협력하는 인물이 됐는지, 그 이유와 원인이 긴가민가해진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소설을 보지 않고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웠지만 영화 <다빈치 코드>에 몰릴 잠재 관객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나온다. 아직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지금 당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 영화로 인한 국내 영화계의 피해상황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한 조사 결과를 보니 매우 심각한 정돈데, <다빈치 코드>는 전국 관객수에 있어 53%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얘기의 심각성은 이 <다빈치 코드>가 <미션 임파서블 3>와 결합했을 때 더더욱 깊어지는데 지난 주말 전국 61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았던 <미션 임파서블 3>의 시장점유율은 27.5%로 두 영화를 합하면 무려 80.3%라는 수치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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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이 한국영화는 맥을 못추고 있다. 새로 개봉한 <가족의 탄생>은 전국 스크린 177개라는 배급규모에 비해 관객 14만 명에 못미치는 성적을 보였다.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있는 한국영화는 <가족의 탄생>을 포함해 <맨발의 기봉이>와 <사생결단><달콤, 살벌한 연인><공필두> 등 5편에 불과하고 그나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올해 여름시장에 있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격은 말 그대로 '폭격' 수준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고 있다. 자,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일부 평론가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전국 스크린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시장경제의 기능을 제한해야 한다는 얘긴데, 꽤나 논쟁과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블록버스터란 용어가 요즘만큼 제대로 쓰여지는 때는 없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는 한 블록(block)을 한번에 날려버릴 만한 폭탄(buster)의 합성어다. 지금 우리 시장이 바로 그 형국이다. 걱정과 한숨의 나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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