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앳됨과 스산함의 길목에서 손을 내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앳됨과 스산함의 길목에서 손을 내밀다

[핫피플] 새영화 <가족의 탄생>으로 주목받는 정유미

갓 스물네살배기 신인배우 정유미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앳된 모습처럼 옛날의 삶, 처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유미는 그렇게 청춘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건 어느 날 문득 얻어지는 인생의 재발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왠지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이 한줄기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갖게 만든다. 정유미는 그런 여자다. 아니, 그런 여자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아직 몇 편이 되지 않는 필모그래피에서 정유미는 마음 속 상처와 그 쓸쓸함을 갖고 있는 가녀린 여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일단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에서 그랬다. 요즘 막 개봉된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에서는 더 그렇다. 영화 속의 정유미를 보고 있으면 저 어리고 불쌍한 영혼에 왜 그림자가 있는지, 그리고 그 그림자를 어떻게 저렇게 홀로 용케 버티며 살아가는지 마음 속 한구석이 흥건해진다. 그러면서도 이 어린 배우가 스크린을 통해 장년의 관객들에게조차 그게 바로 인생 아니냐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미성숙과 성숙의 길목에서 머뭇거리며 이미 인생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길로 가자고 얘기하면서도 아직 인생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는 미발육 영혼들에겐 어서 이 길을 함께 가자고 조근조근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요즘 정유미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유미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서울예술대학을 막 나오자마자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의 단역을 시작으로 <사랑니>를 거쳐 <가족의 탄생>까지 비교적 빠르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정유미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듯 아직은 숨고르기에 익숙해 있지 않은 표정이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가 여전히 두터운 껍질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대답은 늘 비슷하게 귀결된다. "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조그마한 가슴을 떠는, 그래서 여전히 불안의 영혼을 가진 듯한 그 모습 자체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그녀 본인만 모르고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지 모르지만, 불안하다는 건 또 한편으로 개척하고 개간해야 할 인생의 길이 창창히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이 많이 남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몇곱절 행복한 법이다. <가족의 탄생>에서 정유미는 소위 '헤픈 여자'로 나온다.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마음이 여려서인지 아니면 욕구와 열망이 강해서인지 모든 남자에게 다 잘 대해주는 여자다. 남자친구 경석이 생각할 때 이 여자 채현의 진짜 문제는 자신이 그러는 것에 있어 전혀 도덕적 딜레마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데 그게 정말 잘못된 것일까. 영화는 채현이 진짜로 헤픈지 아닌지도 밝히지 않을 뿐더러 도대체 헤프다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 그게 언제 누구에 의해서 내려진 개념인지에 대해 물어 본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 답은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든 게 우리가 생각해왔던 기존의 가족이라는 것, 가족관계라는 것에서 오는 오래된 오해와 관습의 질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슬며시 얘기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채현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요. 그것 때문에 상대역인 봉태규 씨와 언성이 마구 높아지기도 했죠."
주류 영화권에서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예술영화에 가까운 <가족의 탄생>으로 정유미는 작품 선택이 남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전작 <사랑니> 역시 상업영화지만 상업영화가 아닌, 기묘한 작품이었다. 그녀의 행보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작품을 통해 정유미를 발견한 관객들은 그녀가 앞으로 조금은 길게, 자신들의 곁을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유미는 지금, 그럴 준비가 돼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