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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계인간’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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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 ‘경계인간’에 대한 보고서

재독학자 송두율에 관한 다큐멘터리 만들어져

남·북 분단의 경계선에 서 있는 한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12월 20일부터 '충돌'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서울 독립영화제 2002' 본선에 오른 홍형숙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경계도시(The Border City)'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남북화해의 시대에도 철저한 냉전논리가 남아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재독 철학자이며 뮌스터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송두율 교수의 고국방문 시도를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사안을 접근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론'을 주장해 널리 알려진 학자. 1967년부터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70년대 박정희정권의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반체제인사'로 낙인이 찍혀 귀국이 힘들어지게 된다.

이후 90년대 초 한국국적을 가진 채 북한방문을 한 후에는 영사관에 방북사실을 신고했음에도 '친북인사'라는 낙인이 더해졌고 독일국적을 취득한 후에는 황장엽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 김철수는 송두율'이라는 발언을 한 후 '간첩'이라는 세 번째 낙인까지 받아 한국정부로부터 사실상 '입국금지'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작품을 만든 홍형숙 감독을 지난 26일 만나 '경계도시'를 만들게 된 배경과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울은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도시"**

프레시안 : 송두율 교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된 계기는?
홍형숙 감독 : 98년부터 분단에 대한 연작을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송 교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낯선 도시와 송 교수를 배경으로 했지만 분단이 일상에 묻혀서 그 실상이 잊혀지는 이때에 여기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로 관객들이 인식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프레시안 : 제목인 '경계도시'의 의미는?
홍형숙 감독 : 경계도시는 원래 동·서독 분단시절에 베를린의 별칭이다. 동·서독은 통일이 됐으니 이제 경계도시에서 해제됐지만 지구상에 마지막 경계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교수 개인이 지니는 남과 북 사이에서의 '경계인간'적인 성격도 의미한다.

프레시안 : 촬영을 하며 직접 접한 송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홍형숙 감독 : 그냥 개인적으로 볼 때 영락없는 학자였다. 선비 같은 이미지고 학문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프레시안 :송 교수가 간첩이나 노동당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나?
홍형숙 감독 : 송 교수를 만난 느낌으로 답이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양측의 주장을 듣고 비교를 해야겠지만 이 작품은 현실적으로 그런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그리고 송 교수 문제에서 더 큰 핵심은 '우리가 상대방이 되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한 송 교수는 결국 경계에 놓이게 됐다. 이는 개인의 불행이자 분단이 낳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직도 외국에 머물고 있는 송 교수 같은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거침없이 돌아왔을 때 우리가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는 준비가 되 있느냐는 것이다.

프레시안 : 송 교수의 최근 근황은?
홍형숙 감독 :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가끔 연락은 한다. 완성된 작품을 보내 드렸더니 '오랜 시간을 걸려서 피어난 연꽃 같다'며 좋아하셨다. 잘 봤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프레시안 : 영화와 관련해서 국정원의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홍형숙 감독 : 작년 8월에 직접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내가 출산 직후라 주로 이 작품의 프로듀서인 남편이 대신 조사를 받았다. 그 쪽의 요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에 관한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진은 구속되고 영화는 폐기처분 할 수도 있는 것이니 '판단 잘 하라'는 것이었다.

중단하든지 이적성을 없애든지 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관객들이 송 교수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눈물을 흐르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송 교수가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국정원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홍형숙 감독 : 당시 시점이 중요한데 황장엽씨와 송 교수 사이에 '김철수 논쟁'으로 민사소송이 벌어져서 송 교수가 승소한 때였다. 국정원 측은 '민사소송은 우리와 상관없다. 송 교수가 간첩이라는 확증이 있으나 수사기법상 못 밝히는 것 뿐' 이라고 했다.

영화 때문에 국정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자체가 영화감'이라고 여겼고 분단이 누구나 일상에서 부닥칠 수 있는 일임을 독일 현지에서 촬영할 때 보다 더 확실히 느꼈다.

프레시안 : 제작비 조달이나 촬영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홍형숙 감독 : 다른 작업에 비해 조건이 행복한 편이었다. 98년부터 2년의 준비기간이 있었고 독일정부가 출연한 민간예술재단인 '독일학술교류처'(D.A.A.D)가 해외 예술가 중 장르별로 심사하여 젊은 예술가를 초청하는 제도에 2000년 해당자가 되어 베를린에 1년간 체류하며 찍을 수 있었다. 후반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다. 개인 돈도 조금 들어갔고... 인건비를 빼고 약 5천만원 정도 들어갔다.

프레시안 : 관객을 위해 자신의 영화를 소개한다면?
홍형숙 감독 : 송두율 교수가 돌아오느냐 돌아오지 않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분단은 낮선 도시에서 사는 다른 사람이 겪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길 가다가 부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관객들도 영화를 통해 느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국정원 조사를 받으며 그 사실을 체험했다.

프레시안 : 그동안 자신의 작품이 가지는 지향점이 있다면?
홍형숙 감독 : 홍세화씨는 '관용'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이 편견이나 강박증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사회가 되는 데 내 작품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

홍형숙 감독(40)은 한국독립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그동안 재일교포 청소년의 인권문제를 다룬 '본명선언' 시골 공동체의 교육문제를 다룬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등의 화제작을 연출하여 베를린영화제,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상영됐고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줄거리**

한국정부에 의해 대표적인 반한인사로 분류되어 아버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송두율 교수는 2000년 6월 문익환 목사의 통일운동을 기리는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자신이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고 남북한 화해 무드가 조성된 상황에 희망을 걸고 귀국 준비를 서두른다.

7월4일 수상식에 맞춰 그의 아내는 7월2일 날짜의 비행기표를 예약해 준다. 33년만의 귀국에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떠서 가방을 싸던 송 교수는 귀국 직전 국회에서 자신의 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이 나오고 정부가 준법서약서 작성과 국정원 조사에 응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귀국을 포기한다.

수상자 없는 서울의 '늦봄통일상' 시상식에는 그가 전한 수상소감만이 도착해서 참석자들을 울린다.

이쪽이 아니면 저쪽을 강요하는 철학으로는 통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송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전향서' 같은 준법서약서도 쓸 수가 없음을 담담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과연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도시'인 서울에서 언제쯤 거침없이 그를 맞을 수 있을지 질문하며 영화는 끝나고 이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중에 제작진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덧붙여진다.

영화 속에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감성적으로 분단의 아픔과 남·북한 사이를'경계인간'으로 살아가는 송 교수의 심정을 묘사한 음악들은 또 다른 '경계인간'이었던 고(故) 윤이상의 작품이다.

상영일시 : 12월21일 오후4시, 12월 25일 오후 4시20분
상영장소 : 지하철 3호선 안국역하차 서울아트시네마(구 선재아트센터)
문의전화 : 02-362-9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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