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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정동영, "정치인생 중 가장 힘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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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정동영, "정치인생 중 가장 힘든 시간"

암울한 선거전망, 밀려올 책임론…'정동영 위기론' 솔솔

요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심기가 여간 말이 아니다. 정 의장은 15일 "정치를 시작한 뒤에 가장 힘든 시간 중 하나를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 의장 복귀 후 첫 번째 관문이었던 5.31 지방선거 판세가 점차 어두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퇴색한 '신몽골기병' 깃발

정 의장은 이날 스승의 날을 맞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강월초등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 주말 경기도 용인의 한 수녀원에 피정을 다녀온 일을 거론하며 "기도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치를 왜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싶었다"고 심난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정 의장을 둘러싼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꼼짝 않는 당 지지율이 정 의장에게 '힘든 시간'을 강요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서울시장 선거만 해도 낮은 당 지지율이 강금실 후보의 개인 지지율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일반화돼 있다.

그나마 당 지지율이 반등 기미를 보였던 광주마저 이원영 의원의 '광주발언'이 찬물을 끼얹었다. 게다가 당초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던 광주시장 후보가 전략공천 된 데 대한 외부 눈총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김근태 최고위원이 반발하는 등 내부 논란도 겹쳤다.

이는 지난 2004년 1.11 전당대회를 통해 당 의장에 올랐을 때와는 천양지차다. 당시 취임 1주일 만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제치고 당 지지율 1위를 달성했던 '승리의 경험'은 두 번째 당의장에 맡은 지난 3개월간 한번도 재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2년 전에 비해 게을렀던 것도 아니다. 2.18 전당대회 이후 전국을 누비며 100회 이상의 현장방문을 수행했고 최근에는 독도까지 방문했다. 그 사이 한나라당에서는 공천 비리, 성 추문 등 각종 악재가 등장했음에도 당 지지율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정 의장은 이에 대해 "마술 같다"고 푸념했다.

지방선거 이후도 가시밭길 연속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보니 선거에서 패할 경우 책임론은 정 의장에게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상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청와대 책임론'으로 화살을 돌릴 수 있는 여지도 그다지 많지 않다.

일각에선 정 의장의 '바쁜 행보' 자체가 면피용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됐다. 선거 후 예상되는 책임론을 대비해 '나도 할 만큼 했다'는 명분 쌓기라는 것이다. '지방권력 심판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전략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최근 정 의장이 "선거를 앞두고 매관매직 게이트, 공천장사 등이 전국적으로 자행됐고 당선자 모두가 부패한 선거과정을 통한 부패한 당선자일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선거가 끝난 이후 당선자 전원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자"고 한 발언은 '지방권력 심판론'의 면피용 대체 슬로건이 아니냐는 부메랑으로 진화했다. 지방권력 심판론이 먹히지 않자 '선거 뒤 두고보자' 식으로 엄포를 놨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거전을 거치며 정 의장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감이 당 안팎에 확산되면서 정 의장으로서도 '지방선거 이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밀려올 책임론 앞에 당 의장직을 미련 없이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고민거리다. 정 의장은 여러 차례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어떤 결정을 하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정 의장이 책임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고 해도 가시밭길은 여전하다. 4곳이 예정된 7월 재보선이 곧바로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 직후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정 의장 본인에게도 신계륜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공석이 된 서울 성북을구 출마를 통해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 의장은 이와 관련해 "아직 개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피해갔다.

정 의장으로서는 이길 수만 있다면 리더십 재구축의 발판이 되겠지만, 자신이 나선 선거마저 패배할 경우 여권이 입을 타격은 물론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어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한편 지방선거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 '여당발 정계개편'론이 앞당겨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고, 이 과정에서 정 의장의 정치적 토대인 호남의 일부가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론을 내세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 의장으로서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선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정 의장이 지방선거를 이대로 무기력하게 끝내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선거 막판에 마지막 반전 카드가 나온다면 가장 다급한 쪽인 정 의장의 손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대세를 흔들지 못한다면 정 의장은 지방선거 후 중대한 고비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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