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개봉할 생각도 안한 영화지만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허슬 앤 플로우>란 영화는 순간순간 눈물을 훔치게 만들 만큼 가슴을 치는 작품이다. <허슬 앤 플로우>는 10대 창녀 놀라를 자동차에 태우고 다니며 남부 멤피스 7가에서 포주로 살아가는 디제이라는 흑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포주와 창녀가 주인공들인 만큼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막장 인생들을 보여주는데 밑바닥의 얘기들이 늘 그렇듯이 여기에도 꾸미지 않는 진실이 담겨 있다. 랩퍼로 성공한 어릴 적 친구 스키니 블랙처럼 디제이 역시 랩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랩가수가 돼 세상의 주류로 나가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포주란 직업만큼 더러운 일을 겪게 되면서 좌절되고 만다. 영화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포주의 인생과 그가 꿈꾸는 랩퍼의 인생이 사실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엄혹한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 모두가 사실은 하나같이 '비루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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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
음악 녹음을 위해 성능좋은 마이크를 구하려는 디제이는 창녀 놀라로 하여금 음향기기 가게 주인에게 몸을 팔게 한다. 짧은 시간에 '일'을 끝내고 나온 놀라는 평소답지 않게 디제이에게 울부짖는다. 다시는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말라고. 당신은 내가 차 뒷좌석에서 남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냐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하고 사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자신 역시 그렇게, 다른 사람처럼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고. 목놓아 우는 창녀 앞에서 포주 디제이는 아무런 말을 잇지 못한다. 코러스가 없어서 급한 김에 디제이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또 다른 창녀 셔그에게 노래를 시킨다. 여자는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그런 셔그 덕에 디제이는 무사히 노래를 완성하게 된다. 데모 테이프를 들고 친구 랩퍼 스키니 블랙을 만나러 가는 디제이에게 셔그는 말한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라고. 성공하고 나면 더 좋은 코러스를 데려다 녹음을 다시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그것보다 이번 일에 자신을 써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평생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한 것 같다고. 그렇게 의미있는 일을 하게 해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조용히 흐느끼며 고백하는 이 창녀 앞에서 디제이는 다시 한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정작 돈이나 명예, 출세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한 울림으로 전한다. 그보다 사람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단어는 '존중' 이나 '존엄' 같은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아무리 돈이 최고라 한들, 자신이 세상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일은 없다. 우리는 어쩌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지나치게 존중하고 살면서도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무시하거나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양극화'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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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
우리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자꾸만 사라지거나 잊혀지고 있다는 정황증거는 너무나 많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공할 만한 국가폭력의 모습이 대표적일 수 있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싸고 정부든, 영화운동 단체든 서로의 얘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존중'의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쪽은 이데올로기로 접근하고, 다른 한쪽은 정책과 현실의 측면에서 접근할 뿐이다. 서로 상대방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우리사회를 보고 있으면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과연 지나친 생각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벌써부터 한쪽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하는 모양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그것이 완승이든 신승이든, 정작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승리는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요즘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무능한 것보다 차라리 부패한 것이 낫다고. 차라리 부패한 것이 낫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얘기인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뭘 하겠는가. 자신 역시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고 울부짖는 창녀의 마음이 지금의 세상을 더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창녀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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